‘당당하게 우아하게’ 싱글족이 사는 법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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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능력·가족 반대 해결해야 ‘화려한 솔로’
최근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싱글즈>에서 혼자 사는 이동미(엄정화)는 남자 친구를 시도 때도 없이 집으로 불러들인다. 역시 싱글인 나난(장진영)은 집에서 한가롭게 늦잠을 자고 차도 마시며 자유를 만끽한다. 많은 젊은이가 동미와 나난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한다. 대학생 주 아무개씨(21)는 “좀 과장되었겠지만, 동미와 나난의 삶은 멋지다. 하루빨리 나도 독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과연 싱글들의 일상은 영화처럼 자유롭고 화려할까. 선험자들은 ‘대체로 그렇다’고 말한다.

이윤진씨(34·홍보대행업)는 1989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14년째 혼자 사는 ‘첫솔’(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2030 싱글)이다. 그는 자유에 중독되어 있다고 말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쉰다. 누구의 간섭도 없어서 너무 좋다.” 주말이면 자유와 행복은 배가된다.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비디오 테이프와 책과 음식에 빠져 지낸다. 그는 “혼잣말하는 버릇이 생겼지만, 지금 생활에 대단히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한기숙씨(35·요가지도사)도 자유롭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재 9평짜리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그녀는 “혼자 있는 게 좋아 무작정 부모님 곁을 떠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자기 계발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있다. 그동안 요가·불교에 관한 공부도 적지 않게 했다. 최근에는 아예 요가지도사 자격증까지 땄다.

그러나 한씨는 알 수 없는 외로움에 사무칠 때가 종종 있다. 친구와의 만남이나 등산을 통해 외로움을 잊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그녀는 “외로워 눈물이 나오면 참지 않는다. 음악을 틀어놓고 맘껏 운다”라고 말했다. 때때로 사람이 그립지만 그녀는 당분간 싱글을 고수할 계획이다.


배한진씨(31·현대자동차)는 이른바 ‘돌솔’(돌아온 솔로, 즉 이혼한 사람을 뜻한다)이다. 3년 전 성격 차이로 이혼한 뒤 혼자가 되었다. “지금의 삶이 더 행복하다. 우선 잔소리를 듣지 않아 시원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도 자주 외로움과 맞부딪친다. 그 만만치 않은 불청객을 피하려고 1주일에 세 번 휘트니스 클럽에서 미친 듯이 ‘태보’(태권도와 복싱을 응용한 에어로빅)를 한다. 운동으로도 가시지 않는 고독감은 명품 액세서리 수집과 끽연으로 지워 간다. 요즘에는 인터넷의 솔로 커뮤니티에 푹 빠져 있다. 그는 그래도 외로움이 가시지 않는다고 털어놓는다. “여자도 만나고 책도 읽고 여행을 다녀도 누군가 그립다. 솔직히 이제는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다.”

약간의 외로움을 겪고 있지만 위에 등장한 세 사람은 비교적 건강한 싱글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처럼, 같은 연령대의 다른 사람들보다 자아 실현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하는 싱글들이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싱글도 적지 않다. 진주의 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가르치고 있는 ‘독신 연구가’ 박상규 교수(42)는 “혼자 괴로워하다가 자살하는 싱글을 더러 보았다”라고 말했다.

심약한 싱글들은 대개 가정 환경에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학문적인 근거가 있다. 독일의 여성 심리학자 카타리나 침머는 <혼자 사는 기술>(이마고)에서 (어른이 되어서) 혼자 잘 살려면 태어나서 처음 몇 년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어려서 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고, 다른 사람과 의사 소통을 잘하고, 남의 인생에 관심을 갖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혼자 있는 상태를 더 잘 견딘다.

정신과 전문의 김혜남씨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는다. 김씨는 싱글이 결혼한 사람보다 더 외로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머리 속에 원시 시대부터 이어 내려온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는 정서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선택한 독신이라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이다. 혼자 사는 이들은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라고 말했다.그렇다고 싱글을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다. 박수진씨(28·모엣헤네시코리아)는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독서를 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단골 레스토랑에 가서 혼자 고급 음식과 샴페인을 즐기는 맛도 각별하다.

자신의 싱글 체험을 살려 올 가을 <솔로 라이프 매뉴얼>(가제)을 펴낼 예정인 임계성씨는 몇 가지 사항에만 주의하면 박씨처럼 당당한 싱글이 될 수 있다고 충고한다. 그가 제안하는 ‘멋지고 당당한 싱글이 되는 법’ 1단계를 보자.

우선 다음의 열 가지 질문 중 일곱 가지에 ‘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①혼자 먹고 살 만큼 경제력이 있는가 ②언제든지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5명 있는가 ③인생 목표를 갖고 있는가 ④몸이 건강한가 ⑤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가 ⑥혼자 식당·극장·술집에 갈 수 있는가 ⑦심취할 수 있는 취미가 있는가 ⑧인생에서 결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⑨외로움·긴장·불안·두려움을 조절할 능력이 있는가 ⑩성적 충동을 통제할 수 있는가.

임씨는 이 가운데 ①번이 가장 중요하고, ②∼④번은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⑤∼⑥번에 자신 없는
사람은 가급적 싱글을 꿈꾸지 말라고 충고한다. 대인 관계가 어려우면 갈등과 외로움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상규 교수도 혼자 살아갈 경제적 능력과, 자신이 사나흘간 연락을 끊으면 전화를 걸어올 만한 친구가 서넛은 있어야 당당한 싱글이 될 수 있다고 충고한다.

2단계는 부모나 가족의 반대를 뿌리치는 것이다. 이때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이 몇 가지 있다. ‘알짜배기 작전’은 미리 저축한 통장을 내보이는 방법이다. 이때 자신 있게 오래 전부터 계획해 왔다는 고백을 곁들이면 효과 만점이다. ‘조건 달기 작전’은 독립을 허락해 주는 대신 부모님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는 방법이다. 예컨대 ‘3개월간 지켜본 뒤,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군소리 없이 철수하겠다’고 말한다.

2단계를 넘어섰다면 3단계 ‘독립 선언문’을 지켜야 한다. 독립선언문은 방송작가 정윤희씨가 싱글들을 위해 작성했는데, 싱글이 지켜야 할 규범을 뜻한다. 첫째, 집에 절대 손을 벌리지 않는다. 둘째, 혼자 사는 티를 절대 내지 않는다. 셋째, 생활 공간에 함부로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 넷째, 무언가에 미치는 마니아가 된다. 다섯째, 하루빨리 ‘가정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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