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쌍수 LG전자 부회장
  • 이문재 (moon@sisapress.com)
  • 승인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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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많이 노출될수록 기업 발전”
“나는 회사 돈을 횡령한 사람보다 경영
데이터를 왜곡하는 사람이 더 밉다. 잘못된 데이터가 몇 년 가다 보면 회사가 망한다.”


“공장 규모는 2~3년이면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은 한번 뒤지면 10년 걸려도 따라잡기 힘들다.”


삼성이 거의 유일하게 1등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분야가 백색 가전이다. 백색 가전은 LG전자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룹 내부에서조차 백색 가전 시대는 끝났다고 했을 때 ‘가전은 생필품이다. 인류가 존속하는 한 가전은 살아 있다’는 신념으로 외길을 달려온 LG전자 김쌍수 부회장(58). 지난 여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인터넷 디지털 디오스(DIOS) 냉장고를 선보인 데 이어, 현직 기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청와대 국정토론회에 참석해 ‘혁신’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지난 9월18일, 서울 여의도 쌍둥이빌딩 15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김부회장은 ‘강한 회사, 강한 인재(Great Company, Great People)’을 화두로 삼고 있었다.

백색 가전 시대는 끝났다는 지적이 있는데도 LG전자는 수년째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비결이 무엇인가?
1969년 1월, 공채 사원으로 입사한 이래, 나는 줄곧 이 분야에서 일해 왔다. 백색 가전은 식량과 같은 생필품이다. 이노베이션(혁신)만 계속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1994년 두 차례나 20%에 달하는 가격 파괴가 이루어져 크게 어려웠다. 그때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외환 위기 때에도 3개월 만에 외환 위기 이전 상태로 복귀했다. 현재 LG전자 매출의 70%는 해외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LG 창원공장에서는 ‘신’으로 통한다고 들었다. 경영 철학이 궁금하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일본에서 기술과 함께 경영론을 들여왔다. 1990년대 이후 우리는 미국 GE와 함께 일하면서 그쪽 경영론을 많이 참고했다. 일본이 사무실에서 지시하는 경영이라면, 미국은 현장 경영이다.

‘강한 회사, 강한 인재’라는 경영 철학도 미국 현장에서 응용한 것인가?
미국 기업이나 최고경영자(CEO)들은 아주 지독하다. 처음에는 ‘독한 회사, 독한 인재’로 하려고 했었다. 우리 공장에 가면 ‘Great Company, Great People’(강한 회사, 강한 인재)이라고 쓰여 있는데, 외국인들은 금방 이해한다. 나중에 은퇴하더라도 그 분야에서 10년은 더 일할 수 있는 인재가 많을 때, 강한 기업이 된다.

좋은 기업만 해도 좋은 것 아닌가?
일본 도요타 자동차를 벤치마킹한 결과, 강한 기업을 구체적 목표로 삼았다. 한 분야에서 톱3 안에 들면 매출 1위는 큰 의미가 없다. 톱3는 이익과 기술력에서 영원한 강자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반도체처럼 어느 해는 20% 고도 성장했다가 또 어느 해는 0% 성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매년 10%씩 성장하는 것이 톱3 기업이다.
최근에는 ‘최고 인재’보다 ‘적임자’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일화가 있다. 아프리카 현지 법인을 찾았을 때, 그곳에서 일하는 유태현 부장이 아프리카에서 일등을 하려면 흑인 특유의 냄새가 향수로 느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이 바로 내가 말하는 ‘적임자(right people)’이다. 적임자가 많을 때 그 기업은 강한 기업이 된다.

이른바 TDR(Tear down & Redesign)이 가전 영업 이익률 10%라는 세계적인 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들었다.
일상 업무와 동시에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면 목표를 5% 이상 달성하기 힘들다. 그러나 일상적 업무는 소수 인력에게 전담시키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나머지 인력을 집중시키면 30% 이상 성취할 수 있다. 우리 회사에는 통상 2백개의 TDR 태스크포스팀이 돌아가고 있다. 한번 TDR팀에 들어가면 6~12개월 동안 한 가지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드럼 세탁기 ‘트롬’과 리니어 디오스 냉장고이다.

경영 혁신에는 명암이 있다. 사원들을 너무 혹사하는 것 아닌가?
물론 개중에는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자원은 유한해도 지혜는 무한하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대라는 것이다. 조직에는 탄력이 있다. 성공을 체험하면 기하급수적으로 생산성이 향상된다. 창원공장의 경우 공장 규모는 그대로인데, 1990년 8천5백억원이던 매출이 올해 5조3천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입 사원으로 출발해 부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경험적 리더론이 있을 텐데.
‘공부해서 남주나’라는 말이 있었다. 공무원 사회도 그렇지만, 기업에서도 후배들에게 노하우나 자료를 전수하지 않았다. 자기가 아는 것을 남에게 줄 때 리더가 된다. 많이 줄수록 좋은 리더다. 여기에 솔선수범하면서 리스크를 스스로 감당하고 상하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신뢰를 쌓아간다면 조직은 살아 움직인다. 냉소주의가 제일 큰 적이다. 권위주의는 자기가 만드는 것이지만, 진정한 리더의 권위는 아래에서 만들어준다.

절망할 때도 많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는가?
비즈니스에는 항상 절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으면 답은 항상 있다. 누가 빨리 그 답을 찾느냐의 문제다. 누가 ‘문제가 많습니다’라고 하면, 나는 ‘문제가 없으면 노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문제가 많이 노출되는 기업일수록 발전하는 기업이다. 문제가 노출되지 않으면 망한다. 나는 회사 돈을 횡령하는 사람보다 경영 데이터를 왜곡하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본다. 잘못된 데이터가 몇 년 가다 보면, 회사 망한다.

경영은 사람 경영이다. 사람을 볼 때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가?
대화했을 때 부담이 없는 사람이 좋다. 나중에 한번 더 만났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 말이다. 이런 인재가 적임자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안된다. 파트너든 부하든 상사든 마찬가지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를 바란다. 내가 허술해야 누군가 들어온다.

리빙 네트워크 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너무 앞서간다는 지적이 있다.
리빙 네트워크는 우리의 기술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측면도 있다.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는 벌써 수요가 생기고 있다. 요즘 전자산업의 기술 변화는 정말 빠르다. 언제 리빙 네트워크 시장이 커질지 모른다. 기술은 늘 앞서가야 한다. 공장 규모는 2~3년이면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은 한번 뒤지면 10년 걸려도 따라잡기 힘들다. 연구와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는 아깝지 않다. 우리는 매출액 대비 4%를 연구 기술 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세계적인 수준이다.

노무현 대통령 아들이 사원으로 있는데.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다른 대통령 아들들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라고 농담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성실하고 의욕적인 젊은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이나 리더십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노코멘트 하겠다.

구자홍 LG전자 회장과는 어떤 관계인가? 유비와 제갈량처럼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거창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구회장과 나는 코드가 맞는다. 갈등이 있어본 적이 없다. 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분이다. 가전 분야에 대해서는 주요 의사 결정을 부회장에게 일임하고 있다.

독서법이 독특하다고 들었다.
1년에 절반 이상 해외 출장을 다녀서 비행기 안에서 책을 자주 본다. 앞 3분의 1과 뒤 3분의 1을 읽으면 대충 그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서너 시간이면 한 권을 독파한다. 한두 마디라도 내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있으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서 양식을 얻고 아이디어도 얻는다.

돈 쓰는 법이 있을 텐데.
나는 일하기 바빠서 돈 쓸 일이 없다. 대기업 임원 중에 돈 쓸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쁘기 때문이다. 누가 왜 태어났느냐고 물으면, 나는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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