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권력이 김병현을 무릎 꿇렸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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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영웅 무릎 꿇렸다”
메이저리거 김병현(24·보스턴 레드삭스)이 열흘도 넘게 신문 사회면을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사건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김병현측이 폭행 사건을 놓고 다툼을 벌이는 사진 기자와 해당 신문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혀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흥미로운 것은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사진 찍는다고 패면 어떻게 하나’ 등 김병현을 나무라는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 네티즌은 작심하고 김병현 편이다. 각종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이 사건을 누구의 잘못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네티즌 80∼90%는 사진 기자의 잘못이라고 답했다. <굿데이> 홈페이지 게시판의 경우 ‘꿉데이이’ ‘구더기’ ‘구라데이’라고 신문을 비난하며, 심지어는 ‘자해 공갈단’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도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네티즌 논객은 “우리는 조중동 기자들의 취재를 ‘부역’으로, 스포츠 신문 기자들의 취재를 ‘삐끼’ 행위로 본다. 특히 <굿데이>를 벼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걸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권위주의적인 기자 탓에 생긴 일”

사건의 실체가 어떻기에 네티즌들의 반응이 이처럼 거칠까. 11월8일 오후 8시14분 서울 역삼동 스포월드 스포츠센터 로비. 김병현 선수와 <굿데이> 이 건 사진 기자가 만났다. 아니 부닥쳤다. 이기자는 오전 7시부터 김병현을 기다렸다. 이 건 기자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병현을 찍은 것은 단 4초에 불과했다. 분명 사진 기자라는 신분을 밝힌 후 사진을 찍었다. 김병현은 ‘찍지 마’라고 반말을 하며 다가오더니 카메라 플래시를 뺏어 던져버렸다. 그런 다음에 내가 ‘취재 방해’라는 말을 했다. 이후 김선수는 내 멱살을 잡고 4∼5m를 끌고 다녔다.”

11월9일 오후 김병현의 폭행 소식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도 들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네티즌의 극심한 쏠림 현상은 없었다. 6 대 4 가량으로 김병현을 옹호하는 글이 많았다.

11월10일 이 건 기자가 김병현을 폭력 및 재물 손괴 혐의로 정식 고소했다. 갈비뼈에 금이 갔다며 전치 4주 진단서도 첨부했다. 이 날 ‘대인기피증, 정신이상, 인성교육 덜되고 가진 것 힘밖에 없어서 사람 폭행하고 다니는 김병현입니다’라고 시작되는 장문의 글이 김병현의 홈페이지에 올랐다. 사건에 대한 김병현의 주장은 이 건 기자와 상반된다. “‘제가 찍지 말라고 했잖아요’라고 하니 제 얼굴에 대고 그 분 하시는 말 ‘너 취재 방해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라고 말씀하시더군요. … 그래서 카메라를 뺏어서 집어던졌습니다.”

이같은 김병현의 글이 오르자 네티즌들이 들고일어났다. ‘기자라는 이유로 반말을 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권위주의적 기자의 전형이다’라며 이 사건을 ‘권력 대 비권력’ 구도로 몰고 가기 시작했다. 일부 네티즌은 최초 제출한 2주 진단서가 4주로 바뀐 데도 권력 간의 뭔가가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신학림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과 성균관대 송해룡 교수가 <굿데이>에 인용된 자신들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면서 네티즌들은 더 힘을 받았다.

11월12일 김병현이 경찰에 출두했다. 조사를 받고 나온 김병현은 “여기 계신 분들도 바뀌셔야 할 것이다”라며 언론에 강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이때부터 네티즌들은 공격 방향을 언론 전체로 돌리기 시작했다.

13일 현장 목격자를 자처한 노 아무개씨가 서울 강남경찰서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김병현이 피해자를 들어올려 벽에 쳤다”라고 증언했다. 이 날 이후 네티즌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졌다. 네티즌들은 노씨와 <굿데이>가 유착 관계를 맺었고, 따라서 목격자의 증언은 신뢰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네티즌의 활약이 주효했는지 몰라도 다음날 경찰은 목격자 노씨의 증언이 신빙성이 낮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날부터 네티즌은 언론, 특히 신문지상의 김병현 기사가 일방적으로 <굿데이> 편에 서 있다며 대립 구도를 ‘네티즌 대 언론’으로 넓혔다. 이 과정에서 김병현에 관한 칼럼을 쓴 <동아일보> 장환수 기자는 인터넷에서 가혹하리만큼 돌을 맞아야 했다.

14일 김병현은 기자회견을 열고 폭행 혐의를 거듭 부인했다. 회견장에서 김병현이 “앞으로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하게 살고 싶다. 기자들과도 자주 만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권력이 영웅의 무릎을 꿇렸다’며 분노했다.
15일 경찰은 압수한 CCTV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약 1분간 찍힌 CCTV에는 김병현이 이기자의 멱살을 잡아 넘어뜨린 뒤 넘어진 이기자의 카메라를 빼앗아 바닥에 던지는 장면도 들어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김병현측은 사건 현장을 담은 CCTV 내용을 공개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여전히 ‘이제는 <굿데이>가 먼저 사과하고 김병현을 놓아달라’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인터넷 게시판에도 매체 성격에 따라 논객들의 글의 성격이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서프라이즈> <오마이뉴스> 등 진보 성향 온라인 매체에 등장하는 네티즌은 ‘김병현은 스포츠계의 노무현이다’라며 언론을 질타하고 있다. 반면 <조선닷컴> <동아닷컴> 등 보수적인 매체에서는 ‘김병현의 잘못이다’라는 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서프라이즈>의 아이디 ‘Yo님’은 ‘김병현은 노무현과 닮은 점이 있어 ‘변치 않을 노무현’의 마스코트로 써먹어 봄직하다. 미국에 ‘Fuck you’ 할 수도 있었다는 것과, 찌라시 신문에 대들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오마이뉴스> 게시판에서는 ‘노이건님’이 올린 ‘기자 신분 안 밝히고 반말과 무작정 셔터 누른 <굿데이> 이 건 기자와 허위 증언한 노 아무개씨를 당장 출국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11월17일 현재 가장 많은 추천을 받고 있다.

이에 비해 <조선닷컴> 게시판에 ‘김혜진님’이 올린 ‘김병현, 특정 지역 출신답군! 이 넘 역시 거짓말, 말 바꾸기에 선수구먼. 젊은 넘이 양심을 지니고 살아라, 에이 더러운 놈’이라는 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고 있다.

폭행하지 않았다는 김병현과 폭행당했다는 <굿데이> 기자. 진실은 둘만이 알겠지만 CCTV에 시시비비를 가릴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면 진실은 법정에서 판가름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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