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리그 진출은 아무나 하나
  • 송재우 (MBC 해설위원) ()
  • 승인 2003.11.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8명 메이저 리그 도전, ‘생존자’ 적어…최근 2년간 단 1명 스카우트돼
 
1994년 박찬호가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이후 올해로 정확히 10년째를 맞이했다. 그동안 우리보다 프로 리그의 역사가 길고 시장도 더 큰 미국과 일본 프로 무대로 선수들이 많이 진출했고, 현재도 그곳에서 뛰고 있다. 또 앞으로도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들이 해외 진출을 꾸준히 노릴 것이다. 하지만 수년 전에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과 한국의 분위기에는 큰 변화가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해외 진출 선수와 이를 둘러싼 환경은 어떻게 변했을까.

메이저 리그 진출 1호 박찬호는 한양대 2학년을 마치고 태평양을 건너갔다. 그가 국내 어린 선수들에게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그의 성공에 고무된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들은 봉중근 같은 고교 재학생을 포함해, 마이너 리그에서 몇 년을 보내더라도 훗날을 기약할 수 있는 어린 투수 위주로 적극적인 스카우트에 나섰다. 그래서 당시 고등학교에서 야구 좀 한다 하는 선수치고 메이저 리그 진출을 꿈꾸지 않은 선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내에 불어닥친 메이저 리그 열풍은 거셌다. 현재 국내 프로 야구에서 뛰는 사람 가운데도 당시 메이저 리그로 갈 기회만 달라고 했던 선수들이 적지 않다.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기만 하면 바로 박찬호처럼 성공 가도를 달리며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고교 시절부터 주목되던 선수 중 2001년 추신수와 류제국을 마지막으로 올해까지 2년간 미국으로 진출한 선수는 대졸 출신인 정성기 외에는 없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시간이 흐르면서 메이저 리그의 화려한 무대에 오르지 못하거나 잠깐 선만 보이고 중도 하차한 선배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까지 미국에 진출했던 28명 중 현재 마이너 리그에라도 남아 있는 선수는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13명이다. 메이저 리그라는 냉엄한 승부 세계에 대한 현실 감각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무조건 100만 달러 이상 요구해 ‘탈’

둘째는 계약금 문제이다. 국내에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선수 중 여럿이 100만 달러(약12억원) 이상의 계약금을 받았다. 매년 꾸준히 국내를 방문하는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들의 공통된 목소리는 일단 괜찮은 선수다 싶어 접촉하면 100만 달러라는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마추어 드래프트가 70라운드 이상 벌어지는데, 그들 중 이 정도 액수의 계약금을 받는 선수는 2라운드 이내에 지명된다. 미국의 아마추어 선수 중에서도 소수만이 100만 달러 이상의 계약금을 손에 쥔다.

선수 몸값이 부풀려진 것을 개탄하는 사람은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만이 아니다. 웬만큼 한다 하는 선수들은 국내 구단과 접촉할 때면 메이저 리그 구단과도 접촉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몸값을 올리려고 한다.

아마추어 선수만 해외 진출의 높은 벽을 절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이승엽 선수가 미국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데, 국내 프로 출신 가운데 메이저 리그 무대를 밟아본 선수는 이상훈이 유일하다. 국내 무대에서 최고 좌완 투수라는 찬사를 받았던 그는 메이저 리그에서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친정팀 LG로 귀환했다.

 
일본에 진출한 선수들의 성적은 더 참담하다. 가장 먼저 진출한 선동렬 삼성 코치를 제외하고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준 선수가 없다. 이종범·정민태·정민철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스타들이 풀 죽은 모습으로 국내에 복귀했다. 거기에는 부상·기회 박탈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이들 가운데는 국내에 복귀할 때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겠다면서 국내 구단의 분위기를 살핀 선수도 있다.
지나치게 메이저 리그를 가볍게 보고 도전장을 던졌다가 눈길을 끌지 못하고 포기한 선수들도 있다. 하지만 선수층이 엷은 국내 구단은 이들을 다시 끌어안기에 급급하다. 그것도 국내 최고 대우를 해주면서 모셔오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외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돌아온 선수의 대다수가 국내에서는 펄펄 난다. 이는 국내 프로 야구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메이저 리그가 우리 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메이저 리거라면 무조건 우러러보던 풍조는 많이 사라졌다. 메이저 리그는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한 가지 옵션이 된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국내 야구 현실을 돌아볼 때 해외 진출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올해 홈런을 56개 날려 아시아 신기록을 세운 이승엽도 일본 홈런왕 출신 마쓰이와 비슷한 수준의 대우를 보장받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해외 진출을 노리는 선수들은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한다. 낯설고 물 선 이역 만리로 가는 것부터가 이미 모험이다. 야구 인생을 걸고 최고의 선수들과 당당히 기량을 겨룰 수 있도록 강한 정신력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에게 메이저 리그는 제3자이다. 우리가 여기서 제아무리 국내 야구 수준이 이렇다 저렇다 목소리를 높여도 그들은 냉철하게 자신들의 잣대로 우리 선수들의 기량을 가늠한다. 그들의 시각이 잘못되었다면 그라운드에서 직접 증명할 수밖에 없다. 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배수의 진을 쳐야 한다. 국내 이력은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실력으로 자기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