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 땐 옛집 아랫목 그리운가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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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시에 묵어 가면 좋을 한옥 세 곳/송소고택·지례예술촌·수애당
연말 연시, 사람들이 길 떠날 채비를 한다. 목적지는 한 해를 돌아보며 조용히 새해를 설계할 수 있는 곳. 그런데 막상 지도를 펴놓고 보니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바다와 산이 들끓을 것 같다. 어디로 간담? 시선을 영남 쪽으로 돌려본다. 그래, 그러고 보니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가 (34번 국도를 타고) 영덕 쪽으로 달리다 보면 ‘송구영신’하기 괜찮은 곳이 있다. 송소고택(松韶古宅), 지례예술촌, 수애당(水涯堂)….

오래되어 낡은 집들이지만 그 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이다. “잊을 수 없다. 다시 가고 싶다!” 지난 여름 송소고택을 다녀온 이 아무개씨(경기 일산)는 “조용히 쉬었다 오기 딱 좋은 곳이다. 특히 아이들이 더 기꺼워한다”라고 말했다. 나이 먹은 집들의 어떤 점이 매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희끗희끗 날리는 눈발을 헤치고 오래된 집에 가보았다.

'의젓한 선비' 같은 124세 고택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각, 송소고택은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이었다. 송소고택의 올해 나이는 124세(1880년 조선 영조 때 영남의 유명한 만석꾼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지었다). 그 나이만큼 위엄 있어 보이는 솟을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굴뚝에서 새어나온 매캐한 연기가 뭉클뭉클 온몸을 휘감는다. 오랜만에 맡는 장작 타는 냄새. 어디선가 털북숭이 삽살개 두 마리가 뛰쳐나온다. 꼬리를 흔들며 살랑살랑 다가와 몸을 부비며 길손을 반긴다.

하룻밤 묵을 방은 황송하게도 큰사랑채(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맞던 곳)였다. 큰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이었는데, 조금 떨어져서 보니 40대 선비처럼 의젓하고 넉넉해 보였다. 긴 마루를 딛고 안방으로 들어서자 정갈한 밀홧빛 바닥이 따끈했다. 아랫목은 군불을 얼마나 많이 지폈는지 그야말로 펄펄 끓었다.
담요를 방바닥에 내려 깔고 앉으니 옛 어른들이 ‘객지 나가면 가장 간절한 것이 뜨뜻한 구들 위에 눕고 싶은 생각’이라고 한 말뜻을, 그제야 알 것 같다. 두 다리를 뻗고 가만히 누워 본다. 하얀 천장과 벽이 마치 선방(禪房)을 연상시켰다. 일과 피로에 굳었던 몸이 슬슬 풀려 당장에라도 모든 병이 나을 것만 같았다. 가만히 누워 있으려니 어디선가 인정 많은 아낙들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리는 듯하다.

몸을 일으켜 큰사랑채 왼편에 있는 별채로 가보았다. 누마루가 딸린 별채는 절간처럼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아하고 부드러운 외모 덕분에 눈맛이 시원했다. 후원에 있는 감나무들도 감성을 자극했다. 봄에는 신록과 꽃, 여름에는 풍성한 녹음과 열매, 가을에는 붉은 이파리를 내보였을 감나무들이 빈 가지를 이용해 스산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 숲에서는 지빠귀들이 짝짓기라도 하는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안채·큰사랑채·작은 사랑채·찬방은 서로 맞물려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제법 너른 마당과 우물이 있었다. 마당은 깨끗하고 오붓해서 발을 구르지 않아도 기분이 좋았다. 식당으로 쓰는 안채 내실은 구석구석 들여다보니 예쁘고 실용적이었다. 주인 박경진씨는 “아파트는 사람의 심성을 옥죈다. 그러나 한옥은 개방적이다. 사람의 마음을 열어놓는다”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한옥은 한두 가지 더 주는 것이 있다. 바로 게으름과, 곁에서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안동을 지나 34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진보 4거리에서 청송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31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만나는 파천초등학교 옆으로 들어가면 된다. 좀 부지런한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나 40여km 떨어진 영덕에 가서 해맞이를 할 수도 있다. 방 한 칸에 4만∼8만 원에 묵을 수 있다. www.songso.co.kr

쓸쓸함이 밴 '고향 잃은 집'들

지례예술촌(예술촌)은 임동 근처 수곡교를 건너서 한참을 가야 했다. 구비구비 산길을 돌 때마다 임하호 황톳물이 넘실넘실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예술촌은 10여 채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옛집들은 하나같이 임하호가 생기기 전(1989년)부터 촌장 김원길씨가 하나하나 수몰 지구에서 옮겨온 것들이다.

나이 탓인지 한옥들은 그윽하면서도 담담한 아름다움을 풍겼다. 특히 눈에 띈 건물은 지산서당과 지촌제청(芝村祭廳)이었다. 반듯하게 서 있는 지산서당은 1663년에, 약간 수구린 듯한 지촌제청은 1712년에 지어졌는데 모두 100여 명이 들어갈 정도로 높고 넓었다. 김촌장은 “지촌서당은 우리 나라에서 제일 잘 생긴 서당 건물이다”라고 자랑했다.

세차게 바람이 불 때마다 창호 문들이 정신 없이 펄럭거렸다. 그렇지만 방안은 밀홧빛 장판과 한지로 꾸며져서 아늑하고 따스해 보였다. 특이하게도 방문들이 모두 호수 쪽으로 나 있었는데, 봄 여름이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요즘은 저녁 무렵 임하호 수면에 얼비치는 황금빛 석양을 보는 재미가 근사하다고 김촌장은 말했다.

예술촌의 또 다른 재미는 안동 지방 옛 반가(班家)의 문화를 접하는 것이다. 김촌장은 1년에 열 번 있는 집안 제사를 모두 공개한다. 따라서 제삿날 찾아가면 누구든 제사를 볼 수 있다. 물론 제사 음식도 맛볼 수 있다. ‘공개 제사’는 밤에는 볼거리가 별로 없는 안동 지방의 약점을 메우려고 김촌장이 짜낸 이벤트이다. 공개 제사 덕일까. 예술촌에는 유독 외국인이 많이 찾아온다. 올해에도 벌써 2백여 명이 다녀갔다.

예술촌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음식이다. 손님들에게 고집스럽게 안동 반가 음식을 선보인다. 그리고 가능하면 주변에서 나는 제철 재료로 식단을 짠다. 동지에는 팥죽, 설에는 만두국이나 떡국을 내는 것도 특색이다. 식사를 마치면 뒷산(아기산·해발 591m)을 느릿느릿 산책할 수 있고, 호숫가로 나가 생각에 젖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라도 텔레비전과 신문을 안 보면 좀이 쑤시는 사람이나, 핸드폰이 터지지 않으면 곤란을 겪는 사람은 안 가는 것이 좋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안동을 지나 34번 국도를 타고 임동 쪽으로 가면 수곡교가 나온다. 그 다리를 건너 산길을 20여분 가면 된다. 방은 17칸이 있고, 1인당 2만원씩 받는다. 취사는 불가능하며, 한 끼에 7천원씩 받는다. www.jirye.com
가족애 키워주는 '물가 집'

수애당은 송소고택이나 지례예술촌에 비해 소박하고 단출하다. 건물은 세 동, 마당도 비교적 좁았다. 며느리 문정현씨에 따르면, 수애당은 본래 이렇게 작은 집이 아니었다. 1939년 수애(水涯) 류진걸 공이 지을 때만 해도 훨씬 규모가 컸다. 마당도 넓어서 타작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임하댐이 생기면서 집의 운명이 바뀌고 말았다. 물이 차면서 산 위로 쫓겨났고, 규모도 준 것이다. 수애당은 마치 그런 슬픔을 삭이기라도 하듯, 코앞에 있는 임하호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마루에 앉아 있으니 적요했다. 군데군데 나 있는 격자창은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다. 방안은 기름종이를 깔고 한지로 도배해서 훈훈한 느낌이었다. 문씨는 건물이 위압적이지 않아서 그런지, 친척집 삼아 단골로 오는 손님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수애당의 장점은 불 지핀 구들처럼 가족애를 따뜻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모든 가족이 군불 지피기, 한지 접시 만들기, 굴렁쇠 굴리기, 새끼 꼬기 같은 놀이를 하면서 가족애를 다지는 것이다. 겨울밤에 맛보는 시원한 무와, 따끈하고 고소한 군고구마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른 아침 뒷산에 올라 광활한 임하호를 바라보며 키우는 호연지기는 덤이나 다름없다.

■지례예술촌처럼 수곡교를 건너서 간다. 방 한 칸에 3만∼8만 원에 묵을 수 있다. 저녁은 안 해주고 아침을 5천원에 제공한다. www.suaed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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