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외치는 중국의 야심
  • 난징ㆍ성진용 통신원 ()
  • 승인 1999.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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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민족 부흥’ 꿈꾸며 미국에 도전장
건국 50주년을 맞은 중국은 요즘 자신감에 넘쳐 있다. 지난 11월15일 미국과의 쌍방 합의에 성공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눈앞에 둔 데 이어 최근에는 우주 비행선 ‘션저우(神舟)호’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중국의 군사 전략 전문가들은 중국이 세계에서 세번째로 최첨단 우주과학기술을 장악함으로써 사실상 세계 3강의 자리에 올랐다고 말한다. 또, 이제는 우주 전쟁도 벌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군사전략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그들은 세계 최강 미국을 향한 대결 의지를 드러내면서 이제 중국이 하려고 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장담한다.

미·중 평화 분위기 속 대결 불씨 여전

중국이 이루려고 하는 미래의 꿈은 두말할 나위 없이 21세기 세계 강국 건설이다. 중국은 강대국의 구체적인 모습을 ‘종합 국력’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개념은 지난 6월 장쩌민 주석이 처음 밝힌 경제력·군사력·인민 응집력(애국심) 세 가지의 결합체다. 그리고 하나 더 ‘영토 완정’(타이완과의 통일)까지 보태면 이것이 바로 21세기 중국의 청사진이다. 아편전쟁 이후 구미 열강의 등쌀에 시달리다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공산 정권을 세운 중국이 지금까지 꿈꾸고 있는 것은 구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중화 민족 부흥’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천년의 첫 세기인 21세기에 우리는 새로운 세계 강국 중국의 출현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이 들떠 있는 데 반해 중국 국력이 과대 포장되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얼마 전 영국 국제전략연구소 제럴드 시걸 소장은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81위에 지나지 않으며 무역 규모 역시 세계의 3%인데다 군사력도 2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중국은 아직 겁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이 강대국 꿈을 실현하는 데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우선 국내에서 과거의 문화대혁명 같은 커다란 정치 격변이 없어야 하며, 국제 사회와의 관계 역시 중요한 관건이다. 특히 경제 성장을 갈망하는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에 온 신경을 모으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중국으로서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중국은 지난 5월 나토가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을 폭격해 크게 놀란 적이 있고, 냉전이 이미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미국과 나토가 인도주의라는 명분으로 코소보 사태에 군사력을 사용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이 종종 중국의 인권을 들먹이는 마당에 중국으로서는 다음 공격 대상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물론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기로 쌍방이 합의한 이후 요즘 미·중 관계는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다. 군사 관계도 정상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1월27일 중국은 미·중의 합동수색구조훈련에 미국 해상 정찰기 P3C 오리온기 참가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나토군이 중국대사관을 폭격한 이후 중국은 오리온기의 통상적인 홍콩 기착을 허용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해 왔는데, 군사 잡지 <디펜스 위클리>의 로버트 카니올은 ‘정찰기 참가 허용은 중국이 또다시 관계 정상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과정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 가입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걸려 있는 문제를 한꺼번에 다 씻어낸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 후보는 자신의 외교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 간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이 지역에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더욱 확대해 중국의 군사 위협을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또 타이완에 무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중국에 요구하며 타이완이 스스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물론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조지 부시의 발언은 중국에서 적지 않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언론은 미국 여론조사 결과에 비추어 볼 때 내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면서 조지 부시의 말을 비중 있게 받아들였고, 중국 외교부는 “중국을 억제하려는 어떤 시도도 아태 지역 인민의 근본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받아쳤다. 또 타이완 문제는 중·미 관계에서 가장 민감하고 핵심적인 정치 사안이라며 미국의 전역미사일방위 구상 추진을 비난했다.
또 하나 요즘 미·중의 평화 분위기 속에서도 언론 매체를 통해 군사 관련 기사들이 계속 전해지고 있는 것은 아직도 대결의 불씨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최근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 위크> 11월29일자는 중국이 스텔스 전투기도 추적할 수 있는 획기적인 새 방공 체제를 실전에 배치할 단계에 와 있다고 보도했다. 또 <뉴스 위크>는 미국 정보 분석가들이 중국이 현재의 미국 군사 기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타이완의 <연합보>는 지난 11월29일 중국이 타이완과 가까운 푸젠성(福建省)에 타이완을 겨냥한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곳은 타이완과의 거리가 200㎞에 불과해 타이완 전역이 미사일 사정권인 300㎞ 이내에 들게 된다. 지난 11월18일 중국 신화사 통신은 중국의 전략 미사일 발사 성공률이 최근 들어 100%에 이르러 과거에 비해 정밀도가 대폭 향상되었다고 전했다. 또 얼마 전에는 중국·러시아·인도가 팍스아메리카나 (미국이 주도하는 평화)에 대항하기 위해 삼각 동맹을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국제 문제 전문가에 의해 제기되었다. 만약 25억 규모의 인구를 차지하는 3대 핵강국이 하나로 뭉쳐 미국에 대항한다면 미국의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다.

WTO 가입 등 경제 문제가 변수

‘중·미 관계’라는 제목을 단 중국의 한 인터넷 사이트는 이런 화두를 던지고 있다. “세계 최강의 슈퍼 대국에 맞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결인가 아니면 합작인가?” 이 사이트에 올라온 네티즌들의 의견은 대체로 중국이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때는 대결이냐 합작이냐는 질문과 그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중국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다. 그 때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서릿발 같은 칼날 위를 걷고 있던 때다. 아·태 군사 동맹으로 중국을 에워싸겠다는 미국의 전역미사일방위 구상이 중국을 긴장시키고 얼마 후 나토가 중국대사관을 폭격하는 사건이 터져 중국 인민의 반미 감정이 최고조로 이르렀던 때다.

그런데 이제는 질문과 대답 모두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나토의 중국대사관 폭격 사건에 분노하면서도 중국은 미국과 협의를 지속해 결국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할 돌파구를 찾아냈다. 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더욱 활발해질 경제 교류는 미·중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제어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중국·러시아·인도의 삼각 동맹 구성도 그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중국을 비롯해 삼국 모두 아직은 삼국 동맹보다 미국과의 쌍방 관계를 통해 얻어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중국의 대답이 YES이든 NO이든 그것은 모두 강대국 건설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상황에 따라 중국은 어떤 색깔의 카드도 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중국의 국력이 더 강대해지면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중국이 종종 NO를 외치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21세기에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중국의 바쁜 걸음은 미국에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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