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보다 더 빛나는 노학자의 ‘열정’
  • 예천·朴晟濬 기자 ()
  • 승인 1999.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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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성 박사, 예천에 천문관 세우고 ‘쌍성’ 연구
일흔이 가까운 한 천문학자가 일반을 상대로 한 천문학 교육과 대중화를 위해 사재를 털었다. 그는 또 자신의 미진한 학문을 완결하기 위해 연구 전용 천문대를 따로 세우는 등 천문학계의 발전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6월1일 경북 예천에 ‘나일성천문관’과 ‘나일성천문대’를 개관한 천문학계 원로 나일성 박사(67·전 연세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국내에 천문학 관련 자료를 집대성한 천문학 전문 전시관이 문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박사는 이를 위해 평생에 걸쳐 수집한 천문학사 관련 희귀 자료, 철저한 고증을 거쳐 자신의 손으로 직접 복원해 애지중지하던 천문 유물 등 전시물 수천 점을 내놓았다. 천문관측은 규모를 더 확장하고 전문 도서관도 세워, 이곳을 아예 천문학 관련 종합 교육장으로 키울 계획을 갖고 있다.

전시된 물품 가운데에는 1759년 조선조 영조 때 국립 천문대인 관상감(觀象監)이 핼리 혜성을 관측해 남긴 기록도 눈에 띈다. 1759년 혜성을 연속 3일간 관측해 그림으로 남긴 것으로 세계에 유일한 이 기록은 연세대박물관에 소장된 자료를 복사한 것이다. 관측 날짜는 음력 3월11일부터 3월13일까지로 되어 있으며, 이틀째의 관측 기록에는 먹이 엎질러진 듯한 그림과 함께 ‘날씨가 흐려서 혜성을 보지 못했다’는 설명도 나온다.

한국 천문학사 정리 착수

천문관에서 단연 돋보이는 전시물은, 조선 태조 때의 것으로 동양 최고(最高)의 별자리 그림이라고 알려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비롯해 나박사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해 비장해온 갖가지 별자리 그림들이다. 중국 당(唐) 시대의 그림에서부터 현대 별자리 그림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별자리 그림을 망라해, 시대·지역 특색과 변천사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나일성천문관의 또 다른 특징은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복원한 모형과, 조선 세종 때 만들었다는 규표(圭表) 등 나일성 박사 스스로 연구 과정에서 복원한 유물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나박사가 천문학 고유 분야 중 하나인 ‘쌍성 연구’의 국제적 권위자이자 국내 최고의 천문학사·과학사 연구가여서 가능했던 일이다. 말하자면 그는 쌍성 연구와 천문학사 연구를 양 날개로 삼아 온축해온 자신의 학문 세계를 천문관을 통해 모두 풀어놓을 작정인 것이다.국내 천문학 1세대로서, 그리고 쌍성 연구가로서 그의 도전적인 생애는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던 그는 당시 ‘국내 천문학 박사 1호’로서 중앙관상대장(현 기상청장)을 맡고 있던 이원철 박사(작고)에게 다짜고짜‘천문학을 가르쳐 달라’고 편지를 띄울 정도로 천문학을 열망하던 청년이었다.

천문학에 대한 관심은 연세대 물리기상학과에 진학한 뒤로도 이어져, 그는 한때 이원철 박사를 따르기 위해 중앙관상대에 취직하기도 했고, 물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서도 정작 대학 강단에 서서는 천문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마침내 그가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정식으로 천문학을 배울 기회를 얻은 때는 63년. 미국 유학 시절 그는 당시까지 ‘광도가 일정하게 변한다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게 별로 없었던’ 한 쌍의 별(쌍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국제적으로 주목되는 그의 ‘쌍성 연구’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예천에 개인 천문대를 연 것도 그때 시작한 쌍성 연구를 ‘죽을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욕심에서다.

그는 “내가 연구해온 쌍성은 공전 주기가 27년에 이르고, 식(蝕·별이 겹치는 현상)이 끝나는 데만 3년이 걸리는 별이다. 82∼84년에 식이 있었으니, 또 한 차례 식을 보려면 적어도 2009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손을 놓지 않고 관찰하면 뭔가 유용한 정보가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말한다.

천문학사 정리 작업은 쌍성 연구와 더불어 나박사가 여생을 바치기로 작심한 필생의 과제다. 78년 실학자인 동시에 천문가인 황윤석(1729~91)에 대한 연구를 필두로, 20년 가까이 천문학사 연구상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내놓았던 나박사의 꿈은, 자신의 연구 성과를 여덟 권 분량 책으로 묶어 한국의 천문학사를 총정리하는 것이다. 이는 ‘학문상의 어떤 진보도 자기 확신과 자부심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패배감으로 귀결된다’는 나박사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전통 과학의 위대성 청소년에 알리고 싶다”

나박사는 “일본에는 창조학회라는 것이 있다. 과학자·철학자·종교인 등 지식인이 망라된 단체인데, 일본 역사에 ‘모방’만 있고 ‘창조’가 없었다는 점을 반성하여 만든 학회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정작 세계에 자랑할 만한 창조물을 만들어놓고서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나는 천문학사를 통해 왜 우리 것이 자랑스러운지를 보여주고 싶다”라고 밝힌다.

나박사는 정년 퇴임 후 서울·예천간 비행기를 백회 넘게 타고 다니며, 꼬박 3년 동안 개인 연구실과 천문관 개관 작업에 매달렸다. 무엇이 그를 이처럼 일에 매달리게 했을까. 해답은 ‘욕심’과 ‘의무감’에 숨어 있다. 명색이 천문학자로서 세계 천문학사에 이름 한줄이라도 올려야겠다는 과학자의 욕심과, 학문 연구를 통해 깨닫게 된 전통 과학·기술상의 위대한 유산을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알려야 한다는 교육자의 의무감이 그것이다. 현재는 교육자의 의무감이 학자의 욕심을 억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나박사는 “천문관을 찾는 관람객 백명 가운데 단 1명이라도 전시된 내용에 관심을 쏟게 된다면 이는 성공이다. 더 나아가 천명 가운데 1명이라도 천문관을 둘러보고 우리 문화 유산의 위대함에 감동받아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면, 이는 대성공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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