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환상 여행, 별나라 탐험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1999.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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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별 관측법/쌍안경·별자리 지도·랜턴 필수…천문대 이용하면 편리
이음악회는 늘 구름 걷힌 맑은 날에 열린다. 저녁 노을이 한바탕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지나갈 때, 땅거미가 져 어둠이 깔리고 지상에 인기척이 잦아들면서 음악회는 시작된다. 창을 밝히던 불이 꺼지고, 사위가 어둠의 심연에 잠길 때 음악회는 어느덧 절정.

이윽고 이슬 맺힌 풀잎들이 새벽 어스름에 청초한 자태를 드러내면서 막을 내린다. 수억·수만 년 또는 그 이상 영겁의 세월에 이 음악회는 되풀이되었다. 크고 작은 밤하늘의 별들이 인간을 위해 준비한 ‘침묵의 음악회’이다.

경기도 안성·여주, 충북 보은·진천, 강원도 횡성, 전남 담양 등 전국 도처에서 별들의 음악회를 위한 상설 무대가 마련되고 있다. 오래된 무대는 10년이 넘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90년대 중반 이후 마련된 것이다(67쪽 표 참조). 청중은 물론 ‘아마추어 천문가’로 통칭되는 전국의 시민들이다. 아직 초·중·고 학생들이 방학을 맞지 않아 본격적인 철에 접어들지는 않았지만, 주말이면 이들은 가족 단위로, 동호인 단위로, 또는 학급 단위로 곳곳에 마련된 상설 무대를 찾는다. 현재 별 보기 인구는 어림잡아 수만 명. 망원경을 갖고 다닐 정도로 ‘쟁이’가 된 사람도 천여 명에 이른다. 매연이 자욱한 도심을 벗어나 호젓한 자연의 품에서‘별들의 속삭임’을 들으려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박물관까지 생겼다. 경북 예천에 6월1일 개관한 나일성천문관이 바로 그곳이다. 사설 천문관으로는 국내 최초인 이 천문관에 가면, 동서고금의 진귀한 천문학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오는 7월이면 이 천문관의 주인이자 국내 천문학계의 원로인 나일성 박사(전 연세대 교수)가 아이들을 위해 ‘알기 쉬운 천문학 강연’도 들려줄 예정이다(70~71쪽 딸린 기사 참조).

별 관측이 ‘있는 사람들의 호사’라고?

사람들은 별을 관측한다고 하면 망원경부터 찾는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별 관측이라고 하면 ‘있는 사람들의 호사’ 정도로 여긴다. 그러나 아마추어 천문가들 중에서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별은 우선 ‘눈으로 즐기는 취미’이며, 망원경은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들은 별이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누구나의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별들의 언어를 알고, 그것이 전하는 지식을 이해하는 열성 관측자들에게만 별은 찬란히 빛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별 관측 동호인들의 자부심이자 수칙이다.천문우주기획 사장이자, 본격 천문학 잡지로는 국내 처음인 〈별과 우주〉를 발행하는 이태형씨도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그가 이른바 ‘별쟁이’ 삶을 살게 된 것은 84년께 서울대 아마추어천문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이다. 그는 어느 여름날 지리산 계곡에서 은하수를 보면서 자신이 우주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뒤 별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개인 망원경을 장만한 것은 그 뒤로도 한참 만인 89년에 와서였다.

그러나 10년 넘게 지속된 취미는 그의 인생까지 바꾸어 놓았다. 아마추어 천문가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소행성을 발견하고(아직 공인되지 않음), 이동하면서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이동식 천문대도 개발했으며, 지금은 천체 관측과 관련해 국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전문가’ 대접을 받는다. 그는 별 보기를 ‘세상의 절반을 찾는 작업이요, 아름다움의 절반을 찾는 작업’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잘못 알려진 북두칠성·북극성의 진실

전문가들은 초보자를 위한 별 보기의 필수품으로 쌍안경·성도(별자리 지도)·랜턴을 꼽는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별자리 지도이다. ‘성도 없는 별 관측은 지도책 없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과 똑같다’고 전문가들은 타이른다. 보통 ‘7(배율)×50(지름·단위 ㎜)’ 짜리가 추천되는 쌍안경은 시력의 한계를 어느 정도 보완하면서도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점에서 망원경을 앞지른다. 여기에 이곳저곳 방향을 가리킬 수 있는 랜턴만 있으면 ‘하늘 여행’을 위한 준비는 일단 끝난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이들 ‘장비’에 한두 가지를 더 보태 나침반이나 관측 일지를 준비하라고 일러준다.

밤하늘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별자리 그림을 펼쳐 놓고 이를 숙지하는 일은 물론 ‘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은 금성’이라는 정도의 초보적인 별 상식을 익혀야 한다. 말하자면 최소한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성천문대 김지현 대장은 “금성은 태양·달 다음으로 밝은 별인데도, 그것을 UFO로 착각해 문의 전화를 걸어올 정도로 사람들은 별을 모른다”라고 말한다.

북두칠성이나 북극성에 대해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김대장은 “북두칠성은 사실 별자리 이름이 아니다. 그런데도‘가장 잘 아는 별자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북두칠성이라고 답한다. ‘밤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로 오해되는 북극성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북극성은 밝기로는 열 손가락에도 들지 못하는 2등성이다. 그런데도 가장 잘 알려져 있으니 가장 밝을 것이라는 오해 때문에 10명 중 9명은 북극성을 찾지 못한다”라고 설명한다.
시중에 나온 별 보기 관련 책자들은 이같은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 데 좋은 안내서가 된다. 이 중에서 성도를 설명한 책만 해도 〈별밤 365일〉 〈우리 별자리〉 〈밤하늘로 가는 길〉(이상 현암사), 〈재미 있는 별자리〉(김영사) 등 수십 종을 헤아린다. 실용적인 목적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별들의 비밀〉(문학동네)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 태양계〉(현암사)도 별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교양서들이다.

이들 천문학 관련 서적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점은, 실제 별 관측을 위해서라면 초보자가 알아야 할 별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름철 별 관측의 경우, 초보자들은 별자리 88개 가운데 백조자리·거문고자리(직녀성)·독수리자리(견우성)·헤르쿨레스자리 등 서너 개의 위치만 외우면 된다(67쪽 별 지도 참조). 별 사진을 찍어 작품으로 남기고(별지기 단계), 자기가 직접 알려지지 않은 별을 찾아나서는 경지(으뜸 별지기 단계)는 이같은 ‘별 새내기’ 단계에서 한참 더 공부해야 하므로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별자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별이나 성단(별무리)·성운(가스층으로 이루어진 별구름)을 찾아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른 사람은 기껏해야 백여 명에 불과하다.

여름철에는 맨눈으로 성단·성운도 관측

물론 이들 별자리에 숨어 있는 성단·성운의 아름다움까지 제대로 감상하려면(별바라기 단계) 사정은 달라진다. 이때 비로소 천체 망원경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측 경험이 오래된 사람에게 망원경은 다른 의미로 다가선다. 사람들은 망원경은 무조건 ‘크게 확대해서 보는 물건’이라고 여기지만, 이들은 ‘망원경은 어두운 것을 밝게 보는 물건’이라고 정정해 준다. 실제 깜깜한 하늘에서 별을 관측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다. 망원경은 배율이 높을수록 ‘집광력’이 높아져 결국 ‘작아서 안보이는 것이 아닌, 어두워서 안보이는 것’, 예컨대 성단과 성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별자리 위치만 잘 안다면 맨눈으로도 성단이나 성운을 볼 수 있다. 여름철 대표적인 별자리인 궁수자리 부근의 산광 성운 M8도 그 중 하나다. 은하계의 중심에 있는 이 성운은 그 모양이 모래톱에 둘러싸인 석호(라군)와 비슷해 ‘라군 성운’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붙어 있는데, 전문가들에 따르면 맨눈으로도 볼 수 있는 여름철의 가장 밝고 아름다운 성운이라는 것이다.

별자리에서 인간은 헤르쿨레스와 같은 신화 속 영웅을 만나기도 하고,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과욕을 버리고 최소한의 예비 지식만 갖춘다면 초대권이나 입장료 없이도 들어갈 수 있는 축전, 그것이 바로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누구나의 것은 아닌 별들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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