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념 기획예산위원장 “정부 개혁에 정치 흥정 없었다”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1999.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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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부처가 예산권·조세권·금융권을 다 가지고 다른 부처를 통제하려 드는 것은 민주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만약 내각제가 되어 총리가 중심이 되면 중앙인사위원회 같은 대통령 직속 기구
정부가 자기 개혁(정부 조직 개편)을 하는 것은 역시 파천황적인가. 적어도 100일 넘게 공직 사회를 뒤흔들고 직접 비용만도 46억원을 쓴 작업치고는 졸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지금까지 소홀히 해온 운영 시스템을 개혁한 것은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있다. 정부 개혁을 진두 지휘한 진 념 기획예산위원장을 3월27일 만나 자초지종을 물었다.

정부조직개편안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런 평가를 하기에는)시기 상조라고 봅니다. 앞으로 직제 개편 같은 후속 조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우리는 그동안 부처 통폐합이라는 현상적이고 상징적인 측면에 집착해 왔습니다. 정부안이 기대에 못미쳤다, 실패했다 이렇게 말하는데, 애당초 머리(부처 통폐합)를 어떻게 줄이느냐보다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팔다리(기능 개편)의 군살을 빼고 효율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운영 시스템 개혁이죠.

운영 효율화 개혁도 금이 가고 있습니다. 개방형 임용제 시행이 후퇴하지 않았습니까 ?

후퇴라면 후퇴죠. 개방형 임용제는 부처간 인사 교류를 촉진해 우수 인력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효과를 촉진하고 ‘엽관제’로 흐를 해악을 없애려면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을 만드는 일이 관건입니다. 중앙인사위원회가 기준을 만드는 동안, 2000년 말까지 빈 자리가 생길 때 이를 메우는 방식으로 30%를 임용한다는 안은 괜찮은 것 아닙니까?

앞으로 있을 직제 개편은 공무원 개개인의 이해 관계와 직결되어 거센 저항을 부르지 않겠습니까?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정부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에 들어가기 전까지 행정자치부와 함께 작업을 끝낼 작정입니다.

벌써부터 조직을 늘리기 위해 로비하는 부처가 있다는데요.

리스트럭처링(업무 재구축)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분야까지 무조건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막판까지 최대 쟁점이었던 예산청이 재경부가 아닌 기획예산처로 흡수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산 기능을 어디에 두느냐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가령 부처 이기주의가 적고 국정 전반을 생각하면서 예산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이 기능을 (다른 일도 하는) 특정 부처에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예산 기능을 정책 조정 수단으로 쓰고자 한다면 조정 권한을 가진 부처에 주어야 합니다. (어느 한 부처가) 예산권·조세권·금융권을 다 가지고 다른 부처를 통제하려 드는 것은 민주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정부개혁을 원활히 하기 위해 예산 기능이 기획예산처로 간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속된 말로 권한이 너무 한쪽으로 집중되면 토론 문화가 사라진다는 것을 경계해 그렇게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견제와 균형을 중시한 것이죠.

예산권을 놓고 공동 여당이 다투자 대통령께 ‘(기획예산)부’를 총리 소속의‘처’로 만들 수 있다고 제안하셨다면서요?

그 문제는 대통령과 총리께서 결정하셨습니다. 재경부와 기획예산위, 예산청 문제는 두 분이 하셨어요. (DJP 작품이라면 공동 여당의 이해가 반영된 것 아니냐고 묻자)정치적 이해 관계는 없었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국정을 책임지고 총리는 내각을 통괄하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이 문제(정부 개혁)는 공동 여당 간의 흥정 대상이 아닙니다.인사 정책 집행 기능을 신설될 중앙인사위원회로 넘기지 않고 행정자치부에 남겨둔 것은 행정자치부가 ‘자치부’(혹은 자치환경부)로 반토막 나는 것을 걱정해 맹렬히 로비한 결과 아닙니까?

로비? 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행정자치부는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죠. 물론 통합론과 분리론이 분분했습니다. 결국 인사권이 한 군데로 집중되면 부작용이 있다는 점이 감안되었습니다. 대통령 직속 기구가 집행 기능까지 갖는 것은 정부 운영 관례상 적합하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죠.

국정홍보처 신설에 대해 ‘공보처 부활’이라는 비판 여론이 있습니다.

제가 물어봅시다. 국민연금 파동 전부터 언론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이 무엇입니까. 국정 홍보 기능이 둘로 나뉘어 문제가 있다, 이런 것 아니었어요? 그래서 홍보 기능을 일원화했조. 그런데 공보실이나 문화관광부에 몰아 주지 않고 국정홍보처라는 독립 조직을 만든 것은, 정부 대변인인 국정홍보처장이 정부 조직 간에 상충하는 정책 홍보를 조정하는 기능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공보처 부활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옛 공보처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방송사 인허가나 신문·잡지 등록과 관련된 규제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홍보조정실이 하던 보도지침·언론사별 담당관 같은 통제도 없습니다. 현정부는 언론의 자유와 창달을 제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부처 통폐합 여부를 검토했다가 통폐합 대상 부처의 반발에 굴복해 현상 유지로 귀결된 것 아닙니까?

생각은 다 해봤죠. 통폐합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무게가 실렸던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처음부터 각 부처의 핵심 역량을 모을 수 있도록 조직과 기능을 바꿔 주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 말씀은 결과(정부안)에 꿰어맞추기 위한 의도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통폐합을 전제로 작업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 예로 대통령 보고 때 과기부 폐지를 건의하신 것으로 압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이죠.

노(NO). 그렇지 않아요. 이런 얘기죠. ‘산업기술부’안은 한 부처(과기부) 혹은 두 부처(과기부+정통부)를 산업자원부로 몰아 주자는 안이 아닙니다.21세기에 대비해 산업 정보 기술 정책에 관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차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언론이나 부처 사람들이 과기부와 정통부를 폐지해 산자부에 흡수시킨다고 인식해, 이것이 작업 과정에서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사실 과기부 폐지라는 표현부터 잘못되었습니다. 과학 기술 행정을 한 단계 끌어올리자는 것 아닙니까. 과기부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사무국 역할을 하면서 범정부적으로 과학 기술 정책을 체계적으로 짜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왜 과기부가 반발했습니까?

누구든지 부(조직) 없애는 것 좋아할 사람은 없죠. 그게 관료라는 사람들이죠.

국무위원 간담회가 급조되었는데, 그것 자체가 이번 조직 개편 절차의 큰 잘못으로 보입니다. 이 때부터 부처 통폐합이 물 건너간 것 아닙니까? 총리가 간담회를 요청했다면서요?

아니에요. 대통령이 바로 말씀하셨죠. 장관이 자기 부처 입장을 얘기할 기회는 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미 개편 과정에서 지나치리만큼 부처 의견을 많이 듣지 않았느냐고 재차 묻자 그는‘그러니까 모든 게 어려운 것이에요. 쉬운 게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21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요구되는 미래 지향적인 안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죠. 우선 일하는 방식과 기능을 바꾸는 것으로 대비하려는 것입니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권력 구조 문제가 끼어든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 문제가 자꾸 제기되는데, 만약 권력 구조가 바뀌면 그에 따라 정부 조직을 조정하면 됩니다. 가령 내각제가 되어 총리가 중심이 되면 중앙인사위원회 같은 대통령 직속 기구가 총리 소속으로 가면 됩니다. 총리가 통괄하는 내각이 변할 것은 없어요. 정말 어려웠던 점은 공직 사회와 그 관련 단체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벽이 너무 높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안이 국회로 넘어간 뒤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회창 총재는 만나셨습니까?

저는 어렵게는 보지 않습니다. 여야가 큰 정치를 얘기했고, 정부 조직이라는 게 여야 없이 같이 고민해야 할 사안 아닙니까. 독소 조항만 없다면 국정 운영자의 뜻에 따르는 것이 예의입니다. 이회창 총재께서 재·보선 때문에 워낙 바빠 만나지 못했습니다. 4월1, 2일쯤 만나 정부 개혁의 배경과 취지 등을 잘 설명할 작정입니다. 기획예산처가 신설되면 거취는 어떻게 됩니까?

그날로 실업자가 되죠. 노동부장관 할 때 경총에 고급인력정보센터를 만들었는데 제가 등록 1호에요. 거기서 취업 알선을 받아야죠.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에서 오라는 데도 있어요. 제가 두 번 놀아봤기 때문에 노는 데는 도가 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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