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 "중산층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9.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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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파생된 실업자 양산,중소기업 연쇄 도산 같은 문제들은 대통령이 신자유주의를 추종해서 생긴 것이 절대 아닙니다. 현실 여건이 불가피하게 그렇게 만든 것이지요.”
소득 분배 문제가 2년차 김대중 정부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에 관한 대통령의 광복절 구상을 앞두고 대통령의 뜻을 잘 헤아릴 위치에 있는 이기호 경제수석을 8월6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앞질러 말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대통령에게 누가 될까 염려한 듯 매우 신중했지만, 기본 입장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나아가 중산층 육성과 서민 생활 안정이 왜 중요한지 자신의 소신도 적극 펼쳤다. 복지부 차관과 노동부장관을 거친 그의 이력 때문일까. 이수석은 경제수석으로서 분배 문제 조율에 관한 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적임자라는 평판을 듣는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분배를 강조하려는 배경이 무엇입니까?

뭔가 하면 (그는 말 들머리에 이 표현을 즐겨 쓴다) 이런 것이지요. 온 국민이 적극 참여해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1년 반 만에 경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은 전국민의 눈물 겨운 동참 노력 아닙니까. 그런데 이 과정에서 특히 중산층과 서민층의 고통이 심했습니다. 소득 분배 구조가 크게 나빠진 것이지요. 이제 경제 회복의 성과를 이 분들에게 돌려 주어야 합니다. 얇아진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서민 생활이 안정되어야만 지속적 경제 발전이 가능합니다. 또 국민 역량을 집결해 새 천년을 열어가기 위해서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이번 광복절에 그에 대한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게 된 것입니다.

중산층과 서민 대책을 강조하던 6월이 민심 이반 현상이 나타날 때여서, 대중이 좋아할 정책으로 국면을 전환하려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 정책에서도 사회 통합에 영향을 주는 사회 정의 차원을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비경제 분야가 안정되어야 합니다. (정치 안정도 포함되느냐고 묻자) 그렇습니다. 경제 발전은 정치 안정이 좌우합니다. 가령 경제 개혁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막혀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개혁이 진행될 수 없죠.

그래서 내년 총선에서 안정 의석 확보가 필요하다고 보는 모양이지요?

어느 나라나 (정치 안정을 위해) 필수적인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 일시적이고 임기 응변적인 인기 위주 정책은 오히려 표를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치를 안해 봐서 모르겠지만, 우리 국민들은 당장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희망적인 미래를 가져다 줄 정책을 펴야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언론과 학자들은 대통령의 경제 노선이 큰 틀에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탈피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대통령의 경제 철학을 담은 ‘DJ노믹스’를 보세요. 원래 대통령의 통치 철학에는 중산층과 서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다만 지난해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일이 워낙 화급했기 때문에 이들을 살필 겨를이 없었습니다. 구조 개혁이 절체 절명의 과제 아니었습니까. 구조 조정 과정에서 실업자가 백만명이나 생겨나고 중소기업이 2만5천 개 도산했습니다.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파생한 이런 문제들은 대통령이 신자유주의를 추종해서 생긴 것이 절대 아닙니다. 현실 여건이 그렇게 만든 것이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병행 발전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장 경제에만 중점을 두었다면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도 무게 중심을 두는 것은 형평과 참여 또한 가미한 것입니다.

분배 구조 악화에 대해 어떤 대책이 강구되고 있습니까?

경제 위기를 겪은 나라치고 분배 구조가 악화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영국의 경우도 심각했는데, 이 나라는 시장 경제만 강하게 밀어붙여 중산층이 몰락했습니다. ‘대처주의’의 그늘이죠. 우리는 더 악화하기 전에 복원하려고 나선 겁니다. 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1차적 방법은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일하고 싶다는 의욕을 갖고 있고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처럼 비극적이고 고통스런 일도 없다고 봅니다. 노동부장관 시절 이를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정의 목표가 여러 가지 있지만, 일을 구하는 국민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만큼 중요한 책무는 없다고 봅니다. 이 일은 결국 민간 기업이 하는 것이지만, 정부가 여건을 조성해야지요.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조세 형평성이 높아지도록 세제를 개혁하는 것입니다. 또 근로 능력이 없는 절대 빈곤층에는 공적 부조도 해야 합니다.
생산적 복지 정책이 절대 빈곤층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유럽과 한국은 복지 수준 자체가 다르지 않습니까?

생산적 복지 대책에 중산층 육성과 서민 생활 향상을 위한 여러 방안이 담기게 될 겁니다. 일자리 창출과 근로 능력 계발이 핵심입니다. 정부가 ‘생산적 복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시혜적이고 소득 이전적인 방식을 탈피하려는 의도입니다. 고용 정책과 복지 정책을 연계해 실업자에게 일을 주고, 일을 할 수 있도록 근로 능력을 계발하려는 것이죠. 평생교육법이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것도 모든 국민이 자기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새 천년에는 인간 자본에 대한 투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근로 능력이 없는 절대 빈곤층에게는 생계비·의료비·주거비·교육비를 국가가 지원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올 정기국회에 상정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른바 ‘없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가진 자 때리기’로 나타날 것이라는 걱정도 있는 듯합니다.

그런 측면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본 축적 과정이 정당하고 제대로 세금을 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당한 부를 인정해야 자본주의가 성숙할 수 있습니다. 시장 경제란 수익성을 인정하고, 돈을 벌려는 유인을 주어야 꽃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경기 회복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러한 조언들을 경청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산업 생산이나 가동률 같은 실물 경제 지표들을 볼 때 과열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앞으로 예의 주시해야 할 겁니다.

대우그룹 등 5대 재벌의 구조 조정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8월 하순께 발표되겠지만, 대우그룹을 뺀 네 재벌은 상반기 재무 구조 개선 약속을 모두 이행했습니다. 대우그룹 문제는 채권단이 이행계획서를 8월 중에 확정할 것이고,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시할 것입니다. 현재 대우자동차는 GM과 전략적 제휴를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했고, 대우전자와 조선도 매각 협상이 크게 진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도 빨리 구조 조정이 이루어지도록 애쓸 것입니다.

대우자동차 경영권이 GM에 넘어가고 삼성자동차가 닛산 등에 넘어간다면 자동차 양사 체제라는 정부의 희망은 깨지는 것 아닙니까. 7월 중순 삼성차가 닛산에 인수될 가능성을 언급하신 적이 있지요?

잘못 알려져 곤욕을 치렀습니다. 삼성차는 단위 독립 경영 체제로는 채산성이 없지만, 기존 자동차 회사가 인수하면 직접 비용만 들이면 되기 때문에 채산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우·현대·GM·포드·닛산 같은 국내외 자동차 회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하다는 일반적 얘기를 한 것뿐입니다. 양사 체제…, 글쎄 앞으로 여러 선택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삼성차는 채권·채무 관계가 정리되면 입찰에 붙여질 겁니다. 그때는 국내외 제한을 두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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