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배 6월민주항쟁 10주년사업 범추위 대표 “6월항쟁 정신, 북한 동포 돕기로 계승”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7.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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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은 광범위한 스펙트럼 위에서 민주 사회로 가는 출발점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과연 이 정부는 우리가 10년 전 목놓아 외쳤던 민주·정의를 완성해 가고 있는지 회의가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6월항쟁 정
무슨무슨 기념회가 넘쳐 나는 한국 사회에서 6월항쟁을 기념하는 단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한 가치가 없거나, 아니면 기념할 주체가 나서지 않거나,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연인원 5백만 명이 참가한, 한국 현대사 최대의 전국민적 항쟁. 6월항쟁은 오히려 주체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지난 10년간 자기가 몸 담은 공간에서 묵묵히 ‘6월 정신’을 실천해 오던 이들이 드디어 모였다. 부문·지역 운동 단체가 손잡고 ‘6월민주항쟁 10주년사업 범국민추진위원회’(범추위)를 만든 것이다. 김중배 범추위 상임공동대표를 만나 보았다.

올해 초 노동자 총파업의 열기를 범추위가 6월항쟁 10주년 사업으로 힘있게 끌고 가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뒤 한보 비리·김현철 사태·대선 자금 문제 등 사회적으로 뜨거운 이슈가 끊이질 않았지요. 전국민적인 관심사가 북한 동포 돕기에 쏠려 있기도 하고요. 시민·노동·여성 운동, 종교 단체 등 범추위에 속한 단체들도 모두 여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87년 6월항쟁이 7∼8월 노동자 대투쟁, 통일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범국민적인 북한 동포 돕기는 6월항쟁의 진정한 정신을 계승하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5월26일 10주년 사업 선포식을 할 때 범추위는 92년 대선 자금을 공개하라는 성명서를 채택했는데요. 소속 단체들의 색깔이 다양한 만큼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데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우리는 6월항쟁을 단순히 ‘기념’하고자 모인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정치 자금 관행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6월항쟁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YS가) 대선 자금 공개 요구를 무시한다면 거센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채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1월14일 박종철 열사 10주기 추모식 때도 범추위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처리와 관련해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박종철군이 안기부에서 참변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안기부법이 제정된 이후 굳어진 악법적인 질서 관행 속에서 죽어갔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6월항쟁 정신을 강조하시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저는 57년부터 거의 30년 간을 신문사에 몸 담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4·19, 부마항쟁, 80년 서울의 봄 등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대목을 현장에서 모두 지켜보았습니다만 6월항쟁만큼 지역과 계층을 초월해 광범위하게 일어난 민주화운동은 일찍이 본 일이 없습니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연인원 5백만 명이 참가했으니까요. 6월항쟁은 광범위한 스펙트럼 위에서 민주 사회로 출발하는 시발점이었다고 봅니다. 경위야 어찌됐든 문민 정부라는 탈(脫)군부 정권을 만들어 낸 지 벌써 4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정권이 10년 전 우리가 목놓아 외쳤던 민주·정의를 완성은 못할지언정 근접이라도 해가고 있는지 회의가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반전’까지는 아닐지라도 ‘휴면’ 비슷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나 할까요. 6월항쟁 정신은 우리에게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역사 발전을 촉구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6월항쟁 성과 가운데 하나로 시민운동 활성화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이른바 ‘경실련 파동’ 이후 시민운동의 위기를 지적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참여연대에서도 ‘이것은 경실련만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시민운동 단체가 시민들에 대해 진 빚’이라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오히려 민족민주운동·노동운동·시민운동 등으로 운동의 영역이 다양해지면서, 각자 차별성·편차 등을 강조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봅니다. 분단 체제에 놓인 한국적인 특수 상황에서는 오히려 모든 운동이 상호 보완적이고 연대 가능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번 노동법·안기부법 파동 때 노동운동 단체뿐 아니라 시민·여성·환경 단체까지 결합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던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민족민주 운동권이 채택했던 전술 면에서 본다면 이미 87년·92년 대선에서 연거푸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올해 대선에는 어떤 전략으로 임할지 궁금합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분열되지 않는 공약수를 찾아야 하겠지요. 지난 5월26∼27일 범추위가 주최해 ‘6월 민주항쟁과 한국 사회 10년’ 연합 심포지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그 문제가 여러 차례 제기됐습니다. 범추위를 구성하는 단체들의 성향이 다양하다 보니 상이한 입장도 제기됐습니다.
범추위에 속한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제396호)에서 조직이 결정하면 독자 후보로 출마할 수도 있다는 뜻을 비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선이라는 정치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민주노총과 재야 일부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정치 세력화라는 것이 추상적인 수준이지요. 지역적인 토대 없이, 운동가로서는 검증받았을지 모르나 현실 정치인으로서는 검증받은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갑자기 대선 후보로 비약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고요. 어쨌든 실패는 두 번으로 충분하지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좀더 신중한 결정이 나올 것입니다.

87년 6월항쟁의 시발점이 된 국민대회를 기리기 위한 6·10 대동제는 범추위가 예고한 대로 시청앞 광장에서 치르게 됩니까?

지난 5월 셋째 주 서울시가 행사를 허가할 수 없다고 정식으로 통고해 왔습니다. 교통 문제나 경찰과의 합의만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별 문제 없을 것이라던 몇 달 전 입장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도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면서까지 대동제를 강행할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서울시가 공문 마지막에 ‘이런 집회는 시민 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고, 국가 시책이나 시정 방침과 일치하는 집회가 아니다’라는 이유를 달았다는 점입니다. 절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모두는 여기에 대단히 분노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제나 민선 시장 체제 출범이 모두 6월항쟁으로 앞당겨진 것 아닙니까. 나아가 민주적인 시민 의식을 확인하고 고양하자는 행사가 무엇 때문에 국가 시책이나 시정 방침과 어긋난다는 것인지, 서울시와 조 순 시장은 분명하게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만약 김영삼 대통령이 한보 특혜나 대선 자금 문제와 연루돼 있지 않음을 투명하게 밝힐 수 있다면 시민 대동제에 동참해도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6월항쟁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닭장차’에 끌려 가는 유명한 사진을 남긴 분이니까요. 필리핀의 경우 ‘피플스 파워(People’s Power)’ 기념식 날 코라손 아키노나 라모스가 참석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상황에서 그것이 과연 시민 정서에 부합할지는 더 고려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을 만나 특별히 요구할 사항이 있습니까?

△6월10일 대동제를 시청앞 광장에서 치르게 해 달라 △6월10일을 법정 기념일로 제정해 달라 △허정길씨를 사면해 달라 세 가지를 요구할 생각입니다. 허정길씨 문제의 경우 젊은 전경을 죽음에 이르게 한 허씨의 책임에 대해서는 범추위 또한 섣불리 뭐라 할 수 없습니다(56쪽 관련 기사 참조). 그러나 재판부도 인정했듯 과실 치사가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6월항쟁 10주년이 되는 오늘까지 형기의 3분의 2를 채운 한 젊은이가 영어의 몸이라는 사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간 수많은 정치적 파렴치범이 사면·가석방·형 집행 정지로 풀려난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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