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죽는 땅,사람은 살 수 있나
  • 경남 거제·金恩男 기자 ()
  • 승인 1997.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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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백로 ‘떼죽음’ 원인 논란…화학 물질 중독일 경우 인체 안전 ‘적신호’
간밤에도 백로는 수십 마리가 더 숨져 있었다. 살아 있는 백로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날기는커녕 걷지도 못하는 새가 태반이었고, 비틀비틀 걷다가 주저앉는 새도 있었다.

지난 10월14일 백로 2백여 마리가 떼죽음당했다는 보고를 받고 현장(경남 거제시 사등면)에 출동한 산림청 관계자들은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할 말을 잃었다. 산림청은 백로들의 시체를 즉각 수의과학연구소로 보내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을 맡은 전문가들의 머리 속에 맨 먼저 떠오른 사인(死因)은 독극물 중독이었다. 물론 이번 같은 대규모 참사는 한 번도 없었지만, 이제까지 수십 마리씩 무리지어 죽은 새들의 배후에는 어김없이 ‘인간의 간섭’이 있었다. 그러나 독극물 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했다.

10월 셋째 주, 민병윤 교수(경남대 국제환경연구소)는 뜻밖의 의뢰를 받았다. 그는 조류학자이지만 새떼의 사인을 규명하는 작업에 참여한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민교수는 죽은 백로 4마리가 자기 앞에 전달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란 DDT·BHC·PCB 따위 유기염소계 화합물이 백로의 죽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유기염소계 화합물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20년간 민교수의 일관된 연구 주제였다.

분석 의뢰를 받아들인 민교수는 10년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바다표범 떼죽음 사건’을 떠올렸다. 88년 4∼10월 여섯 달 남짓한 동안 유럽 북해에서 바다표범 1만8천여 마리가 급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유럽 전체 바다표범의 60%를 차지하는 숫자였다. 영국·독일·네덜란드 등 인근 나라들은 곧바로 공동 조사에 들어갔다. 처음 밝혀진 원인은 디스템퍼 바이러스. 바다표범은 이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숨진 것으로 분석되었다.

90년대 ‘내분비계 교란’ 공포 널리 퍼져

그로부터 7년 뒤 연구자들은 그 배후에 숨은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바다표범이 즐겨 먹는 물고기의 몸 속에서 PCB 등 합성 화학 물질이 높은 농도로 검출되었으며, 이들 독성 물질이 바다표범의 면역 체계를 무너뜨려 바이러스 저항력을 떨어뜨렸다는 연구 결과가 그것이다.

백로 사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민교수는 바다표범 떼죽음 사건과 유사한 점을 상당수 발견했다. 우선 백로의 직접 사인은 살모넬라균 감염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살모넬라균 질병은 콜레라·가금인플루엔자와 함께 ‘3대 전염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새들이 쉽게 감염되는 질병이다. 문제는 백로들이 무엇 때문에 이토록 무력하게 살모넬라균에 쓰러졌나 하는 점이었다.

자연계에는 살모넬라균이 2천 종 넘게 떠다니고 있다. 이 병균은 새들의 장 속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건강한 새라면 이에 대한 저항력을 지니고 있다. 거제 백로들은 북해의 바다표범처럼 이같은 저항성, 곧 면역 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살모넬라균에 몰살당했으리라고 민교수는 가설을 세웠다.

그는 유기염소계 분석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는 일본 에히메(愛媛) 대학에 문제의 백로를 들고 가 체내 오염 물질 농도를 측정하고 이같은 가설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백로에게서 검출한 유기염소화합물 평균 농도는 PCB 0.30ppm, BHC 2.65ppm, DDT 1.97ppm으로,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비교 자료가 있었다. 81년 그는 같은 지역(경남 거제)에서 알·새끼·성체 별로 백로의 유기염소화합물 평균 농도를 잰 일이 있었다. 당시와 비교했을 때 백로들은 2∼3배 더 높아진 오염 농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 정도 농도라면 백로 자체의 면역성을 저하시켜 병원성 세균에 감염될 소지가 매우 높다’고 민교수는 결론지었다.

민교수의 가설이 맞다면 이것이 일으킬 파장은 엄청나다. ‘내분비계 교란 물질(endocrine disruptor)’의 공포가 국내에서 현실로 나타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생소한 용어이지만 90년대 들어 구미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내분비계 교란 물질은 유해 화학 물질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60년대는 DDT, 70년대는 PCB, 80년대는 다이옥신’으로 상징되는 유해 화학 물질의 독성을 이제까지 학자들은 주로 암 또는 기형 발생과 연관지어 연구해 왔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 이들 물질이 지금까지 알려진 독성말고도 생물체의 내분비계 기작을 교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따로따로 연구되던 이들 물질이 내분비계 교란 물질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유기염소계 화합물은 내분비계 교란 물질의 대표 격이다.

내분비계는 기체 발달과 생식을 관장하는 계통으로, 포유류에 특히 발달해 있다. 곧 이번에 떼죽음당한 백로들도 화학 물질이 몸 속에 쌓여 내분비 계통에 이상이 생겼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같은 해석이 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인체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먹이사슬의 윗 단계로 올라갈수록 오염 축적 농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외국의 한 연구는 물 속에서 0.05ppb로 추정되었던 DDT가 플랑크톤에서는 0.04ppm, 물고기에서는 2.07ppm, 물고기를 먹는 새에서는 75.5ppm으로 계속 높아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간은 이같은 먹이사슬의 최종 단계이다.

민병윤 교수의 가설이 파문을 일으키자 산림청은 지난 11월4일 서둘러 ‘백로 폐사 원인에 대한 최종 결론’을 발표했다. 산림청 발표에 따르면 백로들이 죽은 직접 원인은 ‘살모넬라균 감염에 의한 식중독과 패혈증’이었으며, 간접 원인은 ‘장거리 비행에 따른 과도한 에너지 소모와 수은 및 유기염소계 농약 성분’이었다.

유기염소계 화합물,면역체계에 '치명타'

그러나 장거리 비행은 백로 같은 철새들의 숙명이다. 물론 이동하며 죽어가는 새들도 있지만(자연 사망률 成鳥 17%·乳鳥 40%) 이번처럼 거의 모든 새가 떼죽음을 당하지는 않는다. 결국 이는 지방에 축적되어 있던 오염 물질 농도가 급상승한 데 원인이 있다고 민병윤 교수는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유해 화학 물질의 ‘악마적 특성’으로 극단적인 안정성과 지방에 대한 친화성을 꼽는다. 곧 유해 화학 물질은 물이나 불에 잘 분해되지 않으며 생물체의 지방에 쉽게 들러붙는다. 이번에 떼죽음당한 백로들도 지방층에 PCB·BHC·DDT 따위를 다량 함유하고 있었다. 문제는 백로가 에너지를 소모할수록 지방이 타들어가면서 이들 화학 물질의 농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죽은 백로들은 알을 깨고 나오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상태였다.

산림청은 이번 발표에서 한국의 경우 DDT는 71년, BHC는 79년에 각각 사용 중지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백로가 오염 물질에 노출된 곳은 한국이 아니라 한국에 오기 전 이들이 서식한 지역, 곧 시베리아·만주·북한 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새끼에게 오염 물질을 넘겨준 어미 새가 지난 겨울을 났을 동남아시아 또한 오염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유기염소계 농약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책임 방기 내지는 사실 은폐 기도’일 수 있다는 것이 ‘초록 빛깔 사람들’(거제 자연 생태계 보존 모임) 조순만 대표의 주장이다. 이번 산림청 발표는 결국 나라 밖으로만 책임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림청은 ‘시베리아·만주 등지에서 동해안을 따라 날아 왔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번에 죽은 백로들의 이동 경로를 정확히 알기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는 거꾸로 백로들이 국내 다른 지역에서 오염된 먹이를 섭취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 떼죽음당한 생물체가 없는 만큼 백로가 한국에서 오염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산림청의 반박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을 찾는 철새들의 서식 행태에 우려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조류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의 철새 도래지는 주남저수지·낙동강 유역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천수만·아산만·금강 등 서해안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 이는 산림청 산하 임업연구원이 92∼97년 전국의 철새 도래지 17곳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천수만 철새,수 많지만 종류 빈약

물론 이는 산림청 발표대로 ‘기계화 영농이 시작된 뒤 서해안에 먹이가 풍부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해안에 모여드는 새는 비정상으로 높은 밀도를 보인다는 것이 민교수의 지적이다. 이는 과거의 도래지가 심각하게 오염되었다는, 다시 말해 국내에 더 갈 데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국립중앙과학관 자연사 연구실 백운기 박사 또한 “서해안을 찾는 새가 개체 수는 늘었을지언정 종(種) 구성에서는 매우 빈약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한 예로 천수만은 지표상 41종 22만여 마리가 날아드는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민물가마우지·고니·매 따위는 한두 쌍밖에 날아오지 않아 종의 다양성 측면에서 보자면, 빈민국 중에서도 최빈민국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토가 화학 물질에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림청이 내놓은 향후 대책은 난센스에 가깝다. 그 대책이란 △야생조수보호대책위원회 설치 △야생 조수 질병에 대한 연구 강화 △전국 5백60개 조수보호구역 전면 재정비 등이다.

‘야생 조수 보호·관리’를 맡고 있는 산림청 차원에서 사건을 처리하고 종결한 이상 이처럼 ‘어긋난 결론’은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비판하는 환경론자들은, 이번 사건이 ‘새도 못 살게 된 이 땅이 과연 사람이 살 만한 땅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같은 관점에서 ‘환경부를 중심으로 하여 범정부 차원으로 생태계 보존 대책을 수립해야만 한다’는 것이 초록 빛깔 사람들 조순만 대표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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