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에 노벨 물리학상 받은 양체닝 박사 “동양사상, 과학 발전에 도움 준다”
  • 金尙益 차장 ()
  • 승인 199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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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첸닝(陽振寧) 박사. 한국인에게는 매우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베스트 셀러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은 독자라면 그의 이름이 어렴풋이 떠오를 것이다. 그 소설에서 양박사는 이휘소 박사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선배 물리학자로 등장한다. 양박사는 57년 35세라는 젊은 나이로 노벨상을 받은 중국계 천재 물리학자이다. 그는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중 생존해 있는 최고 원로이다.

8월28일, 96년 한국에 세울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APCTP) 추진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려고 서울을 방문한 양박사를 숙소인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추진위원회 특별 고문으로 활동하는 양박사는 이 국제 기구가 설립되면 “과학 발달 수준이 서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기초 과학 발전에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초 과학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양박사는 아시아에서도 기초 과학의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낙관적인 견해를 폈다.

아시아 사람으로서는 드물게, 그것도 35세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으셨는데, 양박사께서 만약 중국에서 계속 공부했더라도 그같은 학문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중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는데, 당시 중국에는 박사 과정이 개설되어 있지 않아서 45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높은 학문적 성과를 이루려면 많은 실험 결과와 최신 정보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중국에서 학문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노벨상을 받은 분야는 실험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론 물리학 분야였기 때문에 중국에서 공부했더라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아시아 출신 과학자 여러 사람이 선진국에서 열심히 공부해 큰 업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구미 학자들에 비해 학문적으로 처지게 되더군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아시아 과학자가 자기 나라로 돌아간 뒤 자꾸 처진 이유는, 그 나라의 경제력과 산업 발달 수준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시아도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이론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湯川杏樹·20세기 초엽 원자핵 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 이론을 제공했음) 박사는 줄곧 일본에서 공부했는데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도 화뤄겅(華羅庚) 박사는 50년대 초반 미국에서 잠깐 공부하고 돌아갔지만 중국에서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론 물리학 분야는 아시아에서도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론 물리학 역시 많은 연구비를 투입해야 하는 실험 물리학과 상호 보완적 관계를 맺고 발전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많은 아시아 국가가 아직 기초 과학에 투자할 만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 아닙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나 과학 실험을 하는 데 반드시 값비싼 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과학은 비싼 것만 연구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지난 10여 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20~30년간 큰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이같은 전자공학의 성과는 장차 한국의 기초 과학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정대로 96년에 아·태이론물리센터가 설립될 경우 아시아의 젊은 과학도에게 자극을 주고 아시아 각국의 기초 과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초대 소장으로 취임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아직은 토론하는 단계입니다. 따라서 결론이 어떻게 날지 이 자리에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양박사는 이 대목에서 느닷없이 ‘<시사저널>이 창간된 지 몇 년이나 됐느냐’고 질문했다. ‘6년 됐다’고 말하자 그는 답변을 이어나갔다). 60년 전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창간됐을 때 경제·사회적으로 시기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그 잡지는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시사저널>이 6년 전 창간됐다면, 한국의 국력으로 미루어 성공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이론물리센터가 생긴다면 그것은 매우 ‘타임리(timely)’한 것입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물리학회는 한국에 이론물리센터를 짓기로 결정하고, 93년 도쿄 대학 핵물리연구소 와이 야마구치 박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총 2백39억원이 소요될 이 사업에서 한국은 연구실·도서관·숙소 등 시설 투자에 1백39억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백억원은 다른 회원국이 분담한다. 아·태이론물리센터는 그때그때 주제를 정한 뒤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을 초청 연구원으로 불러들여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 논문을 발표토록 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아시아 각국의 석·박사급 물리학도를 위해 여름과 겨울에 세계 석학의 특별 강좌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이같은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추진위원회는 양박사 같은 원로를 초대 소장으로 모셔 오려고 하지만 그는 아직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동양의 사상이나 철학이 과학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보지 않으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모든 아시아인은 과거와 달리 서양의 사상과 문화를 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직도 아시아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보수적인 유교 사상이 과학의 발달을 저해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맹자의 사상은 사람의 태도에 관한 사상이며, 그 사상에 기반을 둔 아시아 각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저는 동양적 규범이나 사상, 가족제도 같은 것은 과학 발전에 플러스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동양계 학생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고 학문 수준이 높습니다. 물론 유교적 보수주의가 과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예컨대 능력이 뛰어난 학생이 용기를 내지 못해 크게 도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시아 사회는 천재적인 학생들이 더 대담하게 도전하고 진전할 수 있도록 북돋우고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교육 제도는 그같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입학 시험 제도라든지 하는 아시아의 교육 시스템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학생들이 광범위한 분야에 관심과 흥미를 갖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하여 양박사가 재직하던 프린스턴고등연구소와 유사한 고등과학원을 설립할 계획입니다. 과거의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를 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뱀버거라는 재산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29년 주가 대폭락 직전에 주식을 팔았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큰 돈을 내놓고, 프린스턴 연구소 초대 소장을 역임한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박사에게 연구소 설립을 위임했습니다. 플렉스너 박사는 모든 분야를 다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특별한 분야 하나만을 선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아인슈타인·폰 노이만·허만 바일 등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세 사람을 모셔왔습니다. 그 선택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등과학원도 그렇게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이휘소 박사의 죽음을 다룬 한국 소설에 양박사님이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작년에 한국 물리학자들을 만났을 때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이휘소 박사를 64년에 처음 만났는데 하도 물리를 잘해서 제가 있는 연구소로 끌어 왔습니다. 그는 정말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양박사께서는 핵물리학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기셨는데, 핵이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정치·군사적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원자탄 같은 것은 과학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생겨나는 부정적인 현상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위한 바이오 테크닉이나 바이오 엔지니어링도 원자탄처럼 위험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의 발전을 중지시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과학과 기술을 지혜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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