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철새 낙원'' 주남 저수지에서 환경 전투
  • 부산·박병출 주재기자 ()
  • 승인 1995.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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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 저수지 부근 군부대 아파트 건립싸고 군·관·시민단체 대립
세계적 철새 도래지인 주남 저수지 주변에 건립하는 군부대 아파트를 놓고 ‘환경 전투’가 뜨겁다. 육군 ○○부대 예하 칠성사업단이 이 저수지에서 50m도 떨어지지 않은 경남 창원시 동읍 신방리 일대에 천 세대 규모의 고층 아파트 건립을 강행하자, 시민단체들이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마산·창원 환경운동연합은 “철새들이 비행 공간 차단과 수질 악화로 심각한 위해를 입게 된다”며 아파트 터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촉구해 왔다. 최근에는 전국 40개 시민단체가 ‘주남 저수지 보존을 위한 대규모 아파트 건립 저지 범국민 대책위원회’를 결성해 대대적인 공사 저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칠성사업단은 적용 법규 문제로 창원시와도 공방을 벌이면서 1년 간이나 불법 공사를 계속해 ‘구시대적 군사주의’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방적으로 시작한 공사는 현재 군무원 아파트 15층 8개 동(9백60세대), 장교 기숙사 12층 1개 동(2백30실), 상가, 유치원 등의 골조공사를 마무리하는 단계이다. 마산·창원 환경운동연합은, 칠성사업단이 환경 문제에 따른 반발을 의식해 밀어붙이기식 공사로 아파트 건립을 기정사실화하려 한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

군 당국 “아파트도 군사 시설”

그러나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창원시(착공 당시 창원군)가 직무를 유기해 결과적으로 군 당국의 불법 공사를 조장한 사실도 드러났다. 칠성사업단은 5공화국 시절인 85년 2월 대통령 재가를 뜻하는 ‘특호 지시’에 따라 부대를 외곽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창원군은 절대 농지까지 전용 승인을 내주는 등 적극 협조했다. 환경단체들은 창원군이 공시지가가 평당 3만원 선인 주민들의 농지를 평당 15만원 이상으로 높게 받아주는 조건으로 ‘부동산 중개’도 맡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파트 건립에 대한 적용 법규 문제로 군 당국과 이견이 생기자, 창원군은 무력하게 물러서고 말았다. 1년 가까이 군 당국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창원시와 칠성사업단이 대립하고 있는 부분은 아파트의 용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창원시는 아파트가 군부대와 떨어져 있고 입주 예정자도 군무원이 대부분인 만큼, 일반적인 ‘공동 주택’(아파트)에 불과하다고 간주했다. 따라서 주택건설촉진법을 적용할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달리 군 당국은 아파트가 군사 시설이라고 주장한다. 국방부로부터는 ‘군사 목적에 직접 공용되는 시설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군사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군사 시설로 볼 수 있다’는 유권 해석도 받았다.

칠성사업단은 이를 근거로 지난해 5월과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창원시(군)에 ‘건축 협의’를 요청했다. 군사 시설은 법적으로 ‘공용 시설’에 해당해 행정 협의만으로 건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원시는 문제가 커진 지난 3월에야 사업단측에 ‘공동주택 건립에 따른 주택건설촉진법상 절차를 이행하라’는 회신을 보냈다. 지난 5월 감사원이 실시한 국방부 감사 과정에서는 창원군이 94년 5월 접수한 1차 건축 협의 요청을 민원 대장에 등재조차 않고 방치한 사실도 드러났다.

환경단체들의 여론이 들끓자 감사에 나선 감사원은, 칠성사업단의 불법 착공 사실을 지적하고 관계자 2명을 징계하도록 통보했다. 협의를 기피한 창원시 관계자에게도 같은 조처를 취했으나, 아파트가 ‘무허가 건축’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는 창원시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하지만 적용 법규에 대해서는 군 당국의 입장을 수용했다. ‘양시론’을 취한 것이다. 그런데도 창원시는 칠성사업단측에 ‘주택건설촉진법상의 절차(건축 승인)’를 계속 요구하다 6월19일 무허가 건축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은 창원경찰서에 접수됐으나, 피고발인이 군부대이므로 사건은 군 수사기관으로 이첩된다. 그래서인지 칠성사업단은 아직까지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그간의 과정을 살펴보면, 창원시는 두 가지 큰 잘못을 저질렀다. 우선 엄청난 규모의 ‘무허가 건축’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구체적 행동을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뒤늦은 ‘절차이행 촉구’가 전부였다. 일반 주민이 방 한칸만 달아 내도 단속반이 달려오는 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군 기피증’이 확연히 드러난다.

창원시는 지금이라도 건축 승인 절차만 밟으면 다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칠성사업단측도 창원시와 언제든 협의에 임하겠다고 밝힌다. 누군가가 먼저 자존심을 꺾어 ‘승인’과 ‘협의’중 택일만 한다면, 아파트는 간단히 ‘합법 건축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양측이 절차 싸움에 몰두해 주남 저수지의 환경 문제를 도외시했다는 사실이다. 창원시는 주남 저수지의 보호 가치에 대해 처음부터 검토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94년 2월 칠성사업단이 현위치에 건축 가능 여부를 질의하자, 주택건설촉진법에만 적합하면 가능하다고 회신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당시 군 당국이 질의서에서 ‘군 숙소(국방·군사 시설)’로 명시했는데도 창원군이 아무런 설명 없이 ‘군 숙소(공동주택)’라고 표현을 바꿔 회신한 것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라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들이 창원시를 제쳐두고 군부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도, 행정 당국의 환경 의식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다. 범국민대책위는 여러 차례에 걸쳐 창원시에 아파트 부지 이전 조처와 함께 우선 이 아파트가 철새에 미칠 영향이 정확히 가려질 때까지라도 공사를 중지시켜 달라고 촉구했다. 시당국은 ‘아파트 건립으로 예상되는 제반 문제점을 준공 전에 해소하도록 계속 행정 지도를 하겠다’는 답변에 그쳤다.

환경단체의 반발이 증폭되는 가운데, 지난달에는 시장실에서 칠성사업단·낙동강 환경관리청·창원농지개량조합 등의 관계자 10여 명이 ‘아파트 환경(오염) 저감 대책 협의’를 갖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현 설계대로 산소요구량 25ppm 수준의 방류수가 저수지에 바로 유입되면 수질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칠성사업단측은 예산상의 문제를 들어 폐수 배출구 이전에는 난색을 표했다. 시장이 ‘불법 건축주’와 마주앉아 건축 과정을 협의하고도, 끌려 다닌 꼴만 보인 것이다.

이에 대해 범국민대책위나 관련 학계는 지엽적인 대책으로는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병윤 교수(경남대·조류학)는 “조류가 아파트를 피해 저수지 한쪽으로 몰리게 되면, 군집 간의 투쟁과 서식 장소 부족으로 급격한 개체수 감소가 불가피하다. 야행성 조류가 불켜진 아파트 유리창에 충돌할 우려도 높다”고 지적했다. 민교수는 그밖에도 입주자 차량의 소음, 도시형 오염 물질인 유기염소계 화합물의 축적 등을 걱정했다.

“행정구역 개편 틈탄 공무원의 복지부동 탓”

칠성사업단과 창원시를 상대로 한 싸움에 소득이 없자, 대책위는 환경부와 국방부로 수위를 높여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양 부처에 항의성 공개 질의서를 보낸 데 이어, 7월 21일에는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국방부를 항의 방문했다. 대책위는 아파트 이전을 기어이 성사시킨다는 목표로 오는 9월17일 ‘주남 껴안기 대회’를 열기로 했다. 참가자 만여 명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주남 저수지를 껴안고 국민적 관심을 과시한다는 계획이다.

대책위측은 이번 싸움을 ‘세계화’하는 전략까지 세워두고 있다. 현 상황을 세계 각국의 철새·환경 보호단체에 알려 ‘청와대에 항의 편지 보내기 운동’을 유도하기로 한 것이다. ‘나라 망신’을 시켜서라도 뜻을 이루려는 이면에는, 이번에 물러서면 민간 아파트가 우후죽순 식으로 들어설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주남 저수지를 생태계 보호구역으로 지정받겠다는 뜻도 들어 있다. 다만 현재 절반 넘게 건축된 대규모 아파트를 철거할 수 있을 것인가에는 의문이 남는다.

이번 사태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이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라는 지적도 있다. 창원군은 지난 1월 창원시와 통합됐다. 칠성사업단의 1차 협의 요청이 접수조차 되지 않은 것은, 담당자 선의 실수라기보다 통합 창원시로 짐을 떠 넘기기 위한 창원군의 ‘고의적 직무 유기’ 혐의가 짙다. 특히 창원군은 시·군 통합 직전 건축허가를 마구잡이로 내줘 통합 후 창원시가 일부 허가를 취소한 사례까지 있어 의혹을 더한다. 통합 창원시 역시 불법 아파트 공사 처리에 시간을 끌며 민선 시장 선거를 기다린 태도가 역력하다. 군 당국을 고발한 후 취임해 입장이 홀가분해졌다는 것말고는, 민선 시장 체제에서도 달라진 점은 눈에 띄지 않는다. 환경이라는 ‘공’만 이리저리 굴러가며 만신창이로 변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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