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침, 원격 치료의 마술사/이침 · 수지침
  • 오윤현 기자 (noma@e-sisa.co.kr)
  • 승인 200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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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침·수지침 요법 새롭게 '각광'…
진단·처방 간단해 일반인도 시술 가능
텔레비전으로 야구를 보다가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으면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아마 열에 아홉은 리모컨을 이용해 채널을 조정할 것이다. 이때 당신은 구태여 자리에서 일어설 필요가 없다. 가장 편안한 자세에서 그저 버튼만 꾹꾹 누르면 된다.


최근 이처럼 편리한 리모컨 기능을 이용해 사람 몸을 다스리는 기술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치료용 리모컨'은 검고 납작한 텔레비전용 리모컨과는 아주 딴판이다. 모양·크기·무게·역사에서 어느 것 하나 비슷한 점이 없다. 그렇다면 이 별난 리모컨의 정체는? 바로 침(鍼)이다.




한의학 치료법에는 오래된 공식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좌병우치(左病右治). 왼쪽에 병이 있으면 오른쪽을 다스리라는 말이다. 반대 뜻을 지닌 우병좌치(右病左治)와 상병하치(上病下治)도 있다. 이처럼 한의학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각종 질환을 '원격 치료'해 왔다. 침은 늘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발목을 삐거나 속이 쓰릴 때 손이나 귀에 꽂아 치료하는 식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귀와 손발은 인체의 모든 부분 반영"


한의사 이경제씨(35·동의한의원 원장)와 수지침 전문가 곽순애씨(49·수원대 강사)가 경쟁하듯 펴낸 〈이침(耳鍼) 이야기〉(김영사)와 〈행복을 지키는 과학 수지침 30분〉(넥서스북스)은, 환부로부터 먼 곳에 꽂히는 침이 어떻게 병을 치료하는지 자세히 설명한 안내서이다. 이경제 원장은 '귀와 손발은 인체의 부분적인 기관이지만, 신장·대장·혀·눈·뒷머리·비장 등 인체의 모든 부분을 반영하고 있다'라고 '원격 치료'가 가능한 이유를 설명했다. 곽순애씨도 '손은 인체의 축소판이다. 특히 다섯 손가락은 간·심장·신장·비장·폐와 관계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침의 효능에 대해 할 얘기가 더 남아 있을까. 최근 의학자들은 기존 치료 효과보다 새로운 치료 효과에 더 주목하고 있다. 10월11∼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11회 국제 동양학술대회'에서는 침으로 만성 변비·소아 근시·방광염·원형탈모증 같은 고질병을 치료하거나 개선시킨 사례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같은 침의 경이로운 효과는 전문가 도움 없이 결코 맛보기 힘들다. 하지만 침을 이해하고 침 놓는 법을 제대로 익힌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일반인의 무딘 손끝으로도 웬만한 질병쯤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곽순애씨는 "손바닥의 기맥만 확실히 알고 있으면, 침을 놓거나 눌러줌으로써 누구든 쉽게 효과를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정과 직장에서 효과 있게 침을 활용하려면 우선 침과 관련된 지식을 알아두는 것이 유리하다. 먼저 침 종류. 침은 길이·굵기 그리고 놓는 자리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두침(頭鍼)·안침(眼鍼)·척추침(脊椎鍼)·수지침(手脂鍼)·족침(足鍼)·사암침(팔다리에 놓는 침)이 자주 이용되는 침이다. 요즘에는 벌침을 이용하는 봉침(蜂鍼)과 귀에 놓는 이침(耳鍼)까지 등장했다.




이경제 원장은 9년째 이침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이원장에 따르면, 이침은 기원 전 5000년께 이집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현대에 와서 실용화한 인물은 프랑스 의사 장 폴 노지에였다. 1957년 노지에는 한 환자의 귀에 난 흉터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호기심에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환자는 대수롭지 않게 "좌골신경통을 치료하기 위해 불로 지진 자리다"라고 말했다.


노지에는 즉시 연구에 착수했다. 그리고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 귀의 각 부위가 신체의 장기·신경관·근육 등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귓불은 머리, 연골은 척추, 귓바퀴 위쪽은 다리·팔·손목과 상응되어 있었다. 귀 안쪽은 오장육부와 나란히 잇닿아 있었다. 2천여 환자를 임상 실험한 결과 그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이경제 원장은 언제 어디에서나 시술이 가능하고 만성 피로 질환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침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문가 이외에는 이침을 시술할 수 없다며 "일반인들은 이(耳) 스티커 침을 이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스티커 침은 금주·금연·금식에 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연침은 붙이자마자 담배맛이 달라질 정도로 확실하다.


금연 침 붙이자마자 담배맛 달라져


이원장은 기자에게 '평소 어디가 허약하냐'고 묻고, 스티커 침을 직접 귀에다 붙였다. 침 길이는 3mm쯤 되었는데, 작은 반창고에 고정되어 있었다. 침은 붙일 때만 잠시 따끔할 뿐, 통증은 거의 없었다. 10여 분이 지나자 귀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이원장은 대개 12∼24시간 정도 붙여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침 요법의 가장 큰 이점은 진단과 처방이 간단하다는 것이다. 이쑤시개나 나무젓가락으로 진단할 수도 있다. 귀의 곳곳을 눌러보아 아프면 그에 상응하는 신체 장기의 기가 막혀 있다는 뜻이다. 왼쪽이 아프면 왼쪽 귀에 스티커 침을 붙이고, 오른쪽이 아프면 오른쪽 귀에 붙인다. 그렇다면 얼마만큼 아파야 병이 난 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가 나거나,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면 이상이 있는 것이다. 스티커 침은 의료기 판매점에서 구할 수 있는데, 50개에 3천원 정도 한다.


1971년 류태우씨(고려수지침요법학회장)가 처음 개발한 수지침 요법도 원리는 이침과 별로 다르지 않다. 손을 인체의 축소판으로 보고, 인체의 특정 부위가 고통을 느끼면 반드시 손에 그 반응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 부분을 상응점이라고 하는데, 그 곳을 봉이나 뜸, 혹은 침으로 자극해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한다. 곽순애씨에 따르면, 손바닥은 우리 몸의 앞면, 손등은 몸의 뒷면에 해당된다. 그리고 오른손의 엄지는 왼쪽 다리, 검지는 왼팔, 중지는 머리, 장지는 오른팔, 약지는 오른쪽 다리를 나타낸다. 왼손도 마찬가지이다. 손바닥에는 내장과 각 기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뜸만한 보약 없다'…만성 질환에 효과


이같은 손과 인체의 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으면 수지침 요법은 효과 '만점'이다. 심한 변비, 욱신욱신 쑤시는 어깨통, 얼굴이 누렇게 변하는 황달, 달마다 찾아오는 생리통, 오줌에 당이 섞여 나오는 당뇨병, 참을 수 없는 발 냄새까지 안 통하는 데가 거의 없다. 더 나은 효과를 보려면 이 요법에 쓰이는 몇 가지 기구를 자세히 알아야 한다. 대표적인 기구는 수지침이다. 침은 길이가 1cm 정도 되는데, 실제로는 1mm 정도밖에 꽂히지 않으므로 통증이 거의 없다. 침을 꽂고 있는 시간은 20∼30분 정도가 적당하다.




뜸도 수지침 요법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구이다. 뜸은 특히 손발이 찬 사람, 몸이 약한 사람, 혈액 순환이 잘 안되는 사람,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손 안의 혈처를 따뜻한 열로 자극해 기혈을 소통시켜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 서울 대치동에 사는 박지영씨(22·대학 휴학생)는 이같은 방법으로 여섯 살 때부터 앓아온 축농증을 고쳤다고 말했다.


이처럼 뜸은 건강 관리나 질병 예방에 좋아 '뜸만한 보약 없다'는 말까지 듣는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이 뜸을 잘못 놓으면 데지 않을까 해서 기피한다. 한마디로 기우이다. 뜸 뜨는 자리에 방열 종이(구점지)를 깔고 황토로 감싼 뜸을 놓기 때문에 델 위험은 거의 없다. 설사 뜨겁더라도 핀셋으로 뜸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열을 조절할 수 있다.


서암봉은 알루미늄으로 된 작은 알갱이며, 돌기 수에 따라 1호·2호·6호로 나뉜다. 봉은 만성 질환이나 병을 예방하기 위해 이용한다. 손을 깨끗이 씻은 뒤 붙이되, 4시간 정도 붙여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인체에 직접 사용해도 좋다. 예를 들어 모기 물린 데 붙이면 가려움증과 부기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통증이나 멍든 부위에 붙여도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물 속에서 손뼉 치면 가슴이 예뻐진다


가정과 직장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수지침 요법도 있다. 혹시 뒷머리가 아픈가. 그렇다면 중지의 손톱 끝 부분을 볼펜 끝으로 꼭꼭 눌러 보라. 예민하게 아픈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곳을 손톱으로 1분 정도만 누르고 있으면 가벼운 통증은 금세 사라진다. 지압봉으로 손바닥과 손등을 마사지해도 좋다. 손이 따뜻해지고, 말초 신경의 혈액 순환이 잘 되어 머리가 맑아진다. 특히 혈압 높은 사람과 손발 저린 사람에게 권할 만하다.


손뼉치기도 질병 치료와 예방에 도움을 준다. 손바닥 밑 부분(생명선이 끝나는 곳)과 손등의 같은 부분을 두드리면 소변이 잘 나오고, 등과 허리의 긴장이 풀린다. 여성들은 목욕탕 물 속에서 손뼉치기를 하면 아름다운 가슴을 만들 수 있다. 요령은 물 속에서 양팔을 앞으로 내민 다음, 천천히 크게 벌렸다가 오므리면 된다. 매일 20회 정도 반복하면 좋다.


쿠킹호일과 손발의 '만남'을 이용해 건강을 보호할 수도 있다. 겨울에 발과 무릎이 시려서 고생하는 사람은 쿠킹호일로 자주 양말이나 무릎 보호대를 만들어 착용하면 이롭다. 열을 일으켜 냉을 쫓아주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난 뒤에는 쿠킹호일 반지를 만들어 낀다. 쿠킹호일을 볼펜에 감으면 반지 모양이 되는데, 술 마신 뒤 간에 해당하는 엄지손가락에 끼면 숙취 해소에 좋다. 호두알을 손안에서 굴리면 혈액 순환에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호두알이 없다면? 이때는 쿠킹호일을 탁구공 만하게 말아서 굴린다. 고혈압이나 중풍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특히 이롭다.


서양 의학이 첨단화하는데도 침술에 몸을 맡기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그만큼 효과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침술에 기대는 것은 금물이다. 모든 치료법이 그렇듯이 효과가 느릿느릿 나타나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침술은 만병 통치술이 아니라 하나의 대체 의학라는 점을 알고 기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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