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다원주의 펴는 이현주 목사
  • 공주·이문재 편집위원 (moon@e-sisa.co.kr)
  • 승인 2001.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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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교회이고 삶이 목회"/
불교 · 노장 넘나드는 종교 다원주의자 · 무교회주의자
이현주 목사(57)를 조금 아는 이들은 이렇게 묻는다. "왜 목회 활동을 하지 않으세요?" 목사가 교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는 웃는다.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이목사를 잘 아는 이들은, 그가 글 쓰고 번역하는 일이며, 대학이나 교회에서 강의하고, 스님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물론 산책까지도 목회라고 본다. 그에게는 이 세상이 곧 교회이다.




계룡산의 한 줄기인 장군봉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제주도만 빼고 '조선 팔도를 다 돌아다닌' 이목사가 지난해에 깃든 거처다. 마을 입구에는 사찰이며 '철학관' 표지판들이 다닥다닥했다. 신을 찾는 사람들의 산, 계룡산 골짜기에는 가을이 깊었다. 이현주 목사는 여전히 하얀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윗 잇몸이 드러나는 크고 환한 웃음. 언뜻 스님처럼 보였다.


내년 2월이면 또 이삿짐을 꾸려야 하는 전셋집. 거실과 서재는 종교 분위기가 물씬했다. 단순하고 정갈했다. 거실 한쪽 벽에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와 루오의 예수가 걸려 있다. 나무 십자가 아래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고, 왼쪽 구석에는 부처가 앉아 있다. 모든 종교의 뿌리가 하나라고 보는 종교 다원주의자의 '예배당'이었다.




성당에서 강론을 하다 보면, 간혹 개종하시라는 권유를 받곤 한다. 그때마다 이현주 목사는 "천주교와 기독교는 같은 종교인데 어떻게 개종하느냐"라고 반문한다. 이목사는 종교 다원주의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이목사는 최근 두 권의 책을 펴냈다. 간디가 해설한 인도 경전 〈바가바드기타〉(당대)를 10년 만에 우리말로 옮겨 펴냈고, 시집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이레)을 내놓았다. 〈바가바드기타〉는 이목사에게 각별한 책이다. 간디의 '맑고 깊고 아름다운 영혼'이 한계에 다다른 물질 문명의 폐해를 극복하는 데 적지 않게 기여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첫 시집이나 마찬가지인 〈그러니까…〉도 애틋하다. 남들이 물어오면 "그게 뭐 시인가요" 하고 넘어가고 말지만, 일상에서 건져올린 깨달음의 순간들이 담백한 언어에 담겨 있다. 기교가 전혀 없는 생수 같은 시들이다. 한 그루 나무 앞에서, 한 방울 물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지를 일깨우며, 몸을 우주의 중심에다 올려놓는 시들. 자기 생의 주인이 된 존재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시집 곳곳에서 빛난다.


이목사의 '다원주의'는 인도 경전이나 시를 넘어서 있다. 불교(〈이 아무개 목사의 금강경 읽기〉 〈이와같이 나는 들었노라〉)와 동양 고전(〈장자 산책〉 〈대학 중용 읽기〉)을 두루 섭렵했다. 열아홉 나이에 등단한 이래 〈알게 뭐야〉 〈외삼촌 빨강애인〉과 같은 동화책도 펴냈다.


그의 '무교회주의'는 감리교 신학대학 시절에 싹텄다. 기독교와 유교를 접목한 윤성범 교수, 무속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유동식 교수, 그리고 교회 밖에도 구원은 있다고 주장했던 변선환 교수 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후 무교회주의자 김교신, 원주에 살던 무위당 장일순, 동화작가 권정생, 히브리 철학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베트남 출신 승려 틱낫한 등 많은 스승들의 뒤를 좇았다. 이목사는 '나는 평생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지도자의 문제"




매일 아침, 계룡산 기슭을 걷는다. 나무 한 그루, 벌레 한 마리가 모두 한 생명임을 깨닫는다.


이목사에게 교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5년 동안 교계 신문사와 출판사 등에서 일하다가 1976년 경북 울진에 있는 죽변교회를 맡았다. 신자가 40명 남짓한 작은 교회였다. 서울에서 월급을 30만원 이상 받던 그는 죽변교회에서 매달 6만원을 받았다.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셋이었다. 틈틈이 번역 원고료를 보탰지만, 살림은 빠듯했다. 이목사는 "돌이켜 보면 죽변에서 보낸 5년이 가장 행복했다. 목사로서 열심히 했고, 공부도 많이 했다. 내 삶의 골격은 죽변에서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그후 줄곧 교회 밖에서 예수와 일치된 삶을 살려고 전국을 떠돌았다. 1994년 철원에서 1년 동안 맡았던 교회가 마지막이었다. 신자가 10명인 아주 작은 교회였다. 그 무렵 감리교 감독(최고 지도자)이 바뀌었는데, 다름아닌 변선환 교수를 추방한 이였다. 은사를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 밑에서 목회를 할 수가 없었다. 그 날로 교회를 떠났다.


이런 일도 있었다. 1995년 감리교 정회원 목사가 되기 위한 심사(재허입)가 있었다. 세 가지 질문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술 담배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술은 원래 못했고, 담배는 약간 피울 때였다(지금은 담배를 안 피운다). 이목사는 심사위원들에게 '안한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기만하고 자신을 속인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며칠 뒤 재허입 신청을 취소했다.


이현주 목사는 한국 교회가 예전에 견주어 훨씬 더 경직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교회가 자본주의 논리와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외형은 커졌지만 정신은 협소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목사는 "강대상이 그리스도와 가까우면 대중이 멀어지고, 강대상이 그리스도와 멀어지면 대중과 가까워진다"라는 왈벗 틸만 수사의 경구로 한국 교회의 물량주의를 비판한다.


이목사는 다른 종교와 더불어 평화롭게 살자는 것이 종교 다원주의라면 적극 찬성한다. 종교다원론이 바로 하나님 뜻이기 때문이다. 이목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를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하나다"라고 말한다.


이목사는 신앙을 등산에 비유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넓은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지도자들이 기슭에서 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평신자가 높이 오르려 하면 가로막는다. 그래도 올라가면 이단이라고 규정한다"라고 이목사는 비판한다. 지도자들이 악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무지하다는 것이다.


이목사가 보기에 불행의 근원은 무지, 즉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미국에서 벌어진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공습도 어리석음 탓이다. 이목사는, 부시가 세계를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이목사는 "나보고 양자택일을 하라면 부시와 오사마를 한 편에 놓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다른 편에 놓겠다. 부시와 오사마는 서로 돕는 관계이다"라고 말했다. 이목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종교간 갈등으로 보는 시각이 매우 위험하다고 본다.


이목사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칼로 사람을 찌르면, 칼이 찌른 것인가? 아니다. 사람이 찌른 것이다.' 비행기 테러와 미국의 공습이 다르지 않다. 서로 찔러대는 칼은 종교가 아니라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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