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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 더 뜨거워진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

산업·상업용은 펑펑 쓰고 가정용 소비만 막는 결과…누진제 폐지 요구에 정부는 ‘묵묵부답’

원태영 기자 ㅣ won@sisajournal-e.com | 승인 2016.08.08(Mon) 15:4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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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입주민이 전기 계량기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뉴스1

 

주부 김영옥(59·가명)씨는 여름철만 되면 전기료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특히나 이번 여름은 폭염이 절정에 이르면서, 에어컨 가동 시간도 덩달아 늘어났다. 김씨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에어컨을 계속해서 켤 수 밖에 없다”며 “마음 한켠에서는 누진제 때문에 요금 폭탄을 맞을까 걱정된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찜통더위가 이어지면서 전기요금을 둘런싼 논쟁도 거세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전기요금 누진제’다.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체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누진율이 가파르다. 6단계로 된 누진제가 적용돼 사용량에 따라 요금이 급격히 오른다. 100kwh 이하를 사용하는 1단계는 kwh당 전기요금이 60.7원이지만, 500kwh를 초과하는 6단계 709.5원으로 11.7배가 뛴다. 2단계까지는 원가 이하로 공급되지만 3단계부터 누진율이 높아지는 구조다.

반면 자영업자에게 적용되는 상업용(kwh당 105.7원)과 기업에 적용되는 산업용(kwh당 81원) 요금은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가정용 전기는 2단계 요금만 돼도 kwh당 125.9원으로 산업용이나 상업용 요금을 초과하게 된다.

일반 가정에서는 전기요금이 무서워 선풍기로 버티는 반면, 백화점 등 상점에서는 에어컨을 하루종일 틀어놔도 전기료 부담이 덜한 것이다. 정부는 1973년 전기요금 누진제를 처음 도입했다. 1970년대 초반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부족해진 전기를 산업용으로 쓰기 위해 가정용 전기에 징벌적 누진제를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전체 전기 사용 비중에서 가정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제조업(52%)과 상업용(32%)이 훨씬 많은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2012년 기준 1278kWh로 OECD 34개국 중 26위를 차지했다. 이는 OECD 평균(2335kWh)의 55%에 불과한 규모다. 미국(4374kW)의 29%, 일본(2253kWh)의 57%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용도를 구분하지 않고 가정용에 산업용, 공공·상업용까지 합친 1인당 전체 전력 소비량은 9628kWh로 OECD 국가들 중 8번째로 많았다. OECD 평균(7407kWh)도 크게 웃돌았다. 이는 가정용 전력 소비에 비해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 소비가 훨씬 많다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누진제 폐지에 대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있어 왔다. 8일 법무법인 인강에 따르면, 한국전력을 상대로 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 단체소송에 지난 7일 하루에만 810세대가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오전에는 620세대가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을 시작한 2014년 이후 하루만에 이 같은 규모로 신청이 몰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체 소송 신청세대는 3000세대를 돌파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3건), 서울남부지법(1건), 광주·대전·부산지법(각 1건) 등 총 7건의 피해 소송이 진행 중이다. 소송청구액은 1인당 6110원에서 418만5548원까지다.

곽상언 변호사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와 한전이 가정용 전기요금에 부과하는 누진요금제로 대기업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며 “상품을 많이 사면 할인해주는 경우는 있어도 구매 억제를 위해 징벌적 요금을 부과하는 경우는 없다”고 밝혔다.

곽 변호사는 “정부는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누진제를 통해 국민들의 전기사용량을 줄이려 했다”며 “지금은 1970년대가 아니다. 우리는 돈을 내고 동일한 조건에서 전기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전기 요금 누진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장병완 국민의당 의원은 “일반 가정용 전기에 대해 정부가 그동안 불리하게 취급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현상 유지가 최선은 아니다. 긴 시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지난달 현행 6단계인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4단계로 줄이는 방안을 당론으로 정했다.

더불어민주당도 누진제 개선에 대해 언급했다.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지난 1일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제대로 검토하겠다”며 “이를 통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개편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조경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전기요금 폭탄이 발생하지 않도록 산업용이나 일반용처럼 주택용도 누진제를 폐지하는 것이 맞다”며 “한국전력은 지난해 11조 3467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누진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할 충분한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누진제 완화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다. 지난 5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던 우태희 제2차관은 “6단계를 (3~4단계로) 통합하게 된다면 누군가 요금 부담을 해야 한다”며 누진제 완화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조성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용 전력수요의 계절별 가격탄력성 추정을 통한 누진 요금제 효과 검증 연구’ 논문에서 “누진제의 도입목적은 에너지 소비절약과 저소득층 비용부담 경감에 있다. 그러나 가구당 평균 전력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저소득층의 비용부담 경감효과는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 현재와 같은 누진요금이 지속되는 경우 오히려 소득이 높은 1인 가구가 누진요금에 의한 비용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계층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조 연구위원은 “장애인 가구 등 구조적으로 전력소비가 많을 수 밖에 없는 가구는 비록 복지할인요금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누진요금으로 원가 이상의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며 “누진단계를 3단계 이하로 축소하고 누진배율도 크게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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