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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지는 1세대 식품 거인들…2세대는 전혀 다른 시장환경

껌·라면‧조미료 등 서민식품 개척한 1세대…이제는 경영자도 소비자도 글로벌

고재석 기자 ㅣ jayko@sisajournal-e.com | 승인 2016.09.20(Tue) 17: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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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를 이끈 1세대 창업주들이 차례로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의 과자와 라면코너 모습. / 사진=뉴스1

 

별처럼 저물었다. 식품업계 1세대 창업주들 얘기다. 척박한 경제현실 탓에 이들의 족적이 더 도드라진 시대였다. 이들은 아직 일본의 그림자가 드리우던 국내 식품시장에 국산기술로 만든 라면과 케찹, 조미료를 내놨다.

공은 2세대로 넘어갔다. 시장도 환경도 앞 시대와 판이하게 달라졌다. 경영자의 감각도, 소비자의 눈높이도 한반도 밖을 겨냥하고 있다.

◇ 1세대가 시대에 남긴 족적…라면‧카레‧케찹‧조미료, 식품으로 ‘보국’ 꿈꿔

20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산업화를 이끈 1세대 창업주들이 차례로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다.

1세대들의 경우 껌, 라면, 카레, 케찹, 조미료 등 이제는 서민식품의 대명사로 불리는 제품들로 사업을 일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본격 산업화 시기와 창업시기가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식품황제로 불리던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49년 만에 롯데제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신 총괄회장이 롯데그룹 계열사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건 이때가 처음이다. 1967년 설립된 롯데제과가 롯데그룹의 모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 총괄회장의 사퇴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평이 많았다.

신 총괄회장은 1922년 경남 울산 출생이다.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홀연히 일본으로 떠난다. 신문과 우유배달로 학비를 마련하던 신 총괄회장은 1946년 도쿄에 비누 크림 등을 만드는 공장을 세운다.

이 공장을 발판삼아 빚을 갚고 자본을 모은 신 총괄회장은 1948년 일본에서 과자를 만드는 회사 롯데를 창업한다. 이후 일본에서 껌 사업으로 사세를 키운 신 총괄회장은 박정희 정부 시기 단행된 ‘한일 수교’ 바람을 타고 국내에 롯데제과를 세운다. 재계순위 5위까지 올라온 롯데그룹의 탄생이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은 고령과 건강문제로 자신이 모국에서 처음으로 일군 회사에서 ‘내쫓기듯’ 물러나게 됐다. 후임 등기이사 역시 신동빈 회장의 복심으로 알려진 황각규 사장이 맡았다.

국내에 카레를 대중화한 1등 공신인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은 추석을 앞둔 지난 12일 향년 8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오뚜기의 창업시기도 롯데, 농심과 같은 1960년대다. 1969년 40세가 되던 해 함 명예회장은 오뚜기식품공업의 전신인 풍림상사를 창업했다.

오뚜기의 전매특허는 역시 카레와 케찹이다. 설립년도인 1969년 5월 함 명예회장은 국내 최초의 즉석식품인 3분 카레를 출시하며 식품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또 1971년에는 토마토케찹을 내고 이듬해에는 마요네즈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산‧판매했다. 1973년 풍림상사는 오뚜기식품공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1996년에 다시 주식회사 오뚜기로 사명을 변경했다.

국내 조미료의 대명사가 된 미원을 만든 임대홍 대상그룹 명예회장도 지난 4월 96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192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임 명예회장은 국산 조미료를 만들기 위해 1955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조미료의 성분인 글루타민산 제조 방법을 연구한 임 명예회장은 이듬해 부산으로 돌아와 동아화성공업을 세운다. 여기서 만든 국산 최초의 발효조미료가 미원이다.

동아화성공업의 설립 시기는 롯데, 농심, 오뚜기보다 앞선 1950년대다. 하지만 미원이 폭발적 인기를 얻자 임 명예회장은 1962년에 사명을 아예 미원으로 변경한다. 미원의 인기에 맞서 이병철 회장의 제일제당이 ‘미풍’을 냈지만 끝내 미원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농심과 오뚜기가 라면 판촉경쟁을 펼치고 있다. / 사진=고재석 기자

이들 창업주들이 ‘보국’, 즉 나라에 보답한다는 글귀를 유독 강조했다는 점은 유독 눈길을 끈다.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은 식품보국(輔國)을 회사운영의 주된 철학으로 내세웠다. 행사 때 직원들에게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신격호 총괄회장은 서울 잠실에 지어진 롯데월드몰에 관광보국(觀光報國)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이에 대해서는 시대환경이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분석이 많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했던 까닭에 식품 기업가들이 국가경제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 거인이 떠난 자리…경영자도 소비자도 글로벌

거인들이 떠난 자리에는 이미 2세들이 속속들이 들어앉아 정면경쟁을 펼치고 있다. 경쟁의 모양새도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1세대 창업주 시기에는 각 기업마다 주력제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각 업체가 서로의 심장을 직접 노린 모양새다.

어느새 라면업계 라이벌이 된 농심과 오뚜기의 싸움은 최근 가장 눈길을 끄는 경쟁구도다. 오뚜기의 카레 아성에 대상이 ‘카레여왕’으로 맞불을 놓은 점도 흥미롭다. 롯데와 농심의 과자 경쟁도 끝날 줄 모른다. 1인가구 증가 이후 대세가 된 가정간편식(HMR) 시장에는 모든 식품기업이 뛰어들었다.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과거에는 설탕하면 제일제당, 조미료하면 미원 이런 식으로 압도하는 구도였는데 최근 2세대로 넘어와서는 중복 식품군에서 나오는 제품도 많고, 새롭게 진입하려는 중소기업들도 많다”며 “식품이 자동차 등 고도의 생산라인을 갖춘 산업에 비해 뉴페이스의 진입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1세대 시기와 달리 이제는 대형마트와 편의점까지 제품개발에 나서면서 경쟁의 각이 다양해졌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주력제품을 내세우던 경영전략은 바뀔 수밖에 없다. 식품이라는 큰 틀을 놓지 않되 제품군을 다양하게 가져간다는 얘기다. 신라면과 안성탕면, 너구리 등에 집중하던 농심도 비빔면과 쌀국수라면, 생수까지 내놓으며 경쟁업체의 안방을 노리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경영수업을 받던 시절부터 여러 차례 잘 하는 분야로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학파 2세가 많다는 점도 도드라진 특징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MBA를 했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3세 승계 경쟁을 벌이는 임 명예회장의 두 딸(임세령, 임상민)도 각각 뉴욕과 런던에서 유학했다.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도 미국 페퍼다인 대학교 대학원을 다녔다신동원 농심 부회장만 유학경력이 없다. 


이들이 경영전면에 나설 시기도 1세대 시기와 달리 소비자들의 글로벌 감각이 높아진 시대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 해외 동향에 민감해진 셈이다.

실제 최근 서울 강남에 매장을 열어 열풍을 일으킨 쉐이크쉑은 허영인 SPC그룹의 차남인 허희수 SPC 마케팅실장이 직접 뉴욕에서 맛본 뒤 한국에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이미 한국에 열리기 전에도 국내 SNS 공간에는 뉴욕매장 방문경험을 공유하는 글들이 다수 존재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미국 브라운대학 유학시절 맛본 스타벅스를 들여오기로 한 것은 이미 업계의 유명한 일화다.
 

최근 2세 경영자들도 부쩍 글로벌을 강조하고 있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러시아와 미국, 홍콩, 싱가포르 등 해외시장 개척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부회장 역시 틈이 날 때마다 중국시장을 글로벌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의지를 임직원들에게 밝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보라 연구원은 “2세 경영자들 뿐 아니라 소비자들도 산업화 막바지부터 나타난 경제부흥과 여행자유화 바람 이후 외국 먹거리를 많이 경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드, 영화, 광고 등 간접적으로 외국 식문화를 경험하면서 이를 직접 겪어보려는 심리도 커졌다”며 “이제 식품기업들도 단순히 ‘먹을거리’를 파는 1세대를 벗어나 ‘경험을 파는’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바뀌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2세 경영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50대 중후반~60대 초반)여서 아직 3세 경쟁 구도는 가시화되지 않았다. 3세들의 나이 역시 대부분 20대다. 다만 2세 승계가 빨랐던 대상그룹의 경우 두 딸이 이미 상무로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임세령 상무(39)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이혼 후 복귀하면서 경영권 향배는 안개 속에 휩싸였다. 둘째 임상민 상무(36)는 지난해 금융인과 결혼 후 미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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