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떠나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한 달하고 보름 정도 흘렀다. 근로자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자까지도 처벌할 수 있게 한 것이 이 법의 골자다. 재계에는 비상이 ...

기지촌 피해자 위한 ‘나눔의 손길’ 전해지다

시사저널이 기지촌 여성들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한 ‘나눔의 손길’을 전달했다. 시사저널의 연재 기사 ‘미군 위안부, 그 생존의 기억’을 보고 독자가 보내온 후원금은 기지촌 여성...

《’미군위안부’, 그 생존의 기억》 #마지막회. “우린 태어난 이 나라에서 버려졌다”

“집세 내고 기름을 못 넣고 사는 언니들도 여러 명이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런 분들 많아요. 그리고 알뜰하게 모아서 전세 거리라도 있는 사람들은 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돼서…병원비...

《’미군위안부’, 그 생존의 기억》 #7. 경제적 빈곤으로 병마에 시달리는 피해 여성들

2013년 윤아무개씨가 자신의 집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된 것은 그가 사망한 지 하루가 지난 후였다. 사망 당시 50대 초반의 나이였던 그는 ‘미군위안부’였다. 10대 중반 기지촌으...

《’미군위안부’, 그 생존의 기억》 #5. “애를 미국에 떼어 놓으니 내가 죄인이지”

“내가 애를 한 30명 긁어냈나봐.” ‘미군위안부’ 피해 여성 박경숙씨(가명·71)는 고아였다. 어린 시절 무작정 상경한 그녀였다. 서울역 인근 직업소개소 사장이 그녀에게 짜장면 ...

《’미군위안부’, 그 생존의 기억》 #4. “난 스스로 ‘미군위안부’가 된 게 아니야”

사람들은 묻는다. “미군위안부 여성들은 기지촌에 ‘스스로’ 찾아온 게 아닌가요?”그간 ‘미군위안부’ 피해 여성은 이런 편견 섞인 질문을 받았다. 취재진이 진행한 인터뷰는 그 답이 ...

《’미군위안부’, 그 생존의 기억》 #2. 민간이 대리하고 국가가 방치했다

연단 위 연사가 말한다. “여러분은 달러($)벌이 산업 역군입니다! 민간 외교관이자 애국자입니다!” 연단 아래 듣는 이들은 기지촌 여성들이다. 이 장면은 1960~80년대 기지촌에...

《’미군위안부’, 그 생존의 기억》 #1.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기지촌, 그곳에 여성들이 있었다. 인신매매, 사기 등으로 기지촌에 오게 된 여성들은 미군에게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국가는 이 문제를 제재하기는커녕 조장했다. 또 ‘성병검진’을 명목...

“달러 버는 애국자라 했으면, 병든 우릴 나라가 돌봐야지”

지난 2월5일 오전 10시,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일대 주한미군 캠프 케이시(Camp Casey) 정문 맞은편에 있는 기지촌을 찾았다. 밤새 불야성을 이뤘던 업소들의 네온사인이 ...

동화도 용공 서적으로 의심했다

16년 만에 장막이 걷혔다. 시국 사건 재판 때마다 공소장에 등장하는 공안문제연구소. 정식 명칭보다 ‘사상 검증’ 연구소로 알려져온 공안문제연구소가 감정한 목록이 공개되었다. 목록...

기지촌 여성과 허브가 만났을 때

기지촌 여성과 허브? 새움터 간사 정강실씨(26)와 강옥경씨(36·사진 왼쪽부터)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둘의 조합을 1년 전부터 꿈꾸어 왔다. ‘기지촌 여성들이 전업...

동두천 기지촌 여성들의 ‘따뜻한 문화제’

기지촌 여성들의 커밍아웃이 시작된다. ‘무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는 커밍아웃의 사전적 정의대로, 전·현직 기지촌 여성들이 16㎜ 독립 영화에 처음 맨 얼굴을 드러낸다. 고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