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영웅들 "2002년을 기다렸다"
  • 기영노(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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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김주성, 축구 김용대, 마라톤 정남균 '준비된 루키'...ML 최희섭, LPGA 이선희도 '촉망'


1년이라는 기나긴 여로를 달려서 새해에 닿았다. 새해라고 해서 스포츠계가 순식간에 낙원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옥으로 변하지도 않는다. 힘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의 생리는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벌거나, 공든 탑이 일시에 무너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노력에 대해서 반드시 그만큼의 몫이 주어지는 것이 스포츠의 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한 해 각 종목에서 가능성을 보인 유망주들은 한 해의 태양이 뜨는 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 보고 있다. 과연 어떤 선수들이 2002년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기대에 찬 마음으로 바라볼까.


농구계의 김주성 선수(22·중앙대)는 1월29일이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그 날 양재동에 있는 교육문화회관에서 프로 농구 드래프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프로 농구 팀들도 2m5cm의 장신에 빠른 스피드와 유연한 골밑 플레이를 하는 김주성을 스카우트하면 앞으로 10년 정도 거뜬히 정상에 도전할 수 있어 그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2m7cm인 서장훈이 있는 서울 SK 나이츠는 ‘용병이 3명 있는 팀’으로 불린다. 그런데 김주성은 서장훈보다 빠르고 긍정적인 성격까지 갖고 있어,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가는 팀은 그만큼 우승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어쩌면 1월29일을 기다리는 것은 김주성보다 지난해 하위권(7∼10위)에 머물렀던 대구 동양·울산 모비스·원주 삼보·여수 코리아텐더일지 모른다. 네 팀 모두 은행알 추첨을 통해 김주성을 스카우트할 가능성은 25%이다.



프로 축구 부산 아이콘스는 2001년 축구 정규 리그에서 4위에 머물렀다. 시즌 후반에 주 공격수 마니치와 우성용이 부상한 데다, 플레이메이커와 골키퍼가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달라질 것 같다. 국가 대표 골키퍼 김용대 선수(22·연세대)를 스카우트했기 때문이다.



김용대는 1m88cm의 큰 키와 순발력을 갖추고 있어, 안양 LG·부천 SK·전남 드래건스 같은 팀에서 탐을 냈었다. 그러나 김용대는 연세대 스승인 김호곤 감독이 있는 부산 아이콘스와 5년 동안 계약금 3억원, 연봉 2천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김용대는 대학 2학년 때부터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김병지(포항 스틸러스)·이운재(부천 SK) 선수와 함께 주전 자리를 다투고 있다.


시카고 컵스 최희섭, 박찬호 이상의 폭발력 지녀


메이저 리그에서는 투수보다 타자가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 투수 최고 연봉은 콜로라도 로키스의 마이크 햄튼(연봉 기준 1천5백12만 달러)이다. 그러나 그의 연봉은 텍사스 레인저스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받는 연봉(2천5백만 달러)에 비하면 많은 것도 아니다. 투수는 닷새에 한 번 등판하지만, 타자는 매일 타석에 나서 팬들에게 서비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카고 컵스 트리플 A의 아이오아 컵스에서 뛰고 있는 최희섭 선수(21)는 박찬호 선수 이상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최희섭은 키 1m95cm에 몸무게가 110kg으로, 메이저 리그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엄청난 체격의 1루수(왼손 타자)이다. 메이저 리그의 권위 있는 야구 주간지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지난해 2002년 시카고 컵스의 유망 선수 10명 가운데 최희섭을 3위로 꼽았다. 타자 중에서는 1위. 타고난 파워에 천부적인 타격 감각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최희섭은 2001년 아이오아 컵스에서 2할2푼9리에 홈런 13개 45타점을 기록했다. 시카고 컵스는 올해 8월 마이너 리그 음향 관계자 브라이언 커시 씨를 해고한 바 있다. 최희섭이 타석에 들어설 때 한국 선수를 비하하는 <쿵푸 파이팅> <차이너 걸> 같은 음악을 틀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만큼 시카고 컵스는 최희섭을 아끼고, 또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 여자 골퍼들은 미국 여자 프로 골프 ( LPGA)에서 1998년(박세리), 1999년(김미현), 그리고 2001년(한희원)에 신인상을 받았다. 사실 2000년에도 박지은 선수가 부상만 당하지 않았다면 신인상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그런데 2002년 LPGA 신인상도 한국 선수가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신인 이선희 선수(27)가 풀 시드 권을 따낸 것이다.


이선희는 올해 국내에서 2승을 올렸다. 이선희는 한국 선수들의 가장 큰 약점인 쇼트 게임과 퍼팅에 강하다. 골프를 즐기면서 하는 스타일이어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낸다. 벌써 LPGA 5년째를 맞는 박세리는 언젠가 “선희 언니가 빨리 적응하면 2002년에 신인왕은 물론, 한두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LPGA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이선희 선수가 그 숲을 어떻게 헤쳐갈지 지켜 볼 일이다.


한국 마라톤은 1990년대에 혜성처럼 나타난 황영조와 이봉주라는 영웅으로 10년 넘게 버텨오고 있다. 그러나 황영조는 일찌감치 은퇴했고, 이봉주도 2∼3년 내 선수 생활을 끝낼 예정이다. 여러 경기를 보아도 두 선수를 이을 만한 재목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마라톤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정남균 선수(24·삼성전자)가 착실하게 성장하면 두 영웅 이상의 성적을 올릴 것이라고 말한다.


'무등산 신 폭격기' 기아 타이거즈 김진우



정남균은 지난 2000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11분 29초로 깜짝 우승했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2시간 22분 23초로 45위에 머물렀다. 올해 동아마라톤대회에서도 신통치 않았다. 2시간 14분 53초로 11위에 그친 것이다. 낙담할 만도 한데, 전문가들은 다르게 평가한다. 정남균이 실업 2년차 선수가 되는 2002년 성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올해에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남균은 우선 2002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10분대를 돌파할 계획이다. 그리고 내친 김에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딸 작정이다.


지난 11월, 프로 야구 기아 타이거즈의 김성한 감독은 설레는 마음으로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진행된 마무리 훈련에서 2002년 2월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는 김진우의 위력적인 투구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기아는 키 1m91cm에 허벅지 둘레 76cm, 그리고 선동열만큼 유연하다는 투구 폼 등을 감안해 김진우에게 프로 야구 사상 두 번째로 많은 계약금 7억원을 쥐어주었다. 김진우는 거기에 보답이라도 하듯 150km에 육박하는 빠른 공과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변화구로 선배 타자들을 농락했다. 그리고 선발 로테이션 진입은 물론 ‘최소한 10승’이라는 합격 판정을 받았다. ‘21세기형 무등산 폭격기’라는 별명을 얻은 김진우가 몇 승을 올릴지, 벌써 호남 야구팬들의 가슴이 설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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