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자, 끊어!’ 열풍 작심삼일 아니네!
  • 안은주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2.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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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 쇼크’ 3개월, 개인적 열기는 한풀 꺾여 정부·기업 금연 운동은 갈수록 ‘활활’
'율브리너 효과’는 6개월이었다. 1985년 할리우드 스타 율 브리너가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담배 피우지 마세요”라는 유명한 메시지를 남긴 뒤 미국 사회에서는 금연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그 효과는 6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그렇다면 한국판 율 브리너 효과라고 불리는 ‘이주일 쇼크’는 얼마나 갈까. 한 금연운동가는 3개월도 못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인의 ‘냄비 근성’ 때문에 금연 열풍은 순식간에 타올랐다가 시들해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가 주장한 대로 3개월이 가까워 오는 최근, 금연 열풍이 한풀 꺾이고 있는 단서를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우선 하루에 100여 명씩 몰렸던 국립의료원 한방진료부를 찾는 금연침 희망자 수가 3월로 접어들면서 10분의 1로 줄었다. 김용호 한방진료부장은 “금연침을 놓기 시작한 1월 중순에는 하루 2백명씩 몰려 일부는 그냥 돌려보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초진 환자가 하루 10명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기업보다 한 발짝 앞서 금연 펀드를 시작한 제일기획에서도 바람이 잦아드는 듯했다. 지난해 10월부터 1월26일까지 71명이 100일 동안 금연 펀드에 참가했는데, 그 중 40명이 성공해서 회사 격려금을 포함해 50만원씩 받았다. 31명은 금단 증상·스트레스·술자리에서의 유혹 등을 견디지 못하고 실패했다. 의학계가 조사한 3개월 동안의 금연 성공률이 30% 선이니, 50% 성공률은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1년 성공률이 5%에 그친다는 의학계 연구 결과를 입증이라도 하듯, 제일기획에서 금연에 성공한 40명 가운데 몇 명은 3월 중순 다시 흡연자 대열에 복귀했다. 그들의 변명은 한결같이 ‘한번 끊어보니까 끊을 수 있겠더라. 나중에 끊겠다’는 것이었다. 이준호씨(매체팀)는 “금연 펀드라는 사슬이 풀리니까 흡연 욕구를 참으려는 의지가 느슨해진 탓이다”라고 말했다.


3월 들어 각 병원 니코틴 클리닉에도 환자가 줄어드는 추세이다. 서홍관 교수(인제의대·가정의학)는 올 초에는 예년에 비해 환자가 15% 가량 늘었으나 요즘에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교수는 “올해의 금연 바람은 예년과는 뚜렷이 다르다”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금연은 철저하게 개인의 몫이었지만, 올해부터는 정부나 기업이 조직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연초에 실패했던 사람도 금연에 재도전할 분위기가 이어져 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교수 말대로 금연에 실패한 개인들은 점차 늘고 있지만, 정부나 기업의 금연 정책은 연초에 벌이는 일시적인 전시 행사로만 끝나지 않고 있다. 연초에 병원·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을 금연 구역으로 지정한 정부는 새로운 금연정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담배 제조·판매 업자들로 하여금 담뱃갑과 담배 광고에 니코틴이나 타르와 같은 유해 물질 함량을 반드시 표시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고,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PC방·만화방·노래방을 금연 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국립의료원 금연침 무료 시술을 군부대로까지 확장할 계획이며, 국방부도 지속적인 금연 교육과 지원책으로 장병의 금연 의지를 북돋우고 있다. 금연에 성공한 장병에게는 외출이나 외박 등으로 포상하고, 흡연 욕구를 억제할 수 있는 은단이나 사탕 따위 기호품 판매를 늘렸다. 그러나 군 관계자에 따르면, 군대에서 담배 공급을 중단하는 ‘혁명적인 결단’은 아직 논의되지 않고 있다.


국내 100대 기업 중 79개 사가 금연 실시


기업도 계속 금연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경영 전문지 <월간 현대 경영>이 지난 2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가운데 79개 사가 금연을 실시 중이며, 이 가운데 금연 빌딩으로 지정한 곳은 23개 사이다.

금호그룹은 아예 흡연자를 뽑지 않고 있고, 금연을 실시 중인 회사들은 ‘당근과 채찍’을 동원해 직원들의 금연 의지를 복돋우고 있다. 65개 사는 지정 구역 밖에서 흡연하다가 적발될 경우 주의를 주는 데 그치지만, 조흥은행·아시아나항공·기아자동차·롯데쇼핑 등 8개 사는 인사 고과에 반영하고 있다. 특히 동부화재·동부제강·제일은행·현대상선·하나은행 등 5개 사는 벌금을 물리는 강력한 ‘채찍’을 들었다. 이들 회사들은 여기에 포상금이나 금연보조제를 지급하는 당근 전략을 함께 쓰고 있다.





한국프뢰벨은 아예 흡연자 전원을 대상으로 금연운동을 실시하고 있다. 모든 흡연자에게 금연서약서를 쓰고 금연침을 맞도록 했으며, 금연초도 지급했다.


기업들이 금연 지원 정책에서 효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한 검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성과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동부그룹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회사 전체를 금연 지역으로 설정한 뒤 흡연자의 담배 소비량이 절반 가량 줄었다. 제일기획 김준환씨(사내 방송팀)는 “금연 펀드 조성 이후 흡연자로 되돌아가는 사람이 있어 사내 금연 프로그램이 실패한 듯 보이지만, 사무실 내 흡연이 사라지는 등 금연 열풍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금연 빌딩에서 근무중인 오영호씨(39) 말대로 가정에서는 ‘베란다의 반딧불이족’으로, 회사에서는 들락날락하는 ‘길거리족’으로 내몰리느니 차라리 끊고 말겠다는 생각을 가진 흡연자가 아직도 적지 않다. 또 실패한 흡연자 가운데 상당수는 짧은 시일 안에 금연에 재도전하고 있다. 금연 관련 웹사이트에는 재도전하는 사람들의 글이 자주 올라오고 있다. ‘건강 회복’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한 네티즌은 ‘약 한 달 보름간 금연했다가 3월 초 한 개비의 유혹에 빠져 10일 동안 다시 담배의 종복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 3월14일부터 다시 금연을 시작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오뚝이처럼 다시 금연에 도전하는 이들이 느는 한 이주일 쇼크가 완전히 잦아들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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