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그것이 알고 싶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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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환골탈태’…‘우물 안 개구리’ 16강 문턱까지 이끌며 지도력 입증
한국 축구 대표팀은 월드컵에 여섯 번째 출전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다. 우선 개최국 자격으로 참여했다. 덕분에 지역 예선전을 치르지 않아 체력을 비축했고,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다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56·네덜란드)의 지도 아래 17개월 간 과학적인 훈련을 받아 왔다. 축구 팬들이 16강은 물론 8강까지 기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넉 달 전만 해도 한국 대표팀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북중미 골드컵대회에서 쿠바·캐나다 같은 약체와 싸워 2무4패의 성적밖에 거두지 못했다. 당시 일부 언론과 축구 전문가들이 히딩크의 지도력에 의구심을 나타내면서 히딩크는 위기에 빠지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제 갈 길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팀을 전혀 다른 팀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한국팀은 외신 기자들조차 16강 진출을 낙관(<중앙일보>가 외신 기자 30명에게 D조에 속한 팀 가운데 16강 진출 팀을 지목해 달라고 하자, 대다수가 한국과 포르투갈을 꼽았다)할 정도로 괄목 성장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전문가들은 한국팀의 변신이 북중미 골드컵 대회 이후에 갑작스레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모든 것은 히딩크가 한국에 온 뒤부터 착착 진행되었다”라고 대한축구협회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말했다. 히딩크의 한국 생활 17개월을 살펴보면 그 사실은 좀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팀을 16강 문전까지 이끌고 온 그의 지도력을 퀴즈 형식으로 들여다보았다.



히딩크가 가장 먼저 바꾸어놓은 것은? 뜻밖에도 대표팀의 유니폼 색깔이다. 2000년 12월20일, 그는 도쿄에서 열린 한국-일본전을 보고 대한축구협회에 “유니폼 색상이 너무 어둡다. 붉은색 기조를 유지하되, 조금 밝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유니폼 색깔은 연한 빨강으로 바로 교체되었다. 실제 빨간색 옷을 입으면 근육의 긴장도가 높아져 칼로리 소모가 늘어나고, 상대팀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 선발은 어떤 과정을 거쳤나? 히딩크는 한국 선수들의 가장 큰 단점으로 기본기 부재를 꼽았다. 그가 보기에 한국 선수들은 골 결정력, 패스, 플레이, 포지션에 대한 인식, 드리블 등 모든 것이 기준 미달이었다. 히딩크는 2∼3주에 걸쳐 이 모든 것을 간파한 뒤 이렇게 말했다. “많은 결함을 발견했지만 희망을 갖고 있다.” 그는 그 희망을 이름값보다 기본기와 체력이 탄탄한 선수에게서 찾았다. 그리고 2∼3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다기능 선수를 선호했다. 지난 1년여 동안 히딩크가 만난 선수는 모두 61명. 그 가운데 낙점된 선수는 23명. 결국 38명이 눈물을 삼키며 미끄러졌다.


어떻게 선수들을 장악했나? 러브월드컵닷컴 김주용 대표는 “히딩크는 유럽에서 골칫덩이 선수를 잘 길들이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 와서도 히딩크는 명성에 걸맞게 처신했다. 지난해 1월 홍콩 칼스버그컵 대회에서 골키퍼 김병지가 공을 중앙선까지 몰고 나왔다가 위기를 자초하자, 후반에 전격 교체해 버렸다. 그리고 9개월 동안 대표팀에서 제외하는 ‘벌’까지 내렸다. 히딩크는 이천수 같은 젊은 선수들의 오만함과 자만심도 두고 보지 못했다.


선수들과 마찰은 없었나? 갈등은 거의 없었지만, 선수들을 혼란에 빠트린 적은 있었다. 처음 4-4-2 시스템을 가동했을 때 일이다. 3-5-2 시스템에 익숙한 한국 선수들은 그 전형을 무척 낯설어 했다. ‘기본 전술로 택한 4-4-2 시스템에서 수비수 4명이 일(一)자로 서는 플랫 포백 형태에 익숙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홍명보,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지음). 그 뒤 몇 차례 더 4-4-2 전형을 가동해 몸에 익혔다.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 대표팀은 4-4-2 전형을 운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전형은 때로 3-5-2나 3-4-3, 혹은 4-5-1로 변형될 것이다.


한국팀 내 서열을 파괴했다는데? 히딩크는 한국 선수들이 식당에서 선후배끼리 대화가 거의 없는 군대식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 뒤 그는 틈만 나면 “큰소리로 말하라. 고함쳐라. 왜 이렇게 훈련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물어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경기 중에 선수들끼리 쌍방향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없다. 선배가 후배에게 일방으로 지시하는 식은 정말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이제 한국 선수들은 많이 바뀌었다. 경기장에서 수비 라인끼리, 공격 라인과 수비 라인이 서로 소리질러 가며 경기한다.


히딩크의 성격은? 외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솔직하고 털털하다. 그리고 아주 낙관적이고 매사에 긍정적이다. 선수들에 대해 흉을 보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전반전에서 헤맨 선수가 있어도 직접 핀잔을 주는 경우가 없다. 11명에게 문제점 한두 가지만 지적하고 만다. 홍명보 선수는 히딩크에 대해 “상대팀 분석 능력이 탁월하다. 선수 심리를 정확히 읽어내는 데도 천재적이다”라고 말했다. 송종국 선수는 “잘못을 지적할 땐 호랑이 같지만, 농담과 쇼맨십을 보이며 사기를 북돋울 때는 할아버지 같다”라고 말했다.


히딩크가 선수들 체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90분간 계속 달리지 않으면 유럽 팀들을 압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딩크가 오기 전까지 한국의 축구 전문가나 선수들은 한국팀의 체력이 약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들은 한국팀이 국제 무대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기술이 부족한 탓이라고 여겼다. 히딩크는 “한국팀의 가장 큰 문제는 체력이다”라는 말로 그 착각을 뒤집어버렸다. 한 달도 안되어 그의 말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선수들의 체력을 테스트한 결과 대부분이 기준점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지금은 영국과 프랑스 팀에 맞설 만큼 좋아졌다.


체계적으로 선수들을 관리한다는데? 과거에 한국 선수들은 상대팀의 전력을 파악할 때 단순히 녹화 테이프만 보았다. 지금은 다르다. 비디오 분석관이 따로 있다. 따라서 상대 팀과 한국팀 선수들의 훈련 모습 등을 찍고 편집해서 일목요연하게 장단점을 분석한다. 또 하나는 주치의의 권한이 커졌다. 과거에는 선수의 부상 정도에 상관없이 감독이 뛰라고 하면 무조건 뛰어야 했다. 그러나 히딩크는 선수의 건강과 컨디션에 대한 판단은 모두 주치의 의견을 따른다. 작은 부상이라도 주치의가 하루 이틀 쉬어야 한다고 진단하면 철저히 그 의견을 따른다.


한국팀, 무엇이 바뀌었나? 히딩크 감독을 밀착 취재해온 <굿데이> 최원창 기자는 “대한축구협회가 히딩크를 선택한 것은 아무리 봐도 잘한 일이다”라고 말한 뒤, 히딩크 효과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하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한국 축구를 현대 축구와 접목한 점이다. 과거에는 공격수들이 상대팀 골문을 위협하면 최종 수비 라인은 중앙선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하지만 히딩크가 온 뒤로 최전방 공격수와 최후방 수비수의 간격이 30m 이내로 좁혀졌다. 그만큼 속도가 빨라지고 유기적인 공격이 가능하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수비 라인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상대편이 공을 잡는 순간 모든 선수들이 수비수가 된다. 그 덕에 상대 팀이 갖고 있는 공을 빼앗을 확률이 훨씬 높아졌다.


월드컵이 끝난 뒤의 거취는? 히딩크는 예전에 “나의 지상 목표는 한국이 세계 축구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만약 16강에서 떨어진다면 난 유럽으로 가는 첫 번째 비행기를 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잔류와 사퇴는 오로지 경기 결과에 달렸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를 보내더라도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전략과 전술 보따리를 다 풀어놓고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현재 거의 모든 언론과 사람들의 입은 히딩크 칭찬 일색이다. 그러나 이같은 평가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감독에 대한 평가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성적)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한국의 모든 축구 팬들이 그의 지도력을 굳게 믿고, 그가 폴란드전과 미국전을 거쳐, 포르투갈전이 끝날 때까지 현재의 평판과 명성을 유지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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