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의 여름은 꿈 같아라
  • 글·이용한 (시인)/사진·심병우 ()
  • 승인 200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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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해 피서 즐길 오지 마을 4곳/가재 잡고, 트레킹도 하고
여행 인구가 늘면서 단출하게 쉴 곳이 점점 줄고 있다. 깊은 산 두메는 그나마 가족끼리, 연인끼리 호젓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화사한 들꽃, 깔깔거리는 새들의 지저귐, 눈 시린 시냇물이 반짝거리는 두메 몇 곳을 소개한다.



낙동강 상류를 따라 펼쳐진 풍경화

경북 봉화 승부리와 반야마을






반야계곡과 백천계곡, 태백산 황지에서 내려오는 황지천과 천암천이 어우러져 낙동강 상류를 이루고, 이 강줄기가 석포면 승부리를 가로지른다. ‘학바위’라는 커다란 바위 절벽의 절경으로부터 시오리 비포장 길을 따라가야 만나는 마을. 마을 주변에는 온통 대추나무요, 메밀밭이다. 승부리는 이른바 기차가 가 닿는 마을 가운데 최고의 두메 마을로도 통하는데, 승부역에는 하루 세 번 열차가 와 닿는다. 경북의 끝자락 마을인 반야마을은 승부리보다 더 외졌다. 면 소재지에서 비포장 길로 7km 정도 떨어진 반야마을은 과거 궁궐 건축에 쓰이던 춘양목으로 유명했던 마을이다. 폐교(1996년)가 된 반야분교 앞마당에는 그 유명했던 춘양목이 아직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자라고 있다. 수령이 약 2백년, 높이가 25m, 둘레가 5m에 이르는 고목이다. 예부터 반야마을은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땅이라 일컬었다. 일단 들이 넓어 굶어죽을 염려가 없고, 언제나 깨끗한 물이 흐르니 전염병이 생길 리 없고, 사방에 높은 산이 둘러쳐 있어 전쟁의 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야마을의 자랑은 역시 마을을 에둘러 흐르는 반야계곡이다.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곳의 계곡 물은 눈이 시도록 맑고 깨끗해 여름철이면 아이들의 가재잡이 터가 된다.


■가는 길 승부리까지는 공영 버스가 하루 2회 석포면까지 운행한다. 승용차로 갈 경우 봉화에서 36번 국도를 타고 가다 소천에서 31번 국도로 바꿔 탄다. 대현을 지나면 석포 쪽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며, 석포에서 낙동강 줄기를 따라 계속 들어가면 승부리가 나온다. 열차는 영주와 강릉에서 출발해 각각 세 번씩 승부역을 지난다. 반야마을까지도 공영 버스가 하루 2회 운행한다. 석포면에서 반야계곡을 따라 동쪽으로 7km 가면 반야마을이 나온다.




들꽃 가득한 원시 비경 속의 청정 계곡

강원 홍천 문암동과 인제 아침가리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강원도 홍천 땅 내면에 이르면 사방이 온통 고봉(高峰)이요, 내리 계곡이다. 내면에서도 율전리는 1천m 이상의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친 원시림 지대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둥지를 튼 마을이 문암동이다. 살둔에서 무려 7km 이상 산길을 따라가야 만나는 마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용하고 운치 있는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매발톱꽃 초롱꽃 금낭화 물레나물꽃 미나리아재비꽃 까치수염꽃 쥐오줌풀꽃 기린초꽃 등 온갖 들꽃이 길가에 만발해, 트레킹하면서 생태 학습까지 겸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 더없이 좋다.


문암동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 건물이다. 얼핏 보기에도 옛집의 운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암교회 뒤편 비탈길을 올라가면 귀틀집 두 채도 만날 수 있는데, 산 중턱쯤에 있는 주시용 노인(80) 댁은 요즘 보기 드물게 지붕이 낮은 투방집이다. “이게 도꾸 하나 가지구 낭구 뻐드러지구 꾸부러진 거 쳐다가 이래 치싼거래유. 여기매 집들두 다들 새루 짓쿠 그런데, 우린 아직 이래 살어유.” 밖에서 얼핏 보면 평범한 집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구부러진 통나무 그대로 귀틀을 쌓았다. 사이사이 흙 고물을 처바른 것까지 보면 만만치 않게 지은 솜씨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홍천에서 가장 깊은 두메 마을이 문암동이라면, 인제에서는 기린면 방동리 아침가리(조경동)가 최고 두메 마을이다. 기린면 진동리 갈터에서 8km 정도 계곡을 타고 올라가거나, 방동리에서 산을 하나 넘어 10km 남짓 가야 한다. 트레킹으로만 가기에는 약간 먼 거리이지만, 진짜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인기 있는 곳이다. 현재 아침가리에는 세 가구가 살고 있으며, 지금은 폐교가 된 방동 초등학교 조경분교도 외롭게 남아 있다. 그러나 최근 청소년 연수원 시설 공사를 시작하고 있어 원시 비경이 망가지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이다.


■가는 길/문암동에 가려면 영동고속도로 속사에서 빠져 운두령을 넘어 창촌에서 56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광원리에서 좌회전, 446번 지방도를 따라 살둔까지 간다. 인제에서 가려면 31번 국도를 타고 가다 상남면에서 다시 446번 지방도를 탄다. 살둔에서 문암동은 내린천이 흘러내리는 방향의 왼편으로 보이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아침가리까지는 31번 국도 현리에서 방태산 자연휴양림 표지판을 보고 올라가 방동약수 쪽에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고, 진동리 갈터에서 계곡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 살둔산장: 033-435-5928





산천어 노니는 계곡을 낀 토종벌마을

강원 강릉 가마소






오대산 소금강 계곡을 등뒤로 하고 철갑령 남쪽 줄기인 해발 800m 남짓한 전후재를 넘으면 약 스무 채의 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외딴 마을이 나온다.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부연천 한 곳에 가마처럼 생긴 소(沼)가 있다 하여 가마소라 불리는 마을. 이 곳의 부연천 계곡은 지금도 산천어·메기·꾹쩌구 등이 살 정도로 물이 깨끗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곳에는 너와집·굴피집·귀틀집이 10여 채 가량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귀틀집 한 채만 있다. 현재 가마소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토종벌을 치며 살아가고 있으며, 이 마을에서 생산한 벌꿀은 연곡농협을 통해 각지로 판매되는데, 그 맛과 향은 전국에서도 최고로 친다. 양양 쪽 어성전에서 가마소로 들어오는 길은 구불구불 비포장 산길이어서 트레킹 코스로도 그만이다.


■가는 길/강릉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다가 방내에서 6번 국도로 옮겨 탄다. 연곡면 진고개 주유소를 지나 회골에서 소금강 반대편으로 난 산길(전후재)을 따라 약 40분 가량 비포장길을 넘어가면 가마소 마을에 닿는다. 중간중간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으며, 승용차로 넘을 수 있다. 숙박을 위해 굳이 강릉까지 나갈 필요는 없으며, 오대산 국립공원 근처에 깨끗한 민박집이 많다.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가다 하조대 쯤에서 좌회전, 어성전에서 다시 우회전해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운암호를 텃밭 삼아 사는 강마을

전북 임실 용운리와
운정리 범호 마을









섬진강댐이 생기면서 강 주변의 많은 마을이 수몰되었다. 그러나 일부 마을은 3면이 물로 둘러싸여 섬 아닌 섬 마을이 되었다. 임실군 운암면 용운리와 운정리 일대 마을이 그렇다. 과거 용운리는 용동·내마촌·불암동 세 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불암동은 댐으로 인해 완전 수몰되고, 수몰되지 않은 산꼭대기는 섬으로 남아 외안날로 불린다. 외안날은 현재 배를 타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현재 이 곳에는 단 한 가구에 한 명만이 산다. 단 한 명뿐인 거주자 박대서 노인(80)은 농사와 고기잡이로 살아 가고 있다. 용운리에서 운암호 아랫자락으로 더 내려가면 운정리가 나오는데, 이 곳에도 섬처럼 고립된 마을이 있다.

수암마을. 그곳에 가려면 운정리 들머리인 장자골이나 끝자락 마을인 범호마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수몰 전만 해도 범호마을의 집들은 샛집(억새 지붕)이나 초가집이 대부분이었지만, 현재 마을 전체를 통틀어 샛집은 한 채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송현석씨(66)네 헛간채에서 샛집의 고풍스러움을 맛볼 수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아름다워 ‘가는정’쯤에 차를 두고 범호마을까지 트레킹하는 것이 좋다.


■가는 길/승용차로는 쌍암에서 운암호 순환도로를 타고 가다 용운리 들어가는 길로 접어든다. 마을까지는 갈랫길에서 약 2km 정도. 운암호 쪽으로 내려가면 용운리다. 시내버스는 운암호 순환도로를 따라 운행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배를 이용한다. 범호마을로 가려면, 27번 국도상 운암대교를 건너기 전에 우회하여 ‘가는정’까지 가서 좌회전, 비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들어간다.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마을이 장자골이며, 범호리는 장자골에서도 4km 이상 들어가야 한다. 장자골에서 배를 타고 범호리까지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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