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위원장은 아무나 하나
  • 손장환 (<중앙일보> 체육부 차장) ()
  • 승인 2002.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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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수장들, 축구 대표팀 감독·선수 선발 ‘엉망’…이용수씨만 제구실
이용수와 조중연, 그리고 나누어 먹기.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일반적으로 기술위원회의 역할을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이다. 그리고 국가대표 선수 선발권도 기술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누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느냐는 오래 전부터 온 국민의 관심사다. 따라서 대표팀 감독 선임 때만 되면 기술위원회가 눈길을 끈다.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의 숨은 일꾼 이용수 기술위원장. 그는 한국의 기술위원장이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준 사람이다. 서울체고·서울대를 나온 축구 선수 출신으로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세종대 교수 겸 KBS 텔레비전 축구 해설위원이던 그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된 것은 2000년 11월이었다.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이 아시안컵 대회에서 3위에 그치자, 위기를 느낀 정몽준 축구협회장은 40대 초반인 이용수 교수를 기술위원장으로 전격 선임했다. 이교수는 기술위원장 직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감독 선임을 포함한 대표팀 운영에 관한 전권을 요구했고, 정회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전까지 겸직이었던 기술위원장 자리는 이용수 위원장 때부터 전임이 되었다.


조중연 위원장, 차범근 감독과 사사건건 마찰


당시 이위원장은 월드컵 개최국인 한국이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1순위가 프랑스 우승의 주역 에메 자케 감독이었고, 2순위가 거스 히딩크 감독이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려져 있다.

일단 히딩크 감독을 영입한 뒤 이용수 위원장은 철저히 히딩크 감독의 후견인이 되었다. 선수 선발에 관한 권한은 감독에게 위임했고, 말 그대로 기술적 후원만 했다. 기술위원들은 한국이 상대해야 하는 국가의 전력을 분석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상세한 자료를 히딩크에게 넘겨주었다. 이것은 그동안 잊고 있던 기술위원회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프랑스와 체코에 0-5로 대패해 히딩크 감독이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때, 미국 골드컵에서 부진해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을 때 이용수 위원장은 히딩크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다. 기술위원장과 대표팀 감독과의 ‘찰떡 궁합’은 결국 월드컵 4강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 반대의 경우가 조중연 현 축구협회 전무다. 역시 KBS 텔레비전 축구 해설위원이던 조전무는, 1998년 초 협회 전무와 기술위원장을 겸직했다. 당시는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 대표팀이 프랑스 월드컵 본선을 대비하던 상황이었다. 차범근 감독과 조중연 기술위원장은 선수 선발에서부터 선수 기용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부딪쳤다.




차감독의 선수 선발 원칙은 체격과 체력 우선이었다. 유럽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유럽 선수와 상대할 수 있는 체격과 체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술이 좋아도 체력이 떨어지는 선수는 ‘차범근호’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더구나 아무리 경험이 많고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라 하더라도 팀 분위기를 해치는 선수는 일절 용납하지 않았다.


조위원장의 견해는 달랐다. 대표 선수 선발에 차감독 개인적인 호불호(好不好)가 개입되어 있다는 판단이었다. 차감독은 기술위원장이 너무 간섭한다는 것이 불만이었고, 조위원장은 차감독이 기술위원장을 너무 무시한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사단은 프랑스 현지에 가서 터졌다. 조중연 위원장은 한국 선수단 단장 자격으로 갔다. 협회 전무 겸 기술위원장 겸 단장이었다.


두 사람의 대립은 멕시코와 첫 경기에서 1-3으로 역전패한 뒤 극에 달했다. 조위원장은 대놓고 기자들에게 “차감독이 최용수를 기용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급기야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 0-5로 대패하자 조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감독 경질을 발표했다.

임기 만료 전 감독 경질은 이사회 결정 사항이었으나 조위원장은 기술위원장 직권으로 경질을 발표해버렸다. 감독을 희생양으로 삼아 대표팀과 축구협회에 쏟아질 비난을 피해가겠다는 심산이었다. 조위원장은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자신과 기술위원들도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으나 그 후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진국 위원장은 협회 허수아비”


이용수 위원장이 사퇴한 뒤 기술위원장 직을 이어받은 사람은 왕년의 스타 김진국씨이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협회 집행부의 결정을 그대로 발표하는 ‘허수아비’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아시안게임 대표팀 박항서 감독을 임명하고 경질한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김진국 위원장은 기술위원회를 열고, 히딩크 감독 밑에서 그의 전술을 배운 박항서 코치가 감독으로 적임자라며 “그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올림픽 대표팀을 맡는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간에 히딩크 감독을 벤치에 앉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협회와 박감독 사이에 갈등이 일자, 대한축구협회 간부들 입에서 “박감독은 정식으로 계약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겨우 수습이 되는가 했으나,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3위에 그치면서 비난이 일자 이번에는 조중연 전무가 ‘감독 경질’을 거론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기술위원회는 박감독을 경질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그동안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한 적이 거의 없다. 아마 이용수 위원장 시절을 빼고는 유명무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분인 대표팀 기술 향상을 위한 자료 수집과 연구는 거의 없었고, 대표팀 감독과 대표 선수 선발에는 항상 이해 관계가 따랐다. 특히 대표 선수 선발에는 나누어 먹기가 횡행했다. 출신 학교 별로, 팀 별로, 개인의 이해 관계에 따라 행해졌다. 심지어 어떤 감독 시절에는 1년 동안 태극 마크를 단 선수가 70명에 이르기도 했다.


나누어 먹기에 대해 비난이 일 때마다 기술위원들의 항변은 간단했다. “엔트리 22명 중 실제 경기에 뛰는 선수는 16~17명이다. 5명 정도는 감독이나 기술위원 재량으로 뽑을 수 있는 것 아니냐?” 기술위원장과 기술위원회가 협회 고위층에 휘둘리지 않고 ‘대표팀 기술 향상’이라는 본분에 충실할 때 한국 축구는 제 궤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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