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두 김씨, 난다 한국 축구
  • 최원창 (굿데이 신문 기자) ()
  • 승인 200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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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플레이어 김동진·리틀 칸 김영광, ‘한국판 황금세대’ 주역
2006년 독일 월드컵을 향한 한국 축구의 최대 화두는 ‘세대 교체’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58)은 월드컵 멤버들의 경험과 연륜에다 아테네올림픽에서 56년 만에 8강에 오른 ‘젊은 피’들의 패기를 합친 최상의 조합으로 다시금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이후 한국 축구는 변화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며 시행 착오를 거듭해왔다. 월드컵 성적에 안주했던 결과다. 한국 축구에는 새로운 힘이 절실했다. 본프레레 감독은 월드컵 멤버를 중심으로 치른 지난 7월 아시안컵에서 실패를 맛본 후 아테네올림픽을 참관하며 젊은 피 수혈을 직접 마무리했다.

본프레레 감독이 그리스에서 치밀한 구상 끝에 마침내 꺼내든 최상의 카드는 ‘제2의 유상철’ 김동진(22·서울)과 ‘거미손’ 김영광(21·전남)이다. 이들은 자신의 성씨인 ‘金’이 상징하듯 한국 축구의 ‘골든 제너레이션’을 꿈꾸고 있다.

김동진과 김영광은 아테네올림픽을 통해 차세대 주역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이천수(누만시아)·조재진(시미즈) 등은 이미 알려진 선수들이지만 이들의 존재는 올림픽 이전까지는 미미했다. 지난해 12월4일 동아시아선수권 홍콩전에서 A매치에 데뷔했던 김동진은 간헐적으로 대표팀에 포함되었고, 김영광은 지난 2월14일 오만전에서 A매치 첫 경기를 뛰었지만 새로운 변혁 엔진으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아테네올림픽은 이들에게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이들은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자신에게 주어진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스와의 개막전 때 김치곤이 퇴장당한 악조건에서 김동진의 짜릿한 선제골이 없었다면 한국의 8강 진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김동진의 진가는 그리스전뿐만이 아니었다. 8강행의 마지막 경기였던 말리전에서 0-3으로 몰리던 낭떠러지에서 김동진은 두 차례 왼발 센터링을 조재진의 머리에 적중시키며 극적인 3-3 무승부의 발판을 만들어냈다.
김동진·이영표 주전 경쟁 ‘흥미 진진’

세계 강호들과의 대결에서 김영광의 선방은 올림픽 대표팀의 백미였다. 김영광은 상대 공격수와의 1 대 1 대결에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는 침착한 플레이로 이운재를 이을 차세대 거미손으로 축구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이들은 귀국하자마자 본프레레호에 탑승했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팀에 새로운 활력소 구실을 하고 있다. 지난 9월2일 파주NFC에서 실시된 셔틀런 테스트에서 김영광은 1위(75회), 김동진은 2위(74회)에 오르며 대표팀 내 최고 체력왕을 차지했다. 선배들과 동료들의 경쟁심을 유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였다. 이들을 지켜보는 본프레레 감독은 흡족할 수밖에 없었다.

김동진이 제2의 유상철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왼쪽 미드필더를 비롯해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수비수까지 겸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양공고 시절 스트라이커로 뛰었던 경험을 살려 팀이 필요로 할 때마다 한 방을 터뜨릴 수 있는 해결사 기질도 닮았다. 특히 김동진이 그리스전에서 골을 터뜨린 슈팅은 완벽에 가까울 만큼 정확했다. 올림픽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지난 9월1일 성남 일화전에서도 후반 40분 호쾌한 중거리포(20m)를 작렬시키며 변함 없는 골 감각을 선보였다.

김동진은 왼발잡이다. 그동안 축구 대표팀은 설기현·이천수·이영표 등 오른발잡이면서도 왼발을 잘 쓰는 선수들이 왼쪽 측면을 맡아 왔다. 하지만 김동진의 등장으로 왼발 전문 키커가 없던 한국 축구에 숨통이 트였다. 이천수·이영표(PSV 아인트호벤)는 왼쪽 측면에서 주로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리지만 김동진은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왼발 크로스를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김동진은 안양공고 선배인 이영표와 자리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영표는 “슈팅력이 좋고 지치지 않는 체력이 부럽다. 특히 운동선수로서 성실한 생활 태도와 적극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대표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이 앞으로 펼칠 주전 경쟁은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서 지난 아시안컵에서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되었던 왼쪽 측면의 공백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동진은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왔다. 2000년 아시아 청소년대회 때 예선 탈락의 쓴맛을 보며 세계 무대를 밟지 못했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오른쪽 허벅지를 다쳐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깊은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다. 동기인 이천수·조재진·최태욱이 상종가를 칠 때 그는 조용한 조연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동진 시대’가 이제 열리고 있다.

한국 축구가 세계 수준의 GK를 보유한 때는 불행하게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김병지가 처음이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까지 세 차례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는 GK의 판단력 부재로 번번이 실점해왔다.

김병지+이운재=김영광

김영광은 김병지의 민첩함과 이운재의 판단력을 겸비했다고 평가받는다. 게다가 그의 적극적인 성격과 무서운 승부욕이 이렇다할 경쟁자 없는 독주 체제에서 다소 긴장이 늦추어졌던 이운재에게 자극제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광은 올림픽을 통해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 순위 축구 분야에서 당당히 1위로 올라섰다. 김영광은 그리스전에서 타랄리디스에게 골을 허용할 때까지 열두 경기 966분 무실점 기록을 세워 ‘한국의 올리버 칸’으로 이름을 높였다.

김영광이 처음부터 각광받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그는 주전과 후보를 오갔다. 그러나 두둑한 배짱과 타고난 승부욕으로 그는 주전이 되었다. 그는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세계청소년대회에서 한국의 16강을 견인하며 부쩍 성장했다. 이후 올림픽 대표팀으로 말을 갈아탄 김영광은 그 기세를 살려 아테네올림픽에서 선전을 거듭했다. 이제 그에게 기대하는 것은 독일 월드컵까지 이 기세를 이어가 달라는 것이다. 김영광은 이제 단순히 김병지·이운재 등 한국 축구계의 ‘스타 골키퍼’ 계보를 잇는 선수에서 벗어나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구어낸 선배들의 영광을 재현할 ‘한국 축구의 기린아’로 쑥쑥 자라고 있다.

포르투갈이 루이스 피구(레알 마드리드) 후이 코스타(AC 밀란)를 앞세워 1989년과 1991년 세계청소년대회를 연거푸 우승하자 사람들은 이들을 ‘황금세대’라고 불렀다. 이들은 유로 2000(유럽선수권)과 유로 2004에서 변방의 포르투갈을 일약 세계적인 강호로 이끌었다. 한국 축구는 아테네올림픽을 통해 20대 초반의 한국판 황금세대를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김동진과 김영광은 그 선두에 서 있다.

미켈란젤로는 “완벽한 형태는 돌덩어리 속에 숨어 있다. 필요한 것은 그것이 드러날 때까지 깎아내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들의 성장세에 가속도가 붙는다면 2002년 월드컵 뒤 하강곡선을 그려온 한국 축구가 머지 않아 세계의 중심에 진입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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