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무대 벼르는 ‘큰 거미손’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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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재(31·수원)가 다니던 청주상고 축구부는 유독 골키퍼 포지션이 약했다. 대회 때마다 이운재는 “내가 해도 저보다는 낫겠다”라며 가슴을 쿵쿵 쳤다. 어느 날 연습 중에 실수한 골키퍼에게 이운재가 그것도 못 막느냐고 핀잔을 주자 골키퍼가 발끈했다. “그럼 네가 막아 봐.” 이 말을 듣고 이운재가 고집을 부리며 골키퍼로 나섰다. 그리고는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코치는 그의 포지션을 골키퍼로 못 박았고, 청주상고는 전국 대회를 휩쓸었다.

이운재의 골키퍼 행로는 순탄치 않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멤버로 발탁되었지만 선배 신범철에게 밀렸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팀에서는 동기 서동명에게 밀렸다. 설상가상으로 1996년 이운재는 간염 판정을 받아 장갑을 벗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끈기와 성실함으로 2년 만에 다시 기량을 찾았다. 그 사이 평생의 라이벌 김병지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치르며 ‘1등 수문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불운’하던 이운재에게 뜻밖의 기회가 왔다. 2000년 1월 칼스버그컵에서 김병지가 공을 중앙선 부근까지 몰고나오는 돌출 행동을 하며 히딩크 감독의 눈 밖에 난 것이다. 이운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이후 주전 자리를 내주지 않으며 한국의 대표 수문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운재는 페널티킥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인다. 지난 12월19일 독일이 자랑하는 천재 미하엘 발락의 페널티킥을 막았고, 포항과의 올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김병지 선수의 페널티킥을 막았다. 이운재를 써먹으려면 한국팀은 PK로 승부를 가르는 월드컵 16강 안에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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