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 ‘맥점’, 이창호에 있다
  • 박치문 (중앙일보 전문기자) ()
  • 승인 2005.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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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강자들에게 여전히 큰 장벽…기풍 변화에 ‘태풍의 눈’ 구실도

 
“한국과 중국의 실력 차이는 오직 이창호 한 사람의 차이다.” 삼성화재배 세계대회 준우승자인 중국의 신진 강호 왕시(王檄) 5단은 농심배 국가대항전 최종국에서 이창호 9단에게 패한 뒤 이렇게 말했다. 왕시는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 이세돌 9단에게 2 대 0으로 완패했다. 그러나 그는 이세돌이 강하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이창호와 바둑을 두어본 사람만이 그의 강렬한 기세를 실감할 수 있다. 기보를 놓아보는 것만으로는 이창호를 알 수 없다.” 이는 창하오(常昊) 9단의 말이다. 그 역시 얼마 전 도요타 덴소배 세계대회 결승에서 이세돌 9단에게 2 대 1로 패배했는데도, 이세돌이라는 이름 석 자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또 응씨배 세계대회 결승전에서 자신과 맞서고 있는 최철한 9단에 대해서도 의례적인 찬사만을 보냈다.

돌이켜 보면 창하오 자신도 10년 전 중국에서 ‘최고의 신인’ 소리를 들으며 화려하게 떠올랐으며, 중국 대륙은 창하오야말로 한국 바둑을 누르고 바둑 종주국 중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릴 주인공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름도 비슷해 창하오는 ‘중국의 이창호’ 소리를 들으며 중국의 거의 모든 대회를 휩쓸었다.
그러나 그는 세계 무대 정상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다. 한국의 조훈현에 이어, 이창호·이세돌에게 결승에서만 무려 여섯 번 연속 무너졌기 때문이다. 창하오는 그 후 큰 승부일수록 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창하오가 막 세계 무대에 나선 최철한을 인정할 리 없다.

최철한이 국수전에서 이창호를 3 대 0으로 셧아웃시켰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강자들은 이창호 9단을 여전히 한 수 위 고수로 인정하고 있다. 승부 세계에서 이것은 참 특이한 현상이다. 이창호와의 상대 전적에서 2승1패로 앞서고 있는 중국 랭킹 2위 쿵제(孔杰) 7단이나 2승3패로 엇비슷한 후야오위(胡耀宇) 7단조차 “이창호도 신이 아니며, 나는 이창호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고는 했다.

실제로 중국의 삼총사로 불리는 구리(古力)·쿵제·후야오위의 힘과 한국의 이세돌·최철한·박영훈의 힘을 저울에 달아보면 아마 비슷하게 나올 것이다. 이들은 전적에서도 일진일퇴할 정도로 엇비슷하다. 그러고 나면 왕시의 말마따나 이창호 한 사람만 남는다.
이창호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올해 들어 두 달간 1승5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 인터넷과 성급한 언론들은 ‘이창호 시대는 끝났다’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그러나 이창호는 농심배에서 중국·일본의 대표 다섯 사람을 연파하고 우승해 자신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만천하에 과시했다. 다섯 판의 바둑 내용을 보면 일본의 명인이자 본인방인 장쉬 9단과의 대국이 위험했다. 이창호 본인도 장쉬와의 대결을 5연승으로 가는 최대 고비로 여겼고, 바로 그 때문에 어려움이 가중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세계 제패는 이세돌·최철한 공로?”

 
이창호 바둑에서 또 하나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창호 바둑이 전과 달리 격렬해진 것이다. 다섯 판 모두 불계승했다. 과거 신산(神算)이라 불리던 시절의 면모가 이제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이창호의 변신은 나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으면 계산력이 조금씩 후퇴한다.
그러나 곰곰이 되짚어보면 이창호의 변화는 국내 강자인 이세돌과 최철한이 만들어낸 변화일 수 있다. 후배 기사 이세돌과 최철한은 본시 기풍도 공격적이지만, 이창호와의 대국에서는 특히 격렬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물론 그의 계산 바둑을 뒤흔들어 놓기 위한 전략이다. 이창호는 처음에 이들의 도전적 행마를 묵인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그러나 점차 그들의 도전에 정면으로 맞서는 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창호의 스타일이 바뀐 것은 순전히 이세돌과 최철한의 공로(?)라 할 수 있다.

과거 조훈현 9단은 40대 늦은 나이에 이창호의 계산 바둑을 깨뜨리기 위해 전투 일변도로 스타일을 바꾸었다. 자신의 스타일로 충분하다고 믿는 쪽은 결코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다. 이창호의 기풍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이세돌·최철한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과거의 스타일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본인이 절감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같은 기풍 변화가 한국 바둑이 어떻게 세계 최강의 왕좌를 유지해 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전통 스타일의 일본 바둑은 수백 년에 걸친 도제 제도에서 발전해왔다. 엄격한 스승과 선배가 있고, 행마법에도 넘지 않아야 할 분명한 선이 있었다. 최고,최선의 행마는 아름다운 것이다. 적어도 전문가들의 눈에는 행마의 미추(美醜)가 그처럼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리하여 일본의 행마는 점점 미학적이 되고, 금기가 많아졌다. ‘설사 승부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곳은 반드시 젖혀야 한다’는 식의 정신 자세가 바둑의 예도로 자리 잡았다. 바둑 수업 시절부터 턱없는 일탈이나, 조금이라도 비겁해 보이는 행마는 스승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한국 바둑은 세계 바둑사 관점에서 그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바둑은 금기시되어온 온갖 실전적인 수법을 총동원했다.이전투구·과격함·강퍅함·비겁함 등의 느낌에서 자유로운 한국 바둑은 정신적 부담 없이 실전적 수법들을 부활시켰다. 일본이 좁혀온 선택의 폭을 한국이 다시 넓혔고, 지금은 누구나 한국 식으로 둔다.
조훈현은 일본에서도 인정하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였다. 그에게는 한국에서 적수가 없었다. 그는 서봉수를 만나 세계를 제패할 칼을 갈 수 있었고, 이창호를 만나 자신의 역량을 새롭게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본시 수읽기와 전투 전문가인 유창혁 9단은 이창호와의 연구를 통해 계산 분야에 눈떴고, 이세돌·최철한 같은 후배들은 이들의 시합을 기록하고 복기하며 성장했다.

이처럼 한국 바둑의 중심에는 항상 이창호가 존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세돌·최철한이 이창호의 스타일을 바꾸고 있고, 이런 실력 사회 특유의 놀라운 정반합(正反合)을 통해 한국 바둑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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