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의 몸통’ 허문석은 누구?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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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석유탐사 전문가로 불쑥 등장…인도네시아에서 주로 활동
 
단순 사기 사건인가? 아니면 권력형 게이트 인가? 그 답은 서울지검 특수3부에 맡겨졌다. 검찰은 철도공사 러시아 유전 개발 의혹 사건 관련자 12명을 출국 금지시키고, 압수 수색을 벌이며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시작부터 난항이다. 철도공사 왕영용 사업본부장을 비롯한 이번 사건 관련자들이 한결같이 허문석씨(71)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다. 허씨는 지난 4월4일 인도네시아로 출국한 뒤 귀국을 미루고 있다.

허씨에게 의혹이 쏠리면서, 그의 실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의 학력부터 논란이다. 2001년 이광재 의원에게 허씨를 소개했던 이기명씨는 그가 연세대를 다니다가 미국에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이기명씨와 허씨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래서 이광재 의원도 허씨를 연세대 선배로 알고 있다. 그러나 허씨는 연세대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허씨는 1958년 9월 경희대 경제학과에 편입했고, 1960년 경희대를 졸업했다. 그는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허씨는 미시간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텍사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왕영용 본부장과 철광석 개발도 함께 추진

미국으로 건너간 후 시민권자가 된 허씨가 국내에 석유탐사 전문가로 알려진 것은 1980년대. 해외 원유 개발 1호로 기록된 인도네시아 서 마두라 유전 사업에 그가 기술총책임자로 참여했다. 마두라 유전은 1981년 5월  민간 업체인 코데코 사(최계월 사장)가 인도네시아 정부와 손잡고 발굴한 대표적인 원유 사업이다. 이 사업을 추진한 최사장은 1963년 도쿄에서 김종필과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의 회담을 주선해 양국간 국교가 체결되기 전에 무역 길을 뚫은 개척자이다.

당시 원목 개발 사업만 하던 최사장은 원유 발굴은 문외한이어서, 미국에서 활동하던 허씨를 영입했다. 코데코 사의 수석 부사장으로 영입된 허씨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마두라 유전 개발을 진두 지휘했다(사진). 당시 전두환 정권은 코테코 사에 1억2천3백30여만 달러를 지원하며 산유국이 되었다고 정권 차원에서 선전했다. 그러나 1986년 허씨가 지휘한 유전 개발은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서도 실패로 돌아갔다.

당시 정부측에서 이 사업을 담당했던 전 동력자원부 관계자는 “마두라 유전 개발 실패는 100% 허문석 책임이다. 그가 박사인지도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초기 유전 개발의 기본인 적정 생산량을 잘못 계산한 것이다. 적정 생산량을 과다 평가해 무리하게 원유를 생산하면서(1일 1만5천 배럴),  저류층내 압력이 감소했고, 그 결과 하루 3천 배럴만 생산할 수 있는 폐유전으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최계월 사장은 허씨와 결별했다. 그 과정에서 허씨는 일정 지분을 요구하며 최사장과 소송까지 벌였다고 한다.

이후 허씨는 인도네시아에서 석유 전문 사업가로 변신해 자기 회사를 차렸다. ‘PT SEPCO’라는 감리 회사를 차려 8천여 개에 이르는 인도네시아의 석유 정제 시설을 관리했다. 그도 최계월씨처럼 인도네시아 정·관계 고위층과 인연을 맺었다. 2000년에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국에 파견한 투자유치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를 주 활동 무대로 삼은 그는, 국내를 드나들며 인도네시아 권력층과 통하는 실력자로 행세했다.

허씨는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사업과 관련해 자문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허씨는 러시아 유전 개발의 최초 기획자인 쿡에너지 권광진 사장이 제공한 ㅍ사의 회계보고서와 미국의 유전 평가사인 ㅅ사의 보고서를 보았고, 철도공사에 사업성이 있다고 자문에 응했다.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허씨는 이후 진행 과정은 철도공사 왕영용 사업본부장이 주도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왕본부장과 허씨가 인도네시아 철광석 개발을 함께 했다는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면서, 허씨는 이번 사건의 몸통 격으로 떠올랐다. 

현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머무르고 있는 허씨는 귀국 여부가 불투명하다. 당초 4월10일께 귀국하겠다던 그는 신분 보장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검찰로서는 허씨가 미국 시민권자여서 그가 제 발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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