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으로 살찌고, 머드로 빛나고
  • 금산·보령·유성·홍성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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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보령·유성·홍성, 지역특성화 ‘대박’…특산품·환경 적극 활용

 
인삼의 고장 금산군과 머드로 유명한 보령시는 지역 특성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두 지역의 성공 사례는 일찍이 대전·충남 지역뿐 아니라 전국 기초 단체들의 모범 사례였다. 그래서 ‘지역 특성화 사업을 가장 잘 추진하고 있는 기초 단체가 어디인가’를 묻는 이번 설문 조사에서도 두 지역은 각각 1, 2위를 기록했다. 전체 응답자 5백명 가운데 15.2%(76명)가 금산군을, 9.6%(48명)가 보령시를 꼽았다.

금산-인삼과 자연공원 묶어 ‘상승 효과’

전국 인삼 생산량의 80% 이상, 연간 4백30억원어치가 거래되는 금산군은 대표적인 인삼 종주지다. 그러나 유명한 특산물이 있다고 해서 지역 특성화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금산군의 성공은 특산물을 기반으로 산업과 지역 이미지를 통일함으로써 가능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뒤 금산군은 인삼·약초 시장의 소매 기능을 강화해 쇼핑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인삼·약초 가게 1천2백여 곳이 모여 있는 금산 인삼약초시장에는 매달 22만명이 넘는 쇼핑 관광객이 찾아든다. 1981년부터 매년 개최한 금산의 인삼 축제가 미끼였다. 축제 기간에는 관광객 91만여 명이 금산을 찾아 금산군은 7백여억원을 벌어들인다. 수출액도 1천4백만 달러에 이른다. 금산군은 이런 시장 기능을 국제적인 규모로 육성하고 인삼의 우수성을 더욱 알리기 위해 내년에 금산세계인삼엑스포를 개최한다.

금산군은 인삼을 활용한 다양한 상품 개발도 적극 지원해 왔다. 도정한 쌀에 인삼 가루를 코팅한 인삼 쌀은 금산의 또 다른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금산에 있는 두리화장품은 인삼을 원료로 한 탈모 예방 샴푸를 개발해 연간 35억원 이상 벌어들이고 있다. 두리화장품 관계자는 “약초와 인삼을 구하기 쉬워서 금산에 공장을 세웠는데, 인삼의 고장 금산 기업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마케팅에 활용해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금산군은 인삼 그 자체에만 몰두하지 않고, 인삼이 상징하는 건강성과 자연성을 지역 이미지로 진화시켰다. 금산은 3천여 개의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금산군은 이 점에 착안해 자연공원을 천 개 만들고 있다. 1998년부터 2백20억원을 들여 10년 계획으로 숲 가꾸기 사업과 등산로 정비, 꽃밭 가꾸기, 경관목 가꾸기를 추진해 산을 공원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야생으로 무리진 진달래·산벚나무·조팝나무와 야생화 등을 가꾸어 1천3백여만 평에 달하는 꽃밭도 조성했다. 지금까지 모두 7백77개의 공원을 만들었다. 이렇게 조성한 자연 공원은 ‘보곡산골 산꽃 축제’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자연 공원은 야생 산일 때보다 경제 가치가 높다.

공원 내 묘목 값 추산 액이 3천1백47억원에 달하고, 지역의 땅값도 사업 초기에 비해 두 배 이상 뛰었다. 금산군 박동철 부군수는 “앞으로는 금산 하면 인삼만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 생태가 살아 있는 건강한 지자체를 연상하도록 만드는 것이 금산군의 목표이다”라고 말했다.  

 

금산의 변화에는 ‘숨은 공신’들이 있다. 군청과 군민들이 금산 탈바꾸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금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금사모)’가 자문 역할을 해주었다. 금산과는 지역 연고가 전혀 없지만 금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조직된 이 모임에는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위원과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한국야생화연구소 김태정 소장, 현암사 조근태 사장, 인하대 전용수 교수, 화가 김병종씨(서울대 미대 교수) 등이 회원이다. 이들은 금산의 지역 특성화 사업에 필요한 자문단 역할을 해주고, 금산을 가꾸는 데도 직접 참여한다. 식목일에는 나무를 심고,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폐교가 된 초등학교 부지에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설립해 이 지역 농업 활성화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보령-머드 테마 파크·웰빙 센터도 준비

금산 못지 않게 지역 브랜드 알리기에 성공한 곳이 보령시다. 보령시는 대천해수욕장 인근의 진흙(머드) 하나로 대전 충남 지역의 ‘대표 선수’로 등극했다. 보령시 문화공보담당관실 명희철 계장은 “10년 전만 해도 보령에서 왔다고 하면 ‘보령제약’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대천해수욕장은 알아도 보령시는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보령이 머드로 유명해지면서 대천해수욕장보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다”라고 주장했다.   

명희철 계장은 보령의 머드 상품화를 처음 기획하고 추진해온 이다. 10여 년 전 진흙 마사지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본 그는 진흙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머드 축제를 기획했다. 대천해수욕장 진흙 뻘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영화에서 본 대로 마사지를 하게 한 것이다. 첫 행사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결과는 아름답지 않았다.

뻘 흙이다 보니 마사지 도중 갯지렁이가 튀어나왔는데, 관광객들이 기겁을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는 가운데서 보령 머드 축제는 해마다 조금씩 발전해 국내 최고 축제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배재대학교 관광이벤트 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머드 축제 1주일 동안에만 보령시는 3백33억원 가량을 벌어들였다. 이 축제에 쓴 시 예산은 4억4천만원이었다. 보령 머드 축제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외국인 참가자가 늘어나고 있어 해외 홍보 효과 또한 높다. 

 

보령시는 머드 축제에만 기대지 않고 머드를 활용한 상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머드가 마사지 효과를 갖고 있다면 화장품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명희철 계장은 보건복지부와 태평양기술연구원 등을 찾아다니며 머드를 원료로 한 화장품 개발에 매달렸다. 태평양 기술연구원과 2년간 공동 연구 끝에 마침내 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머드팩과 머드비누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스킨 로션 영양크림과 같은 기초 화장품으로까지 제품이 다양해졌다. 태평양과 한국콜마가 생산한 머드 화장품을 직접 판매하는 보령시는 이 제품만으로 연간 20억원 이상 벌어들인다.

명희철 계장은 보령 시민 모두의 기업체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주민에게 주식을 나누어주고, 회사 운영을 전문 경영인에게 맡겨 보령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몇달 전 공보실로 발령이 나면서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명희철 계장은 “머드 화장품 사업이 보령시민의 기업으로 탈바꿈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업무를 인수한 담당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것이 공무원의 한계다”라고 아쉬워했다. 서류는 인계해줄 수 있지만 인적 자원이나 경험까지 넘겨줄 수는 없고, 여러 업무를 전전해야 하므로 한 가지 일에 매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성-대덕밸리·온천을 양 축으로 삼아

 

보령시는 머드가 전국 브랜드로 자라자, 이 브랜드를 각종 농산물에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머드 양송이, 머드 토마토, 머드 쌀 등을 개발했다. 유기물이 풍부한 갯벌의 흙과 탄광 바람을 이용해 생산한 머드 양송이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재배하는 것보다 수확량이 20% 가량 늘었다. 3년 전 머드 양송이를 처음 재배한 이희영씨(53·보령시 청라면 의평리)는 “보령 머드에는 미네랄 성분이 많아서 병충해에도 강하고 수확량이 20% 가량 늘었다”라고 말했다. 토마토와 쌀에서도 비슷한 성과가 나타났다.

보령시는 머드를 세계화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이시우 보령시장은 “TV 홈쇼핑 등 전국 판매망을 확장하는 동시에, 머드 원료와 머드 비누를 일본과 미국에 수출하겠다”라고 계획을 밝혔다. 현재 건설 중인 ‘머드 체험 랜드’를 7월 이전에 준공해 머드 체험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고, 더 나아가서는 머드 테마 파크와 머드 웰빙센터를 지을 계획도 갖고 있다. 그러면 보령 머드는 충남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에서 세계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령시는 기대한다.

앞의 두 지자체가 특산품을 매개로 지역 특성화에 성공했다면, 유성구는 지역 특성을 더 강화한 경우이다. 연구개발특구와 관광특구를 가진 유성구는 두 특구를 양대 축으로 삼아 도농 복합 도시로 성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대덕벨리와 온천관광특구에서 거두어들이는 세수 덕분에 유성구의 재정자립도는 40%대로 다른 지방자치단체보다 월등히 높다(대부분 지자체 재정자립도는 20% 안팎이다).

유성구는 이미 조성된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대덕밸리’를 선포하고, 이 지역을 과학 중심 지역으로 집중 육성했다. 벤처 기업 마케팅 전문 강좌를 개최하고, 벤처 기업 보육지원팀을 운영하는 등 이 지역에 많은 연구 기업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힘썼다. 그 결과 대덕벨리 선포식 이전에 1백16개이던 이 지역 기업 수는 지난해 2백52개로 두 배 이상 불어났다.

또 유성 온천을 활용해 매년 건강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데도 주력해 왔다. 오다 가다 잠깐 들러 온천만 즐기고 가는 관광객을 잡기 위한 다양한 방법도 모색했다. 온천을 매개로 한 족욕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고, 문화 유적지가 없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각 연구소를 활용한 과학 관광 교육을 대체 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또 공주·금산·부여 등 주변 지자체들과 함께 백제문화권 관광 벨트화도 추진하는 중이다.

홍성-‘녹색 체험’ 위한 생태관광단지로 변신

금산·보령·유성에 비하면 홍성군은 가진 자원이 적은 가운데서도 꾸준하게 지역 특성화 사업을 전개해 온 대표적인 지자체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상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최근 몇년 동안 이루어진 홍성군의 변화는 이미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일찍이 풀무원 유기농이 시작된 홍성군은 그 특색을 살려 자연 생태 환경 중심의 지역 특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채현병 홍성군수는 “특산품인 광천토굴새우젓과 남당리 대하를 대표 상품으로 육성하는 동시에 오리농법·유기축산 등 친환경 농축업을 적극 유도해 홍성군 전체를 살아 있는 생태체험장으로 탈바꿈시켰다”라고 자평했다.

홍성군은 이를 자원 삼아 도시인의 체험 관광 욕구를 자극했다. 농촌과 어촌, 산촌, 전통 문화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내포 녹색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는 관광’에 신물이 난 도시인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홍성이 내포 서민 문화의 중심지임을 알리기 위해 ‘내포사랑 큰 축제’를 개최해 왕족 문화 중심의 백제문화권 관광 벨트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지역 특성화에 주력하면서 일부에서는 ‘돈 독만 올랐다’며 비판한다. 그러나 지역 특성화에 성공한 이들 지자체들은 돈보다는 지역의 자연과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열매를 맺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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