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는 부실했고 결론은 성급했다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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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암살 현장’ 동행 취재의 진실

 

지난 5월3일 밤 문화방송 'PD수첩'은 김형욱 실종 사건에 대한 현장 검증 결과 파리 양계장 암살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방송했다. 그러나 PD수첩 팀의 요청으로 사건 현장 재현에 6박7일간 동행했던 기자로서는 그같은 성급한 결론에 동의할 수 없다.

기자는 동행 취재 과정에서 그런 단정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 당초 일본과 프랑스 현지에서 확보하기를 기대했던 핵심 증거 접근에 실패하면서 이 사건 진상 규명은 궁극적으로 정부기관의 몫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만을 안고 돌아왔을 뿐이다.

지난 4월 11일 시사저널이 본인이 김형욱 암살 현장 실행 조장이라고 주장한 중정 특수공작원 출신 이 아무개씨의 인터뷰를 공개하자 반향은 컸다. 그는 1979년 10월7일 파리 시내에서 김형욱씨를 납치해 근교의 한적한 양계장에서 사료분쇄기에 넣어 암살했다고 주장했다.

암살 현장 조장이었다고 자처하는 당사자가 나타나 구체적 경로를 털어놓았다는 점에서 이 기사는 기존의 난무하던 풍문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이씨는 당시 납치 현장에 여배우 최지희씨가 있었다는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렸다.

기자는 이 내용을 당시 김형욱 회고록을 집필하던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에게 확인한 결과 사실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대답을 들었다. 또 최지희씨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나는 김형욱과 알고 지내기는 했지만 당시 파리 사건현장에는 내가 아닌 친구 여배우가 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무렵 그 배우가 영화찍느라 파리에 있었다'라는 해명을 들었다. 어쨌든 파리 김형욱 실종 현장에 미모의 여성이 있었다는 점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취재 내용이었다. 

특히 김형욱 암살조장을 자처한 이씨의 신분이 중정에서 양성한 비밀 특수공작원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처음에 기자는 취재 내용이 국가정보원측이 추진 중인 7대 의혹 사건에 포함된다고 판단해 진실위의 한 관계자에게 제보자의 존재를 알리고 같이 만나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제보자가 국정원측과 당장 만나기 거북하다고 해서 우선 종합 취재한 내용부터 기사로 내보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파문이 확대되자 기자는 암살 현장 실행 조장을 자처한 이씨를 다시 만나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조사에 응하는 것이 순리라고 설득했다.  익명의 기사를 내보낸 후 나몰라라 한다는 것은 언론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기자가 끈질기게 설득하자 국정원 조사에 응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국정원 기조실장 만나 공작원 이씨 신분 확인 요청했지만...

4월12일 밤 기자는 국정원의 김만복 기조실장과 서울 시내 한 안가에서 비공식적으로 만나 그동안 확보한 이씨의 신상명세와 자신이 중앙정보부 특수공작원이라고 주장하는 각종 근거 등을 제공했다. 그러나 김실장은 이 자리에서 “이씨의 신분이 중정 소속이었다고 인정할 수도 없고, 그것을 뒷받침한다는 관련 서류도 받지 않겠다”라고 잘랐다.

이어서 그는 국정원 내부의 분석 결과 이씨가 시사저널에 한 인터뷰 내용은 각기 다른 여러 조각을 꿰어 맞춘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또 이씨가 인터뷰에서 중정 지휘 라인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중정 과거사 조사 대상에 포함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기자는 김실장에게 국정원이 이씨를 일단 만나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고,  그의 정신감정까지 실시해본 후 사실과 다르면 다르다고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김실장은 끝내 기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이씨가 김형욱을 납치·암살하는 과정에서 중정 소속 특정인의 지시를 받았다는 새로운 진술을 한다면 <시사저널>을 통해 이씨를 간접적으로 조사할 수는 있다”라고만 말했다.

결국 국정원이 김형욱을 자기가 죽였다고 주장한 이씨의 신원 확인을 거부하고, 절대로 조사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던 기자는 새로운 물증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씨를 비롯한 관련자들이 정말 현장에 갔다면 무언가 이를 증명할 물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선 이씨가 김형욱 납치 당시 ‘제일교포 김승’이라는 이름으로 위조 여권을 만들어 일본 도쿄-이스라엘 텔아비브간 항공 노선을 이용했다고 밝혔기 때문에 그 출입국 기록을 확인하고 싶었다. 또 당시 일본에 살던 배우 최지희씨가 그 기간에 파리에 갔다면 역시 출입국 기록이 남아 있을 터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씨가 김형욱을 납치 암살했다고 주장하는 파리 근교 양계장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비록 2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옛 흔적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그의 주장의 신빙성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조사 작업은 방송사와 공동으로 진행할 생각이었다. 시사저널 보도 후 때마침 국내 공중파 방송 3사의 간판급 다큐멘터리 프로 제작진이 앞다투어 이씨와 연계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 중 문화방송 PD 수첩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해외 동행 취재를 놓고 경합하다가 당초 그것이 알고싶다 팀과 가기로 이씨 밑 기자 사이에 합의된 현장 취재를 중간에 PD 수첩 팀에서 무리하게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우여곡절 끝에 PD수첩 팀과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경쟁 프로그램 의식해 서둘러 방영

이 와중에 문화방송의 '암니옴니' 기자들은 독자적으로 이씨의 거처를 찾아내 별도 취재를 하고 있었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팀도 비록 현장 동행에서는 빠졌지만  이씨와 인터뷰를 한 뒤 독자적인 주변 방증 취재에 들어가 있었다.

기자는 당초 신변 안전 문제 등을 우려해 머뭇거리던 이씨를 설득해 PD 수첩 팀과 함께 4월25일부터 1주일간 일본과 파리 현장 취재에 들어갔다. 기자와 이씨의 일본 항공 경비 및 일부 숙박은 시사저널이 책임지고, 나머지 체제 경비와 파리 항공료 등 경비는 PD수첩 팀이 맡는다는 조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시사저널은 지난 6개월 동안 확보한 암살 실행조장 이씨와 관련한 대부분의 취재 내용을 최초로 PD수첩 팀에 넘겨주었다. 특히 김형욱 사건을 보도하면서 이씨가 과거에 중정 특수 비선요원으로 북파되어 대남 위장 간첩을 해온 행적 등에 대해서는 그의 신변 안전을 고려해 지난 기사에서는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PD 수첩 팀에 그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넘겨주었다. 

PD 수첩이 취재한 이씨 일행의 대남 위장간첩 신분과 활동 내용은 물론 김형욱 암살 사건 취재는 시사저널의 독점적인 협조가 없었다면 접근조차 불가능한 것이었다. 

일본쪽 취재 길에 기자의 관심사는 크게 두가지였다. 일본 도쿄에서 암살조장을 자처한 이씨가 이스라엘로 출국했다는 당시 기록을 찾는 일과 최지희씨가 10월7일 밤 묵었다며 메모장에 기록을 남겨둔 하코네 호텔을 찾아 검증해보는 일이었다.

최씨의 이같은 ‘알리바이’는 이미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기자와 공조하며 취재하는 과정에서 알아내 일본으로 오기 전에 넘겨준 것이었는데, 기자는 이런 취재 정보조차 경쟁 프로그램인 PD 수첩 팀에 넘겨주며 도왔던 셈이다. 그러나 뭔가 나오기를 기대했던 이 취재는 모두 실패했다.

일본 법무성 출입국관리국은 물론 주일 한국대사관측도 최지희씨의 당시 출입국 기록은 물론 암살조장을 자처한 이씨의 위조 여권 이름 김승씨에 관해서도 확인해 주기를 거부했다. 이같은 결정적 증거들은 민간 차원에서는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만을 뼈저리게 확인했을 뿐이었다. 이씨가 당시 김형욱 제거 공작 임무를 받고 출발했다는 도쿄 히비야 공원 등지에서 재연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사흘 동안 취재한 후 든 생각은 이런 식으로 프랑스 파리 현지에 가서 새로운 것이 나올까 하는 것이었다. 동행한 이씨도 파리로 들어가는 데 부담을 크게 느꼈다. 혹시나 현지에서 체포되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지만 26년이 지난 현장을, 그것도 당시 안내조의 차만 타고 따라다녔던 현장에 갑자기 찾아간들 뭐나 나오겠느냐는 회의감이 컸다. 자기가 길안내자처럼 바로 현장을 짚어내서 재현해주면 좋겠지만 세월이 워낙 흘러서 여기저기 찾느라 헤매는 모습을 보이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양계장도 이사했거나 없어졌으면 비싼 항공료만 낭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기자와 PD수첩 취재팀은 당연한 일이라며 부담 갖지 말라고 설득했다. 그런 걱정을 덜기 위해 당초 국내에서 다른 PD가 파리로 이틀 먼저 건너가 파리 근교에 1979년부터 자리했던 양계장 실태와 위치를 모두 파악해 이씨 일행이 도착하면 일일이 데리고 찾아다니며 기억을 짜내보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처럼 PD 수첩 팀은 이미 일본에서부터 이씨가 파리에 가서 납치 현장 등을 쉽게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공감하고 안심시켰으나 나중에 방송을 내보낼 때는 태도가 180도 바뀌어 있었다. 현장을 쉽게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했다는 점을 두고 그의 주장을 믿을 수 없는 근거로 활용한 것이다. 

또 어쩐 일인지 파리로 떠나기 전 PD수첩 팀의 취재 방향은 바뀌어 있었다. 다른 취재진이 국내에서 들어가 먼저 준비하는 대신 일본 취재 일행이 곧장 파리로 건너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기자는 이런 방식이라면 파리에 가서도 드라마 찍듯이 상황 재현 연출 모습만 찍고 돌아오는 길밖에 없으리라고 판단했다. 

"다시는 프랑스에 발디딜 일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26년이나 지나 눈에 보이는 성과도 내지 못할 텐데 파리행을 왜 고집하느냐’며 주저하는 이씨를 설득하는 일은 기자의 몫이었다. 일본으로 간 지 나흘째되던 날 아침, 나리타 공항을 출발한 취재진은 프랑스 현지 시각으로 4월29일 목요일 밤 파리에 도착했다.

이씨는 “그 작업을 마친 이후 죽을 때까지 프랑스에 발디딜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26년 만에 이렇게 찾아와 마음이 착잡하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이어 파리 중심가 개선문 일대를 지날 때는 파리 시가지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26년 전 거사를 위해 그와 그의 후배 곽○○ 씨가 잠입해 들어가 안내원이 마련해 주어 묵었다는 허름한 호텔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당시 그 안에서 사다준 빵과 주스 등으로만 사흘을 버티며 공작을 완수하고 철수했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그 후로 빵은 맛이 없어 못먹게 되었다는 회고도 했다.

파리 주재 한국 사람들 눈에 띌까 봐 한국인 식당은 고사하고 일반 프랑스 식당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호텔에서 숨어 지냈다는 그들에게 PD 수첩 팀은 당시의 호텔 위치를 묻고는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이를 김형욱 제거 주장을 못믿는다는 근거로 나중에 방송했다.

 

도착한 지 이틀 뒤에 파리를 떠나야 했으므로 파리에서의 취재 시간은 불과 하루 반 정도였다. 이런 촉박한 일정에 어떻게 양계장을 찾아다니느냐고 묻자 PD수첩팀은 현지 VJ를 시켜 파리 근교 양계장 한두군데와 분쇄기 모습을 찍어두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씨를 대동해 양계장들을 하나하나 방문하며 기억을 떠올리도록 하겠다던 당초 합의 사항은 뒷전으로 간 채 일방적으로 그림 만들기에 나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튿날 파리 취재는 김형욱씨가 실종된 10월7일 오후 7시쯤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르그랑세르클 카지노 근처에서 납치 현장을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거사 당시 이씨는 카지노로 추정되는 쪽으로부터 걸어서 레스토랑으로 들어오는 김형욱을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안내원의 지시로 최지희씨로 기억하는 배우가 탄 차 바로 뒷차에서 문을 연 채 기다리다가 “여자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순간적으로 팔을 꺾어 마취를 시킨 뒤 차에 태워 납치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카지노 내부 시설은 옮겨가고 다른 건물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 앞 레스토랑에서 이씨는 확실하게 “이곳은 아니야”라고 말했다.

앞뒤가 훤히 트여 있어서 그런 장소를 택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현지 운전사의 안내를 받아 지도를 보고 이곳저곳 도보로 5분 이내 거리를 찾아다니던 이씨는 당시 자기가 납치했던 장소와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곳으로 두 군데 정도를 골랐다. 이를 PD수첩 팀은 보기에 따라 현장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찍었다. 하지만 26년 전 안내인의 차량을 타고 납치 현장에 도착했다는 그가 아무 주저 없이 길을 찾아내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당초 무리였다.

마침 한국 특전사 출신으로 파리 외인부대를 거쳐 영주권을 얻었다는 취재 차량 운전기사는 현장에서 “만일 이선생이 곧바로 걸어가 ‘여기다’라고 납치 현장을 찍었다면 저 사람 거짓말인것 같다고 생각했을 텐데 이리저리 다니며 26년 전 납치 장소의 분위기를 찾아내려는 모습을 보니 그 대목은 믿음이 간다”라고 말했다.

파리 현지 취재 사전 준비 전혀 안 되어 있었다


납치 현장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확보한 뒤 재현은 다음날 오전으로 미루고 곧바로 파리 서쪽으로 차를 달렸다. 양계장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무작정 서북 방향으로 추정되는 4~5km 지점을 찾았다. 가까스로 양계장 하나를 찾았지만 소규모인 데다 오래된 민가 가운데 있어 이씨가 묘사한 장소와는 전혀 달랐다.

이씨는 여기는 절대 아니라며 더 외곽으로 가서 옛 양계장 흔적을 찾아보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1979년 파리 근교의 양계장 분포도와 위치를 확보해둔 사람이 없었다. 당초 약속과 달리 사전 취재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현지에서 고용한 20대 여성 코디네이터는 그제서야 이곳저곳으로 전화를 돌렸다. 프랑스 양계업자들의 모임은 파리에서 350km 떨어진 지방 도시에 있다며 더 이상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기자는 코디를 무안하리만치 닦달했다.

당장 1979년 당시 파리 외곽에 양계장이 몇 개가 있었으며 그 장소가 어디인지를 조사해 달라고 했다. 양계협회가 지방에 있다면 파리나 근교 시`도 지회 주소를 물어 찾아야 할 것 아니냐며 따지고 들자 코디는 한시간 이상 전화를 돌리다가 1979년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파리 외곽 양계장이 자리한 일곱 곳의 지명을 적어 넘겨주었다.

 

그러나 주소와 전화번호는 더 이상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미 오후로 접어들어가는 시각인 데다 다음날이 휴일인 주말이므로 양계장을 하나하나 찾아서 이씨에게 기억을 더듬게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자 PD수첩 팀은 ‘시사저널 기사에 파리 북서쪽 4~5km라고 나와서 그곳만 찾으려 했다’라며 반박했다.

설령 그렇게 검증한다 하더라도 26년 전 파리 외곽과 현재의 외곽은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을 텐데 그 기점을 어디로 잡느냐 하는 점도 고려할 문제였다. 안내자는 “파리시 외곽이 점점 주거지로 변하면서 옛날 가까운 거리에 있던 큰 양계장은 대부분 20km 밖으로 이동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제 방송을 위해서라면 분쇄기를 연출해야 하는데, 찾을 곳이라곤 사료 공장밖에 없었다. 사료 공장에 찾아가서 이씨와 분쇄기 연출을 하려는 PD수첩 팀에게 기자는 어떻게든 대규모 양계장 한곳은 방문해 두 눈으로 확인해보자고 우겼다. 결국 이날 오후 늦게 파리 동남 방향으로 70km쯤 떨어진 한적한 농촌에서 양계장을 찾아냈다. 이씨가 김형욱을 처치했다고 주장한 현장과는 전혀 동떨어진 장소였지만 카메라에 담을 그림(닭과 현대식 분쇄기, 혼합기 등)들이 있어서 그곳에서 재현을 했다.

 한가지 웃지못할 사실은 이번 동행 취재팀이 프랑스 양계장을 찾아다니면서 계란한개도 구경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암살조장이라는 이씨는 79년 당시 대규모 산란계 양계장에서 김형욱씨를 처치했다고 주장했다. 계란 껍질을 단단하게 하기 위한 칼슘 보충용으로 뼈와 조개껍대기를 가루로 만드는 강력한 분쇄기를 사용하는 양계장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이번 취재 기간에 우리는 그런 산란계 양계장을 구경하지 못했했을 뿐 아니라 프랑스에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고 돌아왔다. 그만큼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현장 검증 준비가 전혀 안된 취재였던 셈이다.

파리 시가지에서 70km 떨어진 육계용 양계장을 방문했지만 조잡한 모양의 분쇄기가 워낙 큰 데다 옥수수 등 곡물을 가는 롤러밀 형태여서 이씨가 이용했다고 주장했던 커터 절단기 또는 중대형 햄머밀 형태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 앞에서 간단히 연출을 하고 밤이 되어서야 파리로 되돌아왔다.

이날 밤 기자는 일행에게 파리에 와서 확인하고자 했던 양계장을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철수하기 때문에 이번 취재는 일본 도쿄를 포함해 전과정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PD수첩 취재팀에게는 우리가 지명만 찾아낸 일곱 곳의 양계장은 이 다음에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 넘겨주자고 말했다.

특수 공작원 이씨, "귀국하면 내 발로 국정원을 찾아가겠다"

센에 마르스, 이블린, 오드센, 센드 상드니, 발드 마르느, 에소느, 발두아즈 등이다. 아울러 코디네이터의 주소와 연락처를 따로 받아 서울에 와서 추가로 파리 근교 양계장의 위치 및 연혁 정보, 사용하는 분쇄기의 시대별 크기와 변천 정보 등을 요청할 테니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역시 국정원 과거사위에 넘길 계획이었다. 이날 밤 나는 이씨와 한방에서 파리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왜 그렇게 납치 장소와 양계장 가는 길이 기억이 잘 안나느냐고 물었다.

“당신이라면 27년 전에 생전 처음 가본 곳을, 그것도 안내자의 차를 타고 따라간 곳을 다 기억하겠느냐. 내가 비싼 돈 들여 파리까지 와서 방송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거짓말을 하려고 했다면 그럴듯한 곳에서 ‘여기였다’라고 얼마든지 말했을 것이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그에게 이번 취재는 실패했기 때문에 PD 수첩 팀에서도 결국 국정원이나 과거사위원회와 같은 국가기관이 나서서 조사를 벌이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돌아가면 PD수첩에서 방송을 한 뒤 나랑 함께 납치에 가담했던 후배 곽○○을 찾아내 국정원에 내 발로 들어가 현장 안내조까지 찾아내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곽씨가 캐나다에서 죽었다고 말해왔던 이씨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밤 기자에게 처음으로 곽씨와 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둘러댔다고 털어놓았다. 

 이튿날인 토요일 오전 귀국하기에 앞서 납치 현장 재현 드라마를 찍었다. 나는 김형욱이 나타나는 것을 알려주는 안내자 겸 기사 역을 맡았다. 그것으로 사실상 파리 취재는 끝났다. 귀국하는 길에 이씨는 인천공항에서 일본 오사카에 들러 친척집에서 며칠 머무르다 방송이 나간 뒤 돌아오겠다고 해 헤어졌다. 그때 카메라가 마지막 장면을 찍자며 그를 붙잡았다.

“이번 해외 취재를 통해 우리는 김형욱씨의 프랑스 양계장 살해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난데없는 PD의 멘트에 이씨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믿음의 문제인데, 같이 다녀놓고도 그렇게 못믿겠다면 어떻게 하겠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환승장으로 떠났다.

농촌진흥청 관계자 “분쇄기로 살인 가능”

기자 역시 PD의 난데 없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이번처럼 부실하게 취재하고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 의아했다.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느냐고 묻자  PD는 “서울에서 다른 PD가 1980년대에 유럽에서 유학한 농기계 전문가를 만났는데 양계장 분쇄기를 이용한 살인이 이해가 안된다는 멘트를 땄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전문가라는 사람의 부정적 멘트를 딴 뒤 파리 호텔에서 코디를 통해 두 사람의 프랑스 양계업자에게 다시 전화해 분쇄기를 통한 살인이 어렵다는 주장을 추가로 확보했다는 것이다.

기자는 서울로 돌아와 방송 전까지 PD수첩 팀에게 우리가 6박7일간 겪은 모든 과정과 절차에 비쳐 보았을 때 그런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데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 서울에서 그런 결론을 내려놓고 꿰맞추려고 우리를 이용한 것이 아니냐고 항의했다. 

 만일 PD 수첩 팀이 처음부터 자기네 독자적인 방향으로 취재한다고 사전에 밝혔더라면 스스로의 능력대로 취재하도록 맡겼을텐데 시사저널의 모든 취재 자료는 그들에게 넘겨준 뒤였다.  그 안에는 그가 중정 특수공작원이라는 증거 및 각종 위장 간첩활동을 벌인 내역,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인터뷰 녹음테이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시사저널로서는 언론사간 신의의 원칙을 기준으로 PD 수첩 팀을 대했다.  그러나 취재 과정과 보도 과정에서  PD수첩 측이 시사저널에 보여준  모습은 언론 매체 사이의 동업자 윤리에도 상당한 문제를 남길 만한 것이었다.   

 이후 기자는 PD 수첩 팀이 대략 어떤 방향으로 방송할지는 짐작했지만 적어도 ‘현장 철저 검증’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이고 김형욱 양계장 암살 주장이 허위라고 단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누가 보더라도 파리 경시청을 찾아 양계장 분쇄기를 이용한 살인 범죄 통계를 찾아낸다든지, 프랑스에서 역사가 오랜 축산용 공작 기계 제작소를 찾아가 사료 분쇄기의 유형과 역사, 기능 등에 대해 직접 찾아보는 등 보강 취재가 필요했는데 그처럼 ‘용감하게’ 결론을 내릴 줄은 짐작도 못했던 것이다.

당초 5월10일 방송 예정이던 PD수첩은 경쟁 프로그램인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5월7일 토요일 밤 김형욱 사건을 방영하려 한다는 정보를 얻은 뒤 무리하게 5월3일로 방송 일정을 1주일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들이 진행하는 같은 문화방송의 '암니옴니'  프로그램이 이 문제를 앞서 다룬 것도 PD수첩 팀에게는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암니옴니 취재 기자들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기자정신으로 이씨를 직접 찾아내 만나면서 인터뷰한 내용과 방증 취재를 곁들여 보도했다. 양계장 암살 주장에 대해 시사저널 보도가 일부 신빙성이 있다며 국정원이 더 이상 조사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나서라고 촉구하는 방송을 우리가 파리에 있을 때인 4월29일에 내보냈던 것이다.

5월3일 방영된 PD수첩은 이씨와 동행해 철저히 현장 검증을 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국내외에서 몇몇 축산연구가나 업자들의 말만 듣고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여기에 여배우 최지희씨가 제시한 일기 형식의 알리바이, 암살 실행조장 이씨가 파리에서 납치 현장을 단번에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점, 이씨가 거사 전 묵은 호텔을 기억하지 못한 점 등을 들어 양계장 살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또 요즘 축산 농가에서 널리 쓰이는 곡물 사료 분쇄기인 롤러밀과 햄머밀을 거론하며 이런 기계로는 사람 분쇄가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이씨는 자기가 사용한 분쇄기는 안에 칼날들이 달린 대형 믹서기처럼 생겼다고 주장했었다. 이것은 커트 절단기를 말한다. 이 종류도 사료용 곡물 분쇄기의 일종이지만 어쩐 일인지 PD수첩 팀은 종류는 설명에서 뺐다.

조개껍질 등을 가는 분쇄기인 햄머밀도 무조건 동물 시체 분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농촌진흥청 축산기계 연구실 관계자는 “회전식 햄머밀도 30마력 정도의 고속으로 돌아가는 큰 것일 경우 동물 시체를 부술 수 있다. 큰 게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살인도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견해가 다른 전문가도 있음을 기자는 확인할 수 있었다.

양계장 살해는 거짓이라고 단정한 주장의 문제점은 이씨가 양계장에서 김형욱을 암살했다고 주장하는 1979년 당시 그런 커트 절단기나 큰 햄머밀을 사용한 파리 근처 양계장이 과연 어디에 있었는지 등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왜 갑자기 공작원 이씨를 만나려 했을까? 

물론 PD수첩 취재팀으로서는 국내외 축산 전문가의 말을 통해 이씨의 양계장 살해설을 믿기에는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기자 역시 현장까지 갔지만 의문만 잔뜩 안고 돌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취재 기간이 짧고, 확인해야 할 핵심 사실에 충분히 접근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 취재팀은 이씨가 주장한 산란계 양계장에 대한 접근은 고사하고 프랑스 안에서 계란 구경조차 못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최지희씨의 일기장도 중요한 자료임에는 틀림없지만 확실히 하려면 당시 출입국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PD수첩 팀은 이번에 그 작업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돌아왔다. 암살조장 이씨의 경우도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당시의 도쿄- 텔아비브 간  출입국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를 확인해보려는 작업도 실패하고 돌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씨의 양계장 살해 주장이 거짓으로 확인되었다고 성급히 발표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기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파리 현지를 함께 갔던 담당 PD는 “취재 결과 그런 확신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기자는 “취재 결과 국가적인 차원의 조사 없이는 이씨 주장에 대한 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씨의 특수공작 동료인 최○식씨에게 PD수첩을 본 뒤 소감을 묻자 그는 “방송은 저렇게 나와도 그 친구가 김형욱씨를 꼭 제거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삼촌 이씨와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현재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 국사 교사로 재직하는 생질 성○○씨(45)도 “방송은 저렇게 해도 삼촌이 저지른 일이 분명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한 가지 석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국정원에서는 특수공작원 이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 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의 취재가 진행되는 동안 국정원은 이씨의 북파 특수공작 동료였던 최O식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씨를 황급히 찾았다고 한다. 최씨는 “이씨에게 보상해 주려고 하는데 만날 길이 없으니 빨리 연락하라고 전해달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5월5일 일본에 머무르던 이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이 어떻게 나왔느냐고 물었다. “PD수첩에서 당신이 거짓말을 한 것으로 최종 확인되었다고 방송했다”라고 알려주자 이렇게 말했다. “크게 실망했다. PD 수첩은 나를 바보 거짓말쟁이로 국민에게 망신을 시켰다. 이제는 내 명예를 위해 김형욱 제거 작업을 함께 실행한 곽후배를 만나 진상을 밝히는 수밖에 없다.”

PD 수첩 팀이 일방적으로 내린 결론은 그 취재 과정과 절차 등 모든 문제를 짚어볼 때 이 사건의 진실이라고  단정하기에 불충분하고, 바람직한 보도 방식이라고도 보기 어렵다. 이제 중정 특수공작원 이씨의 김형욱 암살 현장 실행 주장의 진위 여부는 국정원이나 새로 출발하는 과거사위원회에서 제대로 밝혀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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