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들려거든 뱃심부터 키워라?
  • 장영희 전문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5.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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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센터에 접수된 보험 민원은 1만6천9백건에 달했다. 2003년에 비해 21.3%가 늘었고 1999년에 비해서는 두 배나 폭증했다. 또 다른 피해 구제 기관인 한국소비자보호원에도 지난해 7백85건의 분쟁 민원이 접수되었다(총 보험 상담 민원은 9천6백14건).

두 기관의 접수 건수가 두배 가까이 차이나는 것은 보험 계약자들이 모든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민원을 처리하는 소비자보호원보다 금융감독원이 전문 기관이라고 여기는 탓이지만, 분쟁 유형은 일치했다.

보험금액 산정이나 지급 범위를 둘러싼 다툼이 많았던 것이다. 왜 유독 보험 상품은 고객과 회사가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일이 많은 것일까. 지난 한 해 소비자보호원 창구에 접수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그 이유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보험회사는 만기환급금이 발생하거나 사고로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해도 가급적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 하거나 감액하려는 경향이 있다. 서울 아현동에 사는 운전 경력 30년의 택시기사 심동식씨(60)는 지난 2월 집 주차장에서 후진하다가 밖에서 기다리던 부인을 치는 사고를 냈다. 차가 돌연 급발진했고 브레이크도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리와 골반을 다친 부인을 입원시킨 후 심씨는 현대해상화재보험에 사고 사실을 알리고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부인이 ‘타인’ 이 아니어서 ‘자기신체사고’(자손) 보상밖에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뭔가 억울해 심씨는 소비자보호원을 찾았고 이들의 조력으로 책임 보험금(대인배상 Ⅰ)까지 받아냈다.  소비자보호원이 가족도 운행자(자신을 위해 운전)나 운전자(타인을 위해 운전)가 아닌 경우 타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1995년의 판례 등을 근거로 보험사를 제압했던 것이다.

민원 제기하자 그제서야 전액 지급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 아무개씨는 2002년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삼성생명에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거절당했다. 1999년에 김씨가 가입한 ‘무배당 여성시대 건강보험’ 약관에 갑상선암이 갑상선 질병 코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모집인이 김씨에게 보여준 안내장에는 갑상선 질환으로, 보험증권에는 ‘자세한 질병명은 약관상 질병분류표를 참조하라’고 되어 있었다. 물론 갑상선과 관련된 질병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 약관에는 갑상선암이 없었다. 하지만 소비자 처지에서는 암이 질병이 아니냐는 상식적상식적인 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처럼 유사시에 약관이라는 보호막에 숨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숨기려는 보험사와 상대하려면 상품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다. 인천에 사는 김 아무개씨는 자기 권리를 주장한 ‘똑똑한’ 소비자다. 김씨는 지난해 4월 어머니가 오토바이에 부딪혀 추간판탈출증(디스크) 진단을 받자 올 1월 어머니가 10년 전에 가입한 ‘차차차 교통보험’으로 교보생명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조사관이 나와 몇 가지를 묻더니 며칠 후 보험사에서 사고로 인한 인과관계, 다시 말해 사고기여도를 50%밖에 인정할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이미 아픈 증상이 있었다는 이른바 기왕증이 미친 영향이 50%라는 것이다. 기가 막혔던 김씨는 생명보험은 정액 보험이어서 보험금액이 흥정거리가 될 수 없으며, 사고에 해당하는 이상 기왕증 여부와 관계없이 전액 지급해야 한다는 판례와 약관을 들며 조목조목 따졌다.

김씨는 소비자보호원과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는 양동 작전도 폈다. 그러자 보험사가 전액 지급하겠으니 제발 민원을 취하해 달라고 매달렸다. 김씨는 “보험금을 받으려면 기싸움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소비자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떠보고 잘 알지 못하면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처리하더라”며, 일단 민원부터 제기하는 것도 상대방을 압박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사실 기왕증과 사고 인정 여부는 보험금 산정과 지급 범위를 둘러싼 다툼의 단골 메뉴다. 서울 공릉동에 사는 박순영씨는 2003년 남동생이 축구를 하다가 사망하자 교보생명에 재해사망보험금을 청구했다. 1999년 동생이 ‘무한농연회원 단체보장보험’에 가입했고 보험료도 꼬박꼬박 냈지만, 박씨는 거절당했다.

교보생명은 박씨의 동생이 ‘체질적 요인에 의해 사망해 재해 사고로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박씨 동생이 축구 경기 도중, 다른 선수나 돌 따위에 부딪치지 않고 혼자 갑자기 푹 쓰러졌으므로 급격성·우연성·외래성이라는 사고의 3원칙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질병이나 체질 요인 같은 내부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외래 사고로 보아야 한다는, 동생과 비슷한 건을 다룬 판례를 찾아내 맞섰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박씨는 지금도 축구를 하던 날 멀쩡했던 동생이 죽은 것은 사고라고 굳게 믿고 있다.

보험 분쟁은 대부분 만기보험금을 받거나 사고가 났을 때 집중적으로 불거지지만, 사실 보험 모집 단계부터 잉태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실적을 올리려는 보험사와 모집인이 암묵적으로 결합해 계약자에게 중요 계약 내용을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소비자에게 유리한 내용만 알려주는 불완전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 삼전동에 사는 정 아무개씨는 올 2월 소비자보호원에 피해 구제를 신청했다. 1998년 대한생명의 ‘팡팡플러스 저축보험’에 가입해 월 30만원 가까운 보험료를 내며 계약을 유지해왔는데, 올 1월 보험사에 2007년 만기환급금을 묻자 3천8백만원만 지급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최저 보증금액이 10년 만기시 4천6백29만원으로 되어 있는 가입 당시 안내장과는 사뭇 달랐다.

발끈한 정씨는 따졌지만 대한생명측은 약관에 따라 만기환급금을 지급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건은 소비자보호원이 ‘모집 과정에서 회사가 만든 안내장 등이 약관 내용과 다른 경우에는 계약자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본다’는 판례를 동원해 정씨의 판전승으로 끝났다.

감언이설 모집·애매한 약관 등 ‘지뢰’ 수두룩
 

하지만 약관에 따른다는 보험사와, 상품 내용을 과대 포장해 소비자를 오인케 한 보험사에 책임이 있다는 계약자 사이의 다툼이 사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최근 집단 소송으로 번진 우체국 알뜰적립보험과 1980년대 6개 생명보험사가 팔았던 백수보험이 좋은 예다. 알뜰적립보험은 사망·장해 등 보장성이 가미된 저축성보험으로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우체국이 팔았다.

문제는 실제 이자가 가입 당시 우체국마다 자체 제작한 안내장에 쓰여진 예상 이자(4천3백90만원)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계약자 사이에 알려지면서 소송으로 비화했다.

2000년 우체국이 이 상품을 집중적으로 팔아 올해 5년 만기가 되는 계약이 94.5%인 8만6천5백15건에 달한다. 실제 이자가 이렇게 줄어든 것은 이 상품이 변동 금리 상품이고 그동안 금리가 줄곧 떨어졌기 때문이다.

보험소비자협회 김미숙 대표는 “변동 금리 상품이라는 사실을 아예 적시하지 않은 안내장도 있을뿐더러, 적시한 경우도 조그만 글씨로 표기되어 있고, 무엇보다 우체국 보험관리인들이 마치 9.5%의 확정 금리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과대 선전했다”라고 주장했다. 이 소송을 맡은 덕수법무법인 송호창 변호사는 우체국이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집중 제기할 계획이다.

 
백수보험 역시 1980년에서 1982년 당시 보험 계약자가 55세 혹은 60세가 될 때 생활자금으로 매년 1천1백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장에 예시해 분쟁의 소지를 남기고 있다. 이 소송을 맡은 강형구 변호사는 확정도 아닌데 ‘확정 배당금’이라는 표현을 써서 소비자를 현혹한 점을 집중 부각하겠다고 말했다.

보험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를 보면 모집인 문제가 여러 갈래로 걸린다. 소비자는 특정 보험회사의 상품을 선택하지만, 대면하는 이는 모집인이다. 그런데 소비자와 다툼이 일어나면 보험사는 모집인은 청약 체결과 보험료 수령 권한이 없는 단순 심부름꾼이며 직원도 아니라고 나몰라라 한다. 심지어 모집인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유도한다.

전남 순천시에 사는 이 아무개씨는 2002년 10월 알리안츠제일생명 ‘무배당 슈퍼맨건강보험’에 가입해 계약을 유지하던 중 피보험자인 남편이 죽상경화성 심장병·오래된 심근경색으로 진단받아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급성이 아닌 오래된 심근경색이어서 지급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근경색이면 보상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이씨는 이것도 불만인데 보험사로부터 강제 해지까지 당했다. 과거 당뇨로 치료한 사실을 알리지 않아 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계약 전에 당뇨 병력을 모집인에게 알렸으나 고지하지 말라고 해서 청약서에 기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 송태회 분쟁조정실장은 “간단한 메모 쪽지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소비자 쪽에 유리하게 합의를 도출해 왔지만, 말만 갖고 양측이 다툴 때는 난감하다. 입증이 안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계약자 말이 사실이더라도 설계사들이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정하면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사가 설계사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장학민 보험팀장은 “보험회사가 모집 단계부터 계약 체결, 계약 유지,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하는 단계 등 모든 과정에서 분쟁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보험사는 모집인의 실체를 부정하면서도 사실상 모집인을 활용한 실적 위주 영업 전략으로 불완전 판매를 용인해 왔다. 불량 고객이면 청약을 거절할 권리가 있는데도 일단 받아놓고 문제가 되면 모집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약관이라는 보호막 속에 숨는 것이다.

 
보험회사의 피신처라는 약관의 경우도 문제가 적지 않다. 우선 용어가 어렵고 복잡해 일반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애매한 경우도 있다. 생명보험 약관에 ‘질병 또는 체질적 요인이 있는 자로서 경미한 외부적 요인은 우발적인 외래 사고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경미한’이라는 표현을 보험사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뿐더러 결국 기왕증을 들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감액하는 구실이 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퇴행성 질환을 앓게 되는데, 이것도 기왕증으로 보면 기왕증이다. 나이가 들수록 보험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보험사가 상품을 개발할 때 사람이 어느 정도의 기왕증이나 체질적 요인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재해율이나 사망률 같은 수리적·통계적 자료를 감안해 보험료를 책정하는 것이므로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보험에 대한 불신만 부를 뿐이라는 상당수 보험 전문가들의 견해가 보험사 지급 창구에서는 별로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든 보험금을 안 주거나 덜 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가령 손가락이 골절이 아니라 절단되어 보험금을 줄 수 없다거나 입원을 하지 않아 수술비를 줄 수 없다는 것이 사소하지만 좋은 예다.

잘 드는 칼로 순식간에 자르지 않는 다음에야 골절이 동반되지 않는 절단이 있을 수 없고, 의료 기술이 발달해 입원하지 않는 수술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징집병에게 직업 변경을 하지 않았다며 통지 의무 위반을 들어 새마을금고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경우도 억지에 가깝다. 게다가 이 건은 축구를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군인이라는 직업과는 아무런 인과 관계도 없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행태도 여전하다. 상품이 개발되어 손해가 나면 가차없이 판매를 중단하고 가입자에게 계약 갱신을 해주지 않는다. 해약 후 다른 상품에 가입하도록 강권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생보사들이 판매한 요실금 보험과 AIG손해보험이 지난해 4월부터 판매한 베스트입원비상해보험이 그랬다.

경영이 악화해 불가피한 고육지책이었으면 그나마 정상을 참작할 여지가 있지만, 현재 생명보험사 22개, 손해보험사 28개 등 총 50개 사(외국계 국내 지점·온라인 자동차보험 등 포함) 가운데 적자 내는 회사는 단 한 군데도 없다. 

‘보험 불신→경영 악화’ 악순환 우려

보험 분쟁의 책임을 전적으로 보험회사에 돌릴 수는 없다. 보험은 보험회사와 가입자 간의 계약이다. 계약 어느 일방이 계약 내용에 대해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다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보험회사들이 민원 예방과 처리에 나름으로 노력하는 것도 사실이다. 상당수 보험회사가 고객만족팀·CS개선팀 따위 민원을 처리하는 조직을 꾸리고 있으며, 금융감독원의 경영 평가를 의식해서라도 민원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 대형 보험사 임원은 말했다.

사실 금감원의 감독을 받는 보험사들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한 보험 전문가는 “농협과 새마을금고,  개인택시공제회, 전세버스공제회 등이 팔고 있는 유사 보험은 더욱 문제다. 소비자 보호는 안중에도 없는 이 유사 보험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감독 사각 지대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외국과 달리 한국 보험사들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 지나치게 까다롭게 구는 이유로 빈발하는 '보험 사기'를 드는 보험사 임원도 적지 않다. 지난해 1만6천5백13건의 보험 사기가 적발되었는데, 2003년보다 무려 113%나 폭증했다. 금액으로는 1천3백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보험 사기라는 범죄 행위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지 선의의 피해자에게 불똥이 튀게 하는 것은 올바른 대처가 될 수 없다. 벌써부터 보험금 지급에 인색한 보험회사에 대해 보험 사기를 패러디해 ‘보험회사 사기’라고 비난하는 피해자도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홍승희씨 사례를 보면 보험사가 분쟁 예방과 처리에 왜 노력해야 하는가를 잘 드러낸다. 홍씨는 모집인에게 1천만원을 횡령당하고 2년에 걸쳐 호소했어도 아직도 2백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것도 교보생명측이 민원을 취하할 요량으로 두 번이나 지급을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아 죄질이 나쁜 경우다. 홍씨는 “교보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쳐진다. 교보문고에도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이미지만 나빠지는 것이 아니다. 보험사에 당한, 혹은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보험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보험사 경영을 악화시키는 부메랑이 된다. 결국 보험 산업 전반의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홍주 교수(성균관대·보험문화연구소장)는 보험 분쟁을 줄이기 위해 분쟁의 시시비비를 가릴 일관된 법규를 마련하고, 무리한 영업 활동을 하지 않는 등 윤리 경영을 해야 하며, 소비자 교육을 강화하는 삼박자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보험 분쟁을 확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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