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안정보장’이 핵심 열쇠다
  • 추미애(전민주당 국회의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5.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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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전 의원 특별 기고 ‘워싱턴에서 찾은 북핵 문제 해법’

 
 추미애 전 민주당 의원이 ‘워싱턴에서 바라본 북핵 문제 해법’을 특별 기고했다. 지난해 8월부터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 방문 교수(visiting scholar)로 가 있는 추 전의원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의 대외정책 및 남북관계를 연구하는 한편,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간 시각 차이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2월4일에는 한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 강연을 한 바 있고, 오는 5월27일에는 헤리티지 재단에서 20여명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6자 회담 복원 문제를 둘러싸고 원탁 토론을 벌인다. 이 원고는 이 토론회에서 미국측 전문가들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 개발의 일환으로 작성된 것이다.(편집자 주)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다자 기구인 6자 회담 복원을 위한 전제 조건은 다음 두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6자 회담에서는 어디까지나 ‘핵폐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6자는 한반도에 대한 군사전략적 이해관계와 이를 추구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핵폐기’만이 공통 분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전제 정치의 종식’ ‘폭정의 전초기지’ 등 북한 체제의 부정을 시사하는 용어나 북한인권법 제정 등으로 대북 정책의 목표가 핵폐기인지 정권 교체인지 의문을 증가시켜 문제를 수렴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

둘째, 북한이 핵 보유국임을 스스로 선언한 이상 지금까지의 협상 전략과 방법,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요컨대 미국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 원칙을 관철시키려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할 필요가 있고 각자 권리와 책임에 기초한 협상을 해야 한다.

미국은 2002년 11월 이래로 고농축 우라늄핵개발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전면 사찰과 핵시설 전면 공개를 주장해왔다. 고농축 우라늄 제조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는 북·미 간에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고농축 우라늄 제조 의혹 해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으로서 가장 우선적인 것이 안전 보장이라 하겠다. 

 
왜냐 하면 고농축 우라늄 제조는 소규모 지하시설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의 성실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오랫동안 사찰을 통해 검증해야 비로소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고농축 우라늄에 대한 검증은 사실상 북한을 무장해제한 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안전 보장을 획득하고 미국이 그 약속을 되물리지 않는다는 보장이나 신뢰가 있기 전에는 군사 시설의 공개에 해당하는 사찰과 검증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보상은 ‘시혜’ 아닌 ‘의무’

북한에 대한 신뢰 보장과 동시에 유사시 안전 보장 철회 사유를 명시하여 북한에 대한 제재 수단을 확보하고 6자 회담 참가국이 공동으로 철회 사유 발생 여부를 판정케 함으로써 공정성도 담보해야 할 것이다.   

안전 보장에는 이른바 북한이 주장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포기가 포함되어야 한다. 북한이 성실하게 신고했다는 사실이 검증되어 신뢰할 만한 단계가 되면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 국가에서 해제함과 동시에 북·미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원래 NPT는 핵의 평화적 이용권을 양도 불가능한 권리로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핵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데는 그에 대한 보상이 제공되어야 한다. 핵폐기 협상이 시작되면 북한은 의혹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에너지 이용권(평화적 목적)도 금지 당하게 되므로 핵 전면 동결에 대한 상응 조치로 에너지 보상이 권리와 의무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즉 권리 포기에 대한 보상 의무가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 보상은 보상(報償 reward)이 아니라 보상(補償 compensation)이 되는 것이다. 관련국들은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핵폐기에 따른 권리와 의무에 기초해 협상에 임한다는 자세와 인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권리 포기에 따른 보상 의무와 어느 쪽이든 위반할 경우 책임이 따른다는 협상만이 구속력을 가지고 핵폐기 목표에 이를 수 있는 지속력을 가질 수 있다.

또한 권리와 의무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북·미 양자가 직접 접촉해야 하고 이를 통해서만이 종국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을 미국도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미국은 에너지 보상을 핵 폐기 조치에 상응하는 담보로 인식하고 에너지 보상 프로그램에 참가해 그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에너지 보상을 의무가 아니라 시혜적 성격의 지원으로 간주할 경우, 보상을 중단해도 의무 불이행에 대한 책임이 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자의적으로 중단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난번 제네바 합의의 허점이라 할 수 있다.

지난번 부시 미행정부가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은 할 수 없다며 중유 지원을 임의로 중단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맹점 때문이었다. 이제는 나쁜 행동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아닌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미국이 대북 에너지 보상을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인식하는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면 협상은 이루어질 수 없다. 북한도 핵을 협상 대상이 아니라 협박용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보상받을 수 없는 나쁜 행동이 될 뿐 아니라 국제 사회가 용납할 수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3차까지 진행된 6자 회담은 북·미 양자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입장 차이를 좁히기보다는 서로 간에 현저한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입장 차이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한·미 두 나라의 인식 공유는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한국이 북한판 마샬 플랜 제의와 같은 인센티브정책(이른바 당근 정책)을 핵포기와 연관지어 먼저 언급하는 것도 핵 협상을 권리와 의무의 시각으로 접근한 것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안전 보장이나 에너지 보상 등 이행 의무가 설정되고 위반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원칙을 먼저 거론해야 한다.

한국도 북·미 양측에 분명한 목소리 내야

대북 경제 지원은 핵 포기에 대한 보상 차원이 아니라 북한의 경제적 붕괴를 막는 것이 동북아 안정에 중요하다는 공감대를 대내외적으로 형성해 나가면서 별도의 시스템과 프로그램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한국은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한 상태에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위반한 북한에 대해 좀더 명확한 정책으로 선회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북·미 양쪽에 대해 구체적인 주장을 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핵 포기 의무와 의무 불이행시 북한이 져야 할 책임과, 반대의 경우 북한이 받을 수 있는 보상에 대해 언급하고, 미국을 포함해 보상 의무를 부담하는 쪽에 대해서는 위반시 책임 범위 등을 설정하는 주체로서 발언을 해야 한다. 이러한 주도적인 노력을 통해 한국은 ‘제2의 제네바합의’의 길을 여는 관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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