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생활 잘 하려면 드라마를 봐”
  • 고재열 기자 (scoosisapress.comkr)
  • 승인 2005.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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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드라마를 어떻게 보십니까? 대한민국 평균 여성 시청자 다섯 명을 불러 우리 드라마에 대한 ‘대하 수다’를 들었다.

 
그분이 오셨다. 매년 한두 번 치르곤 하는 ‘브라운관 홍역’ 말이다. <올인>(2003년) <대장금>(2003~2004년) <파리의 연인>(2004년)을 잇는 최신 바이러스는 바로 <내 이름은 김삼순>이다. 시청률 40회를 가뿐히 넘기며 국민 드라마에 등극한 <내 이름은 김삼순>은 숱한 화제를 낳으며 순항하고 있다.

스크린쿼터라는 복병을 물리치고 한국 영화가 아시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저력은 바로 관객의 힘이었다. 시네마키드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만족시키며 한국 영화와 관객은 함께 자랐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을까? 다분히 컬트적인 <내 이름은 김삼순>이 마니아 드라마가 아니라 국민 드라마가 된 것은 시청자의 눈높이가 높아져서가 아닐까?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특히 여성 시청자에게 ‘가상 백화점’ 구실을 한다. 고부간 갈등, 남편의 불륜, 혹은 삼각관계에 대해 지침을 주고 인테리어와 패션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은 물론 이제 요리의 철학까지 강의한다. 드라마에 웃고, 드라마에 웃는 ‘호모드라마쿠스’들은 요즘 드라마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대한민국의 ‘평균 시청자’ 김영미(33·전문 비서) 김정희(35·패션 칼럼니스트) 박성민(27·영어교사) 박성정(28·요리사) 황지희(30·드라마 전문 기자) 씨를 불러 우리 드라마에 대한 10부작 ‘대하 수다’를 들어보았다.

 
제1부. 삼순이 너마저도?
김정희(정); <내 이름은 삼순이>을 보면 여인들이 참 씩씩하다. 삼순이도 그렇고, 이혼한 언니도 그렇고, ‘일수를 살짝 놓으시는’ 엄마도 그렇고, 시어머니와 여비서까지 그렇게 씩씩할 수가 없다.  남자들이 무서워할 것 같다. 그런데 어젠 너무 ‘오버’였다. 머리채까지 붙잡고 싸우다니. 작가가 맛들인 것 같다. 작가가 너무 ‘업’ 돼서 그런가?
황지희(황); 일에 대한 삼순이의 애정이 점점 식어가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어제는 사표까지 냈는데, 본격적으로 사랑싸움만 하겠다는 것인지.
김영미(영); 어제부로 현빈도 싫어졌다. 
박성민(민); 현빈이 나약해졌다. 처음엔 나름으로 뭔가 있구나 싶어서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진짜 나약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어 싫어졌다.
영) 현빈이 갑자기 ‘찌질이’가 되었다. 
정)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제 현빈은 어딜 가도 욕을 먹는다. 시청자들도 삼순이파와 희진이파로 나뉘는 것 같다. 
영) 삼순이가 다니엘이랑 연결되는 것 아닌가? 원래 사각관계라는 게 그렇잖아. 
정) 그렇게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황) 여자들에게는 결혼 상대로 다니엘이 더 낫지 않나? 시어머니한테 시달리지도 않을테고.  정) 요새 인터넷에 삼순이 리스트가 떠돌아다닌다. 출생의 비밀과 전대의 원수, 삼각·사각·오각 관계로 모든 인물이 얽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보니 (<파리의 연인> 처럼) 꿈이었더라.
영) <눈사람>처럼 될까 봐 걱정이다. 이 작가 뒷심이 약한 것 같다. 어제부로 삼순이 포기했다. <부활> 본다. 엄태웅 연기가 압권이다. 폐인 취향의 드라마다. 그동안 안본 게 미안하더라. 

 
제2부. SBS는 ‘따라쟁이’
황) 방송국마다 드라마 맛이 조금씩 다르다.
영) 맞다. 방송국마다 질감 다르다. MBC가 낫다. KBS는 왠지 칙칙하고 SBS는 왠지 어설프다. <다모>의 이재규 PD를 좋아하는데 <패션70s>을 SBS에서 만들어서 안 본다.
민) 가족관계에 대한 건 KBS가, 의학 등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건 MBC가, 허무맹랑한 건 SBS가 잘 만드는 것 같다. 
황) SBS는 다른 방송사가 만들어놓은 트렌드를 따라 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단막극을 통해 자체 역량을 키우면 좋을 텐데, 그런 노력도 안 한다.
정) 방송사와 드라마의 궁합도 중요하다. <슬픈 연가>는 MBC랑 안 어울려서 망한 것 같다.
영) 그나저나 <패션70s>은 왜 그렇게 칙칙한가. HD 화면이 원래 그런 건가? 패션 드라마라면 화려하고 밝아야 하는데. 이혜영 보고 난 처음에 <남부군>인 줄 알았다.
민) 난 6·25 특집극인 줄 알았다.
영) 아역이 나았다. 드라마 성패는 1회를 보면 알 수 있다. 등장 인물 중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이 되면 볼 만하다.
황) 본격적으로 사각관계로 가더라. <패션70s>은 감정 이입이 되는 사람이 없다. 
민) <패션70s>은 등장 인물은 헷갈리는데 앞뒤 이야기는 대충 보인다. 
황) 사극처럼 자막이 나왔으면 좋겠다. 누가 누군지 좀 알게. 
정) 어떤 드라마는 중간에 봐도 앞뒤가 다 보인다. 누가 친딸이 아니고 누가 친아들이 아닌지 척보면 알 수 있다.
영) 아침 드라마들이 특히 그렇다.

 
제3부. 저주받은 걸작 드라마
민) <거짓말>이 좋았다. 나중에 다시 봤다. 음울하고 암울하지만 말의 힘이 좋았다. 노희경 작가는 마니아가 많다더라. 
영) 시대를 잘못 만났다.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정) <꽃보다 아름다워>도 좋았다. 난 보기만 하면 울었다.
영) 나는 드라마 볼 때 작가 보고 고른다. 내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다. 노희경·인정옥 작품이면 일단 본다.
정) 난 인정옥 파생 상품도 본다. <아일랜드> 네 주인공이 나오는 다른 드라마들도 다 챙겨 본다. ‘다모 폐인’들이 이런 증상이 심했다. 배우들이 가족같이 느껴져서 다 챙겨 본다고 하더라. 나도 그랬다.
영) 난 <네 멋대로 해라> 때 그랬다. 평생 안 해보던 짓도 해봤다. 드라마에 나온 정류장에 가서 편지를 남겼다. 가서 휴가 나오자마자 그곳에 찾아온 군인을 만났다.
황) 나도 <네멋대로 해라>가 좋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나 <발리에서 생긴 일>도 재밌었는데, 남자들이 소리 지르는 것이 싫었다.
영) 한번 장두령은 영원한 장두령이다. 하지원은 어디에 나와도 채옥이고, 이문식은 어디에 다시 나와도 여전히 마축지다.

 
제4부. 드라마는 혼자라서 좋다
황) 나이 든 사람이 파트너 없이 소비할 수 있는 유일한 문화 상품이다. 다른 건 전부 누구랑 같이 봐야 하지 않나.
민) 좋은 드라마는 보면 ‘저 중에 한 명은 나랑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같이 웃고 같이 운다. 못 만든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자기들끼리만 운다.
정) 삼순이 표현대로 한다면 ‘내 마음을 움직여 봐’ 정도 되겠다.
영) 삼순이는 첫눈에 내 얘기라고 생각했다.
황) 코르셋 벗는데 난 내 드라마라고 찜했다. 그 다음날 바로 친구들한테서 드라마 봤냐고 전화가 오더라.
정) 삼순이가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너무 굶은 거야’라고 말할 때 내 드라마라는 걸 직감했다.
영) 드라마를 보면 욕망을 대리 충족할 수 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하지원을 보면서 그랬다. ‘잘난 부잣집 남자 만나서 팔자 고치는 게 소원’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부인 앞에서 전화 걸어 남자와 약속 잡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꼈다.
민) 평상시에 자기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그런지 드라마의 격한 감정 표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인어아가씨>에서 장서희가 병을 던져서 깰 때, 혐오스러웠지만 통쾌했다.

제5부. 드라마는 사회생활 길잡이
정) 네멋폐인, 다모폐인, 발리러버, 불새리안, 파리지앤...이들의 공감대는 같은 팀을 좋아하는 공감대보다 더 크다. 이들이 옮겨가면서 인기 드라마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황) 사회 생활 잘 하려면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게 좋다.
정) 난 직업적으로 드라마를 봐야 한다. 어디서 협찬을 받았는지 보고 어떤 것이 유행할지 예상해야 한다. <패션70s>을 보고 실망했다. 주인공들이 ‘옷발’이 안 받는다.
민) 나는 아이들 교육에도 활용한다.
영)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 작가들 사회생활 안 해본 것 표가 난다. 사회생활 해본 작가가 쓴 <신입사원>은 달랐다. 
정) 드라마 작가에게는 상상력만큼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다.
황) <부모님전 상서>를 보면 발달장애 가족을 열심히 취재한 것이 보인다. 
민) 장애아로 인해 바람 나고 장애아로 인해 시어머니와 틀어지는 모습이 사실적이었다. 드라마를 보고 장애 가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황) 자존심 있는 작가라면 그런 부분에도 충실해야 한다.
영) 남의 인생을 쓰는 것인데, 당연하다. 
 

 
제6부. 살짝 막나가는 드라마가 좋다
황) 보통 첫사랑은 정신적인 사랑으로 그리는데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 현빈이 려원에게 ‘다시 살면 밤마다 덤빌려고’라고 말한다. 성관계를 전제하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첫사랑을 그리는 것과 달랐다. 마음에 들었다. 
정) 표현 수위가 높아졌다. 사람들 많은 카페에서 키스했다. 
민) 야하지도 않고 억지스럽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키스 참 예쁘게 하네’라고 말하더라.
패) 욕설도 많이 나온다. 웬지 현실감이 있어 좋았다.
영) <아일랜드>에서 김민정 대사에 ‘지랄’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처음엔 드라마에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낯설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정) 중견도 살짝 막나가는 캐릭터가 좋다. <귀엽거나 미치거나>의 김수미씨 너무 좋다. 중견이 살린 시트콤이다. 중견도 변해야 한다. 박근형씨는 언제나 아들 반대하는 가부장, 박정수씨는 부잣집 사모님, 선우은숙씨는 안타까운 모정을 보여주는 어머니, 김용림씨는 무서운 시어머니 역이었다.
민) 김수미씨는 대본 없이 하는 것 같더라. 자연스러웠다.
영) 시트콤 중에 시청률 제일 높다던데 왜 폐지하나. 그것도 사전 통보도 없이 했다든데, 뭔가? 악덕 기업주가 해고 통지 하듯이.

제7부. 다니엘이 좋아, 너무 좋아
영) 탤런트 중에 배종옥이 제일 좋은데, 주인공으로는 안 나온다. 주인공은 20대 남녀만 할 필요는 없을 텐데.
민) 나는 장동건이 좋다. 잘생기기만 하고 매력이 없었는데, 자기 안의 광기를 깨워냈다.
황) 여배우들도 자기 얼굴을 넘어서는 연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 그런 면에서 이나영이 좋은 사례다. 자신만의 분위기로 연기 영역을 새롭게 개척해냈다. 정) 요새 뜨는 부주인공 3인방이 다니엘 헤니·천정명·이천희라더라.
영) <파리의 연인>의 이동건과 비슷한 역이다. 여자들만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실제로는 그런 남자 드물다.
황) 집착으로 보이지 않아 좋다. 쿨하게 한다. 
정) 다니엘 찬가도 있다더라. 
민) 내가 영어 교사인데 다니엘 효과를 느낀다. 아이들한테 려원과 다니엘이 영어로 말하는 것이 인상 깊었던 것 같다. 발음을 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욕을 듣고 욕이 재밌게 들리면 욕을 하는데 영어를 들으니 영어를 하려고 한다.
영) 요새 드라마는 배우에게 맞춰서 캐릭터를 구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교포 출신 배우가 느니까 영어 장면도 많은 것 같다.
정) 주인공이 춤 잘 추면 나이트 장면 꼭 나오고 노래 잘하면 노래방 장면 꼭 나온다.
황) <신입사원> 작가는 에릭 장점을 살려주려고 에릭이 나온 오락 프로그램 다 봤다고 하더라. 그런 노력이 중요한 것 같다.

제8부. 이런 드라마, 절대로 안 본다
영) 고현정이 싫어서 <봄날> 안 봤다. 예고편 보니까 10년 세월을 거슬러오르려는 느낌이 들더라. 10년간 저렇게 피부 관리 하느라 무슨 인생을 배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임성헌·김수현 작가의 작품도 안 본다.
민) 김수현 작가의 작품은 주변 남성들이 싫어하더라. ‘저 사람 것은 너무 시끄러워. 왜 모든 것을 드러내서 갈등을 만드나’라고 비난한다.
황) 김수현 드라마를 보면 말 못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드라마에 여백이 없다. 
영) 임성헌 드라마는 얄미워서 싫다. 예전에는 욕하면서 봤는데 이제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다. 채널도 많고.
황) 이번에는 딸이 며느리가 된다더라.
영) 피고름을 짜서 대본을 쓴다는데 봐줘야 하지 않나.
정) 장서희나 김성택은 <인어아가씨>의 아우라가 너무 큰 것 같다.
황) 배우의 모든 것을 뽑아내는 작가라고 하더라. 다른 작품에 가서 힘들어한다.
정) 난 KBS 2TV 주말 드라마는 무엇이든 안 본다. 그 시간대에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영) 뒷북 드라마는 싫다. 컴백 아줌마 시리즈에서 <불량주부>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돌아온 싱글>은 심했다.
황) 난 김희선이 싫다. 10년 동안 주연했으면 연기가 좀 늘어주는 것이 예의 아닌가.
정) 난 윤석호 감독의 계절 시리즈가 싫다. 점점 낡아가는 느낌이다.
황) 이상하게 사극이 싫다. 옛날 옷 입고 나오면 무조건 싫다.
영) 마초적인 사극은 싫다. 남자들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얘기하는 걸 들으면 같이 숨 넘어갈 것 같다.

제9부. 드라마에 나오면 왠지 좋아 보여
정) 드라마 PPL(상품 간접 광고) 중에 <인어아가씨> 자개장이 제일 히트한 것 같다.
황) <인어아가씨>는 중장년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가 나보고 아리영 머리 하라고 하더라. 
정) 요새는 드라마 패션 따라 하는 전문 사이트도 있다. 화면 캡처해서 올리면 어느 브랜드 옷인지 알려준다. 무슨 드라마의 누구 스타일이라는 식으로 패션이 정리된다. 요즘은 <신입사원>의 한가인 스타일과 <내 이름은 김삼순>의 려원 스타일이 유행인 것 같다.
민) 한가인 때문에 여교사들 사이에 풀 스커트와 집시치마가 유행했다. 남교사들은 왜 단체로 속치마를 입고 다니느냐고 난리였다.
매) 연예인들도 자기 스타일 따라 입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황) 그래야 광고가 들어오니까.
정) <섹스 앤드 더 시티> 홈페이지 가 보면 시즌 별로 주인공이 입고 나온 옷 브랜드를 정리해 놓은 게 있다.
황) 요샌 별 걸 다 PPL한다. 네이버에 물어보라는 대사도 나오고, 곧 정부 정책도 한다더라. 현금영수증 쓰라고.
영) 그럼 어용 드라마 아냐?

제10부. 우리 나라 드라마가 제일 좋아
민) 일본 드라마를 가끔 보는데 우울해서 싫다.
정) 우리 드라마도 보기 바쁘다.
민) 웃기는 대목에서 따라 웃지 못한다. 바로 옆 나라인데 공감이 안된다는 것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
황) <프렌즈> 같은 미국 드라마를 볼 때는 잘 몰라도 그냥 넘어가는데, 일본 드라마는 왠지 꺼림칙하다.
정) 케이블TV 채널 돌리다 보면 일본 드라마나 중국 드라마를 가끔 보는데 안 멈춰진다.
영) 우리 드라마가 너무 재밌는데, 일본 드라마를 능가하는데 볼 필요 있겠나? 미국 드라마는 가끔 본다. 사전 제작 드라마여서 우리처럼 결말이 갑자기 바뀌지 않아 좋다. 드라마 홈페이지에 가보면 다양한 추론을 할 수 있도록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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