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 최강국 스코틀랜드의 비밀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5.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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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대학·기업·연구소들, 네트 워크 구축해 ‘세계 최고’ 달성…한국, 공동 연구 적극 나서야

 
그나라, 참 대단하다.’ 복제 양 돌리를 만들어내고, 배아·성체 줄기세포 연구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는 스코틀랜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 스코틀랜드는 생명공학 연구 분야에서 ‘선두권’ 소리를 듣는다. 그 나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영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무슨 생명공학 꽃이 피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스코틀랜드 생명과학의 역사는 길고, 화려하다. 15세기에 스코틀랜드 에버딘 대학에 세계 최초로 의학과가 개설되면서 생명공학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후 스코틀랜드 생명공학과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876년 전화기를 개발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1842년 팩스기를 처음 만든 알렉산더 베인, 1839년 페달 자전거를 발명한 킬크패트릭 맥밀런, 1929년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인슐린을 찾아내 1920년 노벨상을 받은 존 맥레오드, 1930년 세계 최초로 레이더를 만든 로버트 왓슨와트, MRI 원리를 밝혀낸 존 맬라드, B형 간염 백신을 만든 켄 머레이, 1997년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킨 이안 윌머트는 모두 스코틀랜드가 배출한 과학자이다.

생명공학 산업, 해마다 28%씩 성장

정말 놀랍고 신기하지 않은가. 그 작은 나라 사람들이 현대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수많은 기기와 약품을 개발해 냈다는 사실이. 지금도 스코틀랜드 생명공학 수준은 최고 소리를 듣는다. 여러 수치가 그것을 입증한다. 2002년 9월 현재, 스코틀랜드에는 생명공학 연구 기관이 5백61개나 된다. 연구 인원은 2만8천여 명. 교수도 2천여 명이나 되고, 석·박사도 적지 않다. 영국 내에서 스코틀랜드인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은 9%. 그런데 생명공학 연구자의 13%, 박사 학위자의 10.7%, 유전학·미생물학 연구자의 31%가 스코틀랜드 사람이다(의사도 25%를 차지한다). 성장률도 높다. 스코틀랜드 생명공학 산업은 1999~ 2002년에 매년 평균 28%씩 성장했다.

스코틀랜드 생명공학이 나날이 살찌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시스템 덕이다. 정부·대학·기업·연구소가 긴밀히 네트워크를 형성해 ‘공동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좋은 예가 있다. 많은 사람이 황우석 교수팀의 성공 비결을 한 개인의 집념과 노력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황교수팀의 성공 동력을 네트워크에서 찾는다. 즉 수의학·생화학·생물학·의학·미생물학 학자들이 잘 협력한 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생명공학 산업도 비슷한 틀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예컨대 한 과학자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과학자에게는 기술을 상품화할 자금이 없다. 이럴 때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기부금을 받거나 기업으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는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금이 달릴 때는? 스코틀랜드 경우에는 경제개발공사(Scottish Enterprise: SE)가 적극 도움을 준다. 정부 산하 기관인 SE는 과학자가 낸 프로젝트 지원서를 면밀히 검토한 뒤, 성공할 확률이 높으면 설비와 연구 장소를 저렴한 가격에 빌려준다.

에든버러 대학 한쪽에 있는 스코틀랜드 마이크로 일렉트릭센터(SMC)는 그같은 설비를 빌려주는 곳이다. SMC에는 생명공학과 관련한 거의 모든 설비가 준비되어 있다. SMC 관리책임자 앤서니 J. 왈튼 교수는 “반도체 장비와 클린룸 등 없는 설비가 없다.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이곳에서 연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대학의 연구소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고 왈튼 교수는 덧붙였다.

이언 언더우드 박사는 SMC의 도움으로 창업에 성공했다. 그가 동료들과 마이크로 디스플레이어를 개발한 것은 1999년. 그 기술은 손톱만한 극소형 기판(약 5×7mm)을 이용해 동영상을 확대 감상할 수 있는 장치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 기술을 제품화하지 못했다. 실리콘칩 위에 디스플레이를 해야 했는데, 반도체 장비가 워낙 비쌌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SMC에 입주하면 반도체 장비를 저렴하게 이용하고, 창업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SMC에 입주한 뒤로 아무 문제 없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라고 언더우드 박사는 돌이켰다. 현재 그는 동료들과 벤처 기업을 세운 뒤,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를 상품화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이 제품이 상품화하면 손톱만한 화면으로 영화나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된다.

SE는 설비와 연구 장소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고급 인력도 육성해 공급한다. ‘알바(Alba;스코틀랜드를 뜻하는 고어) 캠퍼스’는 SE의 고급 인력 양성소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시스템 온칩 설계 부문의 석·박사를 양성하는 ISLI, 반도체 설계 자산 운용 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으면 관련 분야 연구소나 기업으로 진출한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생명공학 산업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고급 인력 육성하고 외국 기업 유치

 
최근 스코틀랜드는 외국 기업 유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 중에는 한국 기업들도 끼어 있다. 현대약품은 2002년에 스코틀랜드 바이오벤처 파마링크스와 손잡고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으며, LG생명과학·대웅제약은 이제 막 발걸음을 내디뎠다. LG생명과학과 대웅제약은 보건복지부의 ‘신약 개발을 위한 국제협력연구 프로젝트’에 따라 과제당 10억원씩 지원을 받아 스코틀랜드에 진출했다. LG생명과학은 에버딘 대학과 치매 치료제를, 대웅제약은 벤처 기업 합토겐과 인간 항체를 이용한 감염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할 예정이다.

LG생명과학 최덕영 책임연구원은 “우리는 치매 치료에 필요한 유효 물질을 발굴하고, 에버딘 대학은 선진 동물 평가 시스템으로 효능을 검증하는 기술을 제공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대웅제약 손영선 생명공학연구센터소장은 “합토겐과 협력해 후보 물질 개발과 배양·정제·임상 실험을 한 뒤, 그 기술을 획득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생명공학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KHIDI) 염용권 연구사업관리본부장은 “신약 개발은 시간과 돈과의 싸움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신약을 개발해도 국제화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연구소나 기업의 도움을 받으면 그 일이 훨씬 쉬워진다”라고 말했다.

임상 시험을 예로 들면, 한국에서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 임상 시험이 쉽지 않다. 그런데 스코틀랜드에서는 그 일이 비교적 쉽다. 퀸 타일즈 같은 세계적인 생명공학 관련 서비스 업체가 임상 시험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퀸 타일즈는 현재 50여 나라에서 약 1만6천명의 연구원이 그같은 일을 대행하고 있다. “2003년에만 1천 건 이상의 임상 시험을 진행했고, 5만명 이상의 환자를 스크리닝했다”라고 퀸 타일즈의 리즐리 팻모어 박사는 말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이경호 원장은 스코틀랜드가 “대형 과제보다 중소 과제와 중소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어, 우리 나라 기업들이 협력 관계를 맺기에 적합하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생물학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 수준이어서 한국으로서는 배울 점이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의 생명공학이나 신약이 국제 사회로 진출하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두 나라의 협력은 앞으로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스코틀랜드는 동유럽 국가로 빠져나가는 다국적 기업 대신 한국 기업을 유치한다는 효과가 있고, 한국으로서는 문턱이 높은 국제 생명공학 시장의 문턱을 쉽게 넘을 수 있다는 이득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스코틀랜드의 공동 연구는 ‘생명공학 강국’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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