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 물리는 엄마가 늘고 있다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5.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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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 수유율, 5년 만에 두 배 증가…‘젖 먹일 권리’ 막는 걸림돌 여전

 
남자들 군대 얘기 뺨치는 것이 여자들 애낳는 얘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정작 아이를 낳아본 여성들은, 출산보다 젖몸살의 고통에 더 몸서리를 친다. 젖 먹이는 산모가 줄면서 얘깃거리가 사라졌을 뿐이다. 최근 들어 이 추세가 바뀌는 조짐이 또렷하다.  

8월 첫 주는 세계 모유수유 주간이다. 한국에서 모유 수유 운동을 펼쳐온 단체들은 앞다투어 행사를 준비 중이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전세계에서 수집한 관련 포스터 70종을 모아 서울 광화문에서 전시회(8월1~7일 광화문 지하도)를 갖는다.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는 수기와 사진, 일러스트 공모전을 열어 8월1일 시상식을 가졌다. 

 
분유 회사를 상대로 오랫동안 강도 높은 싸움을 해왔던 ‘(사)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소시모)은 올해도 한 분유회사 이유식에서 농약이 검출된 것을 언론에 공개하는 등 싸움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가 있다. “이처럼 일반인의 호응이 뜨거웠던 적은 드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모유 수유율은 1985년까지만 해도 60%에 가까웠다. 그러던 것이 출산율이 곤두박질하는 속도만큼이나 가파르게 떨어졌다. 고작  15년 만에 모유 수유율은 10%까지 떨어졌다. 이 때가 바닥이었다.  2000년 10%였던 모유 수유율은 3년 만에 16.5%로 반등했다. 정부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최근 소시모 조사에 따르면 21%까지 올랐다. 턱없이 낮은 것이기는 하지만 반등세가 또렷하다. 

사실 한국이 제왕절개율 최고라는 오명을 털어내게 된 과정은 극적인 데가 있다. 이제 산모들은 인권 분만에 적극적인 병원을 찾아 나서는 것이 자연스럽다. 과연 모유 수유도 그럴 수 있을까. 적어도 욕구만큼은 그렇다. 

  산모들이 모유 수유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아이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이다. 도시 아이의 경우 30%가 아토피를 앓는다는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면역력이 약해 빚어지는 건강 문제에 대해 요즘 엄마들은 공포에 가까운 걱정을 갖고 있다. 산후 회복과 산모 건강에 좋다는 전문가 의견도 큰 몫을 했다. 

  하지만 걸림돌 또한 만만치 않다. 분만법이야 한 순간의 결단이 필요하지만, 젖 먹이기는 지난한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여건도 여의치 않다. 최근 소시모가 발표한 실태 조사 결과는 욕구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여실히 보여준다. 2004년 10~11월 산모 8백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83%가 ‘젖을 먹이겠다’고 답했으나 실제 출산 직후 완전 수유 비율은 21%에 머물렀다.

후진국과 선진국 두루 모유 수유 비율 높아    

 
세계적으로 모유 수유는 흥미로운 양상을 보인다. 후진국과 선진국은 높고, 개발도상국은 낮다. 이른바 후진국은 자연스레 엄마 젖을 많이 먹이고, 선진국은 격감했다가 반등한 결과이다. <우리 아이 모유 먹이기>(그린비 펴냄·하정훈 정유미)의 공동 저자인 소아과 전문의 정유미씨에 따르면 유럽이나 미국은 현재 모유 수유율이 50%를 넘는다. 스웨덴은 생후 6개월 모유 수유율이 72%, 호주는 출생시 83%(6개월48%)이다. 미국의 목표치는 출생시 75%, 6개월 50%인데, 6개 주가 이미 목표를 달성한 상태이다. 요즘은 ‘공공 장소에서 젖 먹일 권리’를 위해 분투하는 외국 엄마들의 사연이 해외 토픽 난을 장식하곤 한다.    

한국은? 이 과정 또한 압축 성장을 할 판이다. 굳이 따지자면 모유 수유율이 높았던 후진국형에서 개발도상국형으로 이행한 직후 상황이다. 그에 따라 엄마 젖의 장점을 알리는 홍보와 젖 먹일 권리를 가로막는 제도적인 걸림돌에 대한 싸움이 한데 뒤엉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모유 수유 체험 공모전의 주제는 ‘최고 멘토를 찾아라’이다. 소시모는 더욱 전투적이다. 그들의 과녁은 분유회사들이다. 대대적인 광고 공세를 통해, 분유가 모유를 대체할 수 있으며 심지어 더 영양분이 풍부하다는 이미지를 유포하는 분유 회사들의 편법을 고발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소시모 고명희 팀장은 “엄마 젖이 좋다는 데에야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젖 먹일 권리, 젖 먹을 권리’를 가로막는 걸림돌과 싸우지 않으면 그렇지 않아도 젖을 먹이지 못해 마음 고생 하는 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국회의원들도 발벗고 나섰다. 지난해 11월 의원 30명이 발의(대표 발의 김춘진 의원)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은 사업장 내 모유 수유시설 확보를 골자로 하고 있으며, 최근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은 가칭 ‘젖먹이 건강 증진법’ 마련을 위해 간담회를 갖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했다. 

의료 일선에서는 모유 수유에 대한 산모들의 관심이 ‘과열’이다 싶을 정도로 뜨겁다고 말한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아직 의사들이 모유 수유에 대한 원칙이나 장려 방법에 대해서 시시콜콜히 알기는 어렵다. 반면 산모들은 극성이다 싶을 정도로 정보도 많고 요구도 거세다”라고 실토했다.

유니세프 선정 '아이에게 친근한 병원’인기 

상황이 그렇다 보니 ‘평균치 병원’과 ‘확신파 가족’이 만나서 빚어지는 갈등도 심심치 않다.  올해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수기 공모 당선자로 충남 예산에 사는 김태옥·우장식 부부의 사례가 그렇다. 남편 우씨는 “출산 후 모유 수유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남다른 게 아니다. 우리보다 더한 사람들도 있다”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한국 병원들의 이른바 ‘상식’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다”라며 문제 의식을 쏟아냈다.  

남편 우장식씨는 산모가 젖이 돌 때까지 분유를 먹이지 않겠다고 했다가 소아과장으로부터 ‘왜 아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느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혈당 검사까지 했다. 다행히 결과는 정상. 이 부부의 모유 수유기는 의료인들의 ‘상식’과의 싸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우씨 부부는 원래 조산원에서 자연 분만할 계획이었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게 난산을 하게 되었고, 부랴부랴 종합병원으로 가 밤늦게 제왕절개로 딸을 낳았다. 이튿날 새벽, 부부는 아차 싶었다. 수술을 한 터라 30분 안에 초유를 먹이리라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신생아실로 달려가 보니 이미 딸에게 분유병을 물린 후였다. 남편 우씨는 간호사에게 아내가 젖이 돌 때까지 분유를 주지 말라고 당부하고 딸의 침대 머리 맡에 이런 메모를 남겼다. ‘분유 절대 주지 마세요. 물만 주세요. 꼭~!’

  그 메모는 한바탕 소란을 불렀다. 소아과 의사가 병실까지 찾아와 분유를 먹이라고 설득하더니 남편 우씨가 버티자 급기야 ‘(영양실조 등)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보호자가 책임진다’는 각서를 쓰라고 했다. 썼다. 다음에는 소아과장이 불렀다. 신생아실에서 소아과장과 한 시간 가량 실랑이를 벌였다. 우씨는 분유를 먹이면 안되는 근거를 대라는 소아과장에게 “유니세프 권장 사항에 ‘(출산 후) 아기에게 엄마 젖 이외의 다른 음식물을 주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라고 대꾸했다. 과장은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    

  우씨는 자기가 찾은 병원이 특별히 양식이 부족한 병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의료인으로서 자신들의 상식에 따라 산모와 아이를 걱정해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현실에 절망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 병원은 아이가 배고파 울면 당연히 분유를 먹이고, 퇴원하는 산모 손에 우유병과 분유통을 안기는 평균치 병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부는 그 절박한 순간에 맞닥뜨린 그 상식의 실체에 분통을 터뜨렸다. 아마도 우씨네가 일반 병원에서 출산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면 일치감치 적합한 곳을 물색했을 것이고 몸 고생, 마음 고생도 덜 수 있었을 것이다. 우씨는 “자퇴서까지 쓰고 퇴원해 조산원을 찾았다. 마치 친정에 간 느낌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연 분만과 모유 수유에 적극적인 병원을 찾아나서고 있다. 유니세프가 지정하는 ‘아이에게 친근한 병원’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한 예이다. ‘아이에게 친근한 병원’은 전세계에 1만9천 곳이 지정되었고, 한국에서는 지난해까지 총 42곳이 선정된 상태이다(명단은 www.unicef.co.kr 참조). 

  현재 병원들의 호응이 뜨거워 유니세프의 선정 작업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1993년 세 곳이 지정된 이후 매년 서너 곳씩 추가되었으나 신청 병원이 크게 늘면서 지난해에는 열두 곳이 한꺼번에 지정되었다. 실무를 맡고 있는 유니세프 이은미 과장에 따르면, 올해 심사를 신청한 병원은 무려 3백50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수십 곳을 대상으로 현장 실사가 진행 중이어서 선정 병원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아이에게 친근한 병원’이라는 브랜드의 효용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민간 인증 제도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유니세프측은 100 병상 이상의 큰 병원이나, 여성 전문 병원 위주로 실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경황이 없는 출산 상황일수록 숙련된 의료진의 도움은 큰 힘이 된다. 별 준비 없이 출산에 임했으나 병원의 도움으로 모유 수유에 눈을 뜬 김순애·김명수 씨 부부의 사연이 그렇다. 집 근처 작은 병원이었지만, 그 곳은 출산 직후부터 아이와 한 방을 쓰도록 했다. 틈 나는 대로 젖을 물렸지만 쉽게 젖이 돌지 않았고, 아이가 배고프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간호사가 걱정을 덜어주었다. ‘초산모는 사나흘은 되어야 젖이 돌기 시작하니 젖이 나오지 않더라도 계속 젖을 물려야 하며, 그 때까지 맹물만 먹여도 된다’고 일러 주었다. 정 배고파하거나 딸국질을 하면 분유가 아닌 설탕물을 먹이라고 했다. 반드시 수저로 떠먹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쉽게 빨리는 인공 젖꼭지에 적응하면 뻑뻑한 엄마 젖을 빨지 않으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아이는 본능대로 무서운 기세로 젖무덤을 파고 들었다. 땀을 뻘뻘 흘렸다. ‘젖먹는 힘까지’ 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비로소 실감했다. 

  이 병원의 퇴원 축하 꾸러미에는 그 흔한 젖병 하나, 분유 한통 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에 들어서자 상황이 180° 달라졌다. 좀 쉴라치면 ‘육아 강의’가 있다며 들으라고 채근했다. 강사는 분유업체 직원이었다. 분유업체 직원은 무슨 분유를 먹이느냐고 꼬치꼬치 묻더니 의외로 조리원에 젖을 먹이는 산모가 많자 은근히 분유를 먹이라고 종용했다. “어차피 나중에 직장 때문에 분유를 먹여야 할 터인데, 젖만 빨던 아이 가운데는 분유병을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날 밤 젖량이 충분치 않아 아이가 울자 관리에 애를 먹던 조리원측은 분유를 먹여 아이를 재우라고 성화였다. 이튿날 새벽, 김씨네는 그 조리원을 박차고 나왔다. 

  불가피하게 아이를 맡기고 일터로 향하는 여성들의 고통이야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나마 교사 등 공무원들이 하루 한 시간 모유 수유 시간을 확보받는다. 초등학교 교사인 김태옥씨는 학교에서 한 차례 유축을 한 뒤, 오후 4시쯤 퇴근해 집으로 향한다. 이미 유방이 팅팅 부은 상태이지만 자기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자위한다. 

  맞벌이 여성들은 변변한 착유 공간이 없어 화장실을 사용하는 일이 흔하다. 출산 휴가 동안 젖을 먹인 김순애씨는 젖 먹이느라 고생한 것이 아까워 출근 뒤에도 모유 수유를 위해 분투했지만 여의치 않다. 김씨는 “외근이 많은 탓에 남의 회사 화장실에서 젖을 짜는 일도 흔하다. 수동 유축기로 손목이 아프도록 젖을 짜서 보냉 팩에 넣을라치면 눈물이 핑 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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