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몰아치는 ‘보물의 왕국’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5.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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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사리 소유권 놓고 조계종과 다툼…다른 소장 문화재에도 불똥 튈 듯
 
경기도 가평군 운악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현등사(懸燈寺·주지 초격). 신라 법흥왕 때 인도 승려 마라가미를 위해 창건된 이 절에는 현등사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3호)이 있다. 삼층석탑에는 부처님의 영험한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믿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탑에는 사리가 없다.

사리는 삼성문화재단(이사장 이건희)의 소장고에 있다. 서울시 한남동에 있는 ‘리움’의 소장고인지 경기도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의 소장고인지는 관계자들도 잘 모른다고 한다. 현등사측은 문화재를 실사하다가 현등사 사리를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8월 사리를 돌려달라고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민사조정신청을 냈다. 현등사측 법적 대리인인 송상교 변호사는 “사리는 인체의 일부이며 지정 문화재이기 때문에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리구에 ‘현등사’라는 명문이 있어 삼성문화재단 장물인지 모르고 취득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삼성문화재단측은 소유 절차에 문제가 없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문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1981년 김동현씨로부터 이병철 회장이 구입한 것을 1987년 기증받았으므로 소장 경위에 절차상 하자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등사 해문 스님은 “사리는 불교 최고의 보물이며 승려들에게는 조상의 유골이다. 우리가 이병철 회장의 유골을 점유하고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삼성은 가만히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삼성문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사리가 그렇게 비중 있는 문화재도 아니고 조용히 이야기를 했으면 쉽게 끝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스님들이 법적으로 문제 삼아 공론화하는 의도를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삼성측은 최근 조계종이 사찰 출토 문화재의 불법 유통을 문제 삼아 국회에서 공청회까지 연 것이 부담스럽다. 불똥이 삼성이 소장한 다른 불교 문화재로 튀지 않을까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삼성문화재단의 다른 관계자는 “우리 재단에 있는 문화재는 도자기와 몇몇 그림을 빼고는 모두 불교와 관련이 있다. 모든 문화재의 출처를 밝힐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삼성측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

삼성문화재단은 1만5천점이 넘는 소장품을 자랑한다.( 쪽 기사 참조) 현재 삼성미술관이 소장한 국보는 모두 35점. 이건희 회장이 23점, 삼성문화재단이 12점을 소유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2002년 발간한 ‘불교문화재 지정현황 목록’에 따르면 삼성이 보유한 국보급 불교 문화재는 14점에 이른다. 삼성미술관은 보물 92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회장이 80점을 갖고 있다.

삼성이 자랑하는 미술관 리움 1층 전시실. 입구에서 관람객을 맨 처음 맞는 것은 국보 제213호 금동대탑이다. 높이 1.55m로 현존하는 금동탑으로는 가장 크다. 탑 전체에 무늬 장식과 부착물이 많고 표현 수법이 매우 정교해 높은 가치를 지닌다. 최근 동양제철화학 이회림 명예회장이 “복제품이라도 보지 않고선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회림 회장은 50여 년 동안 수집한 문화재 8천4백여 점과 자신의 미술관을 통째로 인천시에 기증했다. 

 
리움의 안내 책자에는 ‘이 탑은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지만 당시의 목조탑을 세세히 표현하고 있어 우리 나라 고대 건축 연구에 더없이 귀중한 자료이다. 고려 초기의 거찰이었던 충남 논산의 개태사지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한다’라고 밝혀져 있다.
개태사 주지 양산 스님은 “1980년대 전후 충남대와 공주대의 발굴 조사가 있었는데, 탑을 그 즈음에 도난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리 것은 맞는데 어찌할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논산시청 문화관광과 담당 계장은 “개태사에서 도굴당해 빠져나간 것은 분명한데 어떤 경로로 삼성측에 넘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라고 했다. 이 공무원은 “지난 1월 지역에 박물관을 만들면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금동대탑을 복제해서라도 전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리움측에서 사진 촬영은 물론 어떤 협조도 허락하지 않아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삼성문화재단 관계자는 “1978년 호암미술관 완공 당시 이병철 선대 회장이 기증한 것이다. 더 자세한 출처와 입수 경위는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불교계에서는 금동대탑 이외에도 많은 문화재취득 경로가 확실치 않다고 보고 있다. 삼성이 문화재 해외 유출을 막은 공이 있는데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불교 관련 문화재는 소재지가 명확해 삼성은 곤혹스러운 처지이다. 조계종의 한 승려는 “삼성가로 흘러간 불교 문화재의 목록을 만들고 있다. 삼성이 모든 책임을 작고하신 이병철 회장에게 미룬다면 이건희 회장을 직접 고소하는 방법도 피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삼성은 도굴품 때문에 몇 차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1963년 대구시 달성군 현풍에서 문화재 도굴을 일삼던 일당이 검찰에 붙잡혔다. 이른바 ‘현풍 도굴 사건’이라고 불리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대가야 금관으로 추정되는 관(冠) 등 일부 국보급 유물의 행방이 묘연했다. 언론에는 이병철 삼성 회장이 도굴된 금관을 사서 세탁을 위해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보도가 나돌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호암미술관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병철 회장이 이 금관을 입수한 것으로 소문이 나 한동안 일본에 가 있었다. 결국은 ‘도굴품인 줄 모르고 샀다’고 정리가 됐다”라고 말했다.

사라졌던 금관은 197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호암컬렉션의 특별 전시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금관은 곧바로 국보 138호로 지정되었다. 이 금관에 대해서도 삼성문화재단은 이병철 선대 회장이 기증한 것이어서 자세한 출처와 입수 경위는 알지 못 한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불교계, 금동대탑 출처도 문제 삼아

삼성의 문화재 수집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이병철 회장의 형 이병각씨(전 삼각유지 사장)다. 1966년 9월,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때 석가탑 도굴 사건이 발생했다. 도굴범들은 석가탑 이외에도 황룡사 초석, 남산사 사적, 통도사 부도 등 13개 사찰과 고적을 파헤쳤다고 한다. 도굴품들이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종 기착지는 이병각씨였다. 경찰은 이병각씨를 중과실 장물취득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개인 소장품 2백26점을 압수했다.  
 
 
앞서 언급한 호암미술관에 정통한 인사는 “저명한 문화재 수집가 김동현씨가 금은여래좌상이 진품이 아니라고 위증해 이병각씨가 풀려났지만 그 바람에 문화재는 아직도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출처가 문제가 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삼성의 수장고에서 잠자는 문화재도 많다”라고 말했다. 이병각씨의 후처였던 김송자씨의 자전 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더니>에는 이병각씨가 도굴꾼들과 거래하다가 여러 차례 곤욕을 치른 상황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신문에서는 이병철씨와 그이(이병각)가 금관을 하나씩 숨기고 있다며 그것을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신라 금관을 안양 농장에 묻었다.”라는 대목도 나온다.

부처님 사리를 놓고 불교와 삼성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불교계에서 사리를 내놓으라고 하자 삼성은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버티고 있다. 그러자 불교계에서는 삼성이 자랑하는 금동대탑의 출처를 문제 삼아 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이건희 집으로 쳐들어가겠다’ ‘삼성이 소장한 불교 문화재 전부를 되찾아 와야 한다’는 승려들의 목탁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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