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엔터테인먼트 삼국지 시대 열렸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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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는 한 시장”…3국 기업들 국경 넘어 합종연횡 가속화

 

“역시, 욘사마!” 지난 9월17일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외출>은 한류 스타 배용준의 위력을 다시 확인해 주었다. 일본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외출>은 개봉 첫날에만 17만 관객을 모으며 순항하고 있다. 영화 관계자들은 <외출>의 일본 내 수익이 3백억~4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외출>이 성공함으로써 후지TV와 니혼TV가 한국 드라마를 편성에서 내린 뒤 잠시 주춤했던 일본의 한류가 다시 재점화되었다. <외출>은 한류 스타가 출연하는 영화가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함으로써 앞으로 배용준이 출연하기로 예정된 대형 판타지 드라마 <태왕사신기> 제작도 탄력을 받게 되었다.

 
한류가 올린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는 개인·국가 별로 존재하던 아시아 시장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한류는 아시아 엔터테인먼트 시장 전체의 비즈니스 규모를 키워 놓았다. 이제 한류 스타가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제작 규모가 국내 시장이 아닌 아시아 시장 규모에 맞추어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시아 엔터테인먼트 시장 중에서도 특히 동북아시아 시장의 통합은 큰 의미를 갖는다. 세계 2위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일본과 비슷한 규모로 성장하리라고 예상되는 중국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동북아시아 시장은 미국과 유럽을 능가하는 큰 시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계 최대시장으로 부상하는 동북아 엔터테인먼트시장

한류를 통해 이 시장을 선점하려는 한국과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권토중래를 노리는 일본, 그리고 콘텐츠 자국화를 통해 패권을 차지하려는 중국이 숨가뿐 엔터테인먼트 삼국지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 동북아 엔터테인먼트 삼국지는 국가별 대항전이 아닌 한·중·일 연합군 간의 세력전으로 펼쳐지고 있다.

<봄날은 간다>와 <역도산>을 아시아 프로젝트로 진행한 노비스엔터테인먼트 노종윤 대표는 “아시아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는 합종연횡이 최대 화두다. 어떤 해외 파트너와 연합을 구축하느냐에 따라 강자로 떠오를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동북아시아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가장 작은 시장을 가진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류를 일으킨 한국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다. 스타와 콘텐츠 제작 능력이 가장 뛰어난 한국은 대중 문화의 3대 분야라 할 수 있는 드라마·영화·대중 음악 부문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드라마 부문에서 한국은 트렌디 드라마뿐만 아니라 가족 드라마와 사극까지 장르 별로 두루 히트작을 내고 있으며, 영화 부문에서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작품이 속속 나오고 있다. 대중 음악 부문에서도 초기에 댄스 음악 위주에서 R&B(리듬 앤드 블루스)나 발라드 음악으로 다양화해 안정적인 시장을 형성했다.

한류를 통해서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질서도 재편되었다. <시사저널>이 엔터테인먼트산업 오피니언 리더 5백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 이수만 정훈탁 김종학 윤석호 박진영 등 한류 스타나 한류 콘텐츠를 배출한 인물들이 국내 시장의 강자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류 일으킨 한국이 아시아네트워크의 중심

 
해외 파트너십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IHQ의 정훈탁 대표다. <와호장룡>과 <영웅>을 제작한 홍콩 영화의 대부 빌콩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 그는 전지현 주연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공동 제작한 이후 꾸준히 제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무간도>를 감독한 류웨이창(劉偉强) 감독을 영입해 정우성과 전지현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데이지> 연출을 맡긴 그는 “중국의 제작자와 감독은 할리우드에 통한다. 이들을 통해 우리 배우를 할리우드에 진출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합작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무사>와 같은 한·중 합작 영화와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역도산> 등의 한·일 합작 영화에 이어 합작 드라마도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다. 한·중 합작 드라마 <북경 내 사랑>은 이미 방영되었고, <비천무>는 사전 제작되어 방영을 기다리고 있고, <천지 7인>은 제작 중이다.

합작 프로젝트에 이어 현지화 전략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SM 재팬을 통해 보아를 일본 최고의 가수로 키워낸 SM엔터테인먼트는 SM 차이나를 강화하고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YG엔터테인먼트 역시 YG 재팬을 설립하고 세븐 등 소속가수의 일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 스타들의 중화권 진출과 동남아 진출을 대행하고 있는 DR기획 윤등룡 대표는 “엔터테인먼트의 속성은 결국 자국 스타와 자국 콘텐츠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를 대비해 현지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본과 중국은 한국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중국의 방식은 철저한 자국화 전략이다. 중국 드라마 제작자들은 다양한 스카우트를 통해 자국 드라마의 수준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채 림 차인표 장나라 등을 드라마 제작에 끌어들이기도 하고, 드라마 PD나 작가까지 스카우트해서 드라마 제작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콘텐츠 중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바로 무협 영화다. 홍콩 영화의 저력을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블록버스터 무협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데, 특히 앞으로 선보이는 4대 무협 영화(<칠검><심화><퍼햅스 러브><무극>)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직 한국 영화가 아시아권 시장에 머무르고 있지만 이 영화들은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 제작자들이 영화를 제작할 때, 한국의 스타와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쉬커(徐克) 감독이 연출한 <칠검>에는 배우 김소연이 출연했고 보람영화사가 투자했다. 청룽(成龍)이 주연한 <신화>에는 배우 김희선이 출연했다. 천커신(陳可辛) 감독이 연출한 <퍼햅스 러브>에는 배우 지진희가 출연하고 첸카이거(陳凱歌) 감독이 연출한 <무극>에는 장동건이 출연한다.

한국은 스타와 콘텐츠, 일본은 자본, 중국은 시장

영화 관계자들은 이런 캐스팅이 한류 스타의 스타성을 바탕으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포석이라고 보고 있다. 아시아권에서 스타성이 약해지고 있는 중국 스타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 스타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런 합작 무협 영화가 한국 스타를 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이 한류 스타를 끌어들여 아시아 시장과 세계 시장을 겨냥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다르게 일본은 한류스타와 콘텐츠를 활용해 내수 시장을 다지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김영덕 연구원은 “일본으로서는 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이나, 시장의 투명성이 떨어지는 중국보다 내수 시장이 더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체 중에서 한국 스타와 한국 콘텐츠를 끌어들이는 데 가장 적극적인 곳은 바로 보아를 통해 한류의 단맛을 십분 보았던 에이벡스 사다. 일본 최대의 음반 유통 전문 회사인 에이벡스는 DVD 유통에까지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고 있는데 여기에 한류 콘텐츠를 킬러 콘텐츠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에이벡스는 <태왕사신기> DVD 판권을 50억원에 선구매한 것을 비롯해 <프라하의 연인>과 대형 사극 <삼한지>를 제작하는 올리브나인 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는 등 한류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새로 클래식 레이블을 만든 에이벡스는 그 첫 주자로 한국의 팝페라 테너 임형주를 택했다.

이외에도 에이벡스로부터 시장을 방어하기 위해 일본 DVD 시장의 맹주인 CCC도 한류 콘텐츠 확보에 총력을 쏟고 있다. 또 음반 제작 유통사 포니캐넌, 영화제작사 카도카와 등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류 콘텐츠를 일본에 수입하고 있는 유니시아 김범수 대표는 “충성도가 높은 한류 콘텐츠는 유료 시장에서 특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은 산업 구조 개편의 전위대 역할을 한류 콘텐츠에 맡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자본은 구매와 선구매를 넘어서 제작 투자와 지분 참여 등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MK버팔로 박신규 이사는 “일본 자본은 음원을 가지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와 예당에 적극적으로 지분참여를 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이처럼 내수 시장을 활용하기 위해 한류 콘텐츠를 활용하는 일본 업체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기업이 있다. 바로 소니 사다. 콜럼비아픽처스와 MGM을 합병해 할리우드 콘텐츠를 많이 확보한 소니는 자사 전자제품의 해외 시장 공략에 이를 활용하고 있다.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천체와 같이 엔터테인먼트라는 행성이 콘텐츠를 중심으로 회전할 것이다. 소니가 펼치는 전략의 중심은 콘텐츠다”라고 이를 설명한 바 있다.

중국 시장 차지해야 절대 강자

 
이미 국내에서도 소니는 영화 <스파이더맨>을 홍보하면서 디지털 카메라를 공동 프로모션해 좋은 성과를 거둔 적이 있다. 소니는 각개 약진하고 있는 소니의 한국 지사들을 엮는 코드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활용할 예정이다. 소니코리아·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소니비엠지뮤직·소니픽쳐스릴리싱코리아 공동으로 오는 11월 공동 프로모션인 ‘HDV 인포테인먼트쇼’를 진행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불꽃 튀는 한·중·일 엔터테인먼트 전쟁에서 스타와 콘텐츠 제작 능력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국이 앞으로 시장을 이끌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산업화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고도화를 위해 새로운 인물들이 뛰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바로 <태왕사신기>의 투자 배급 마케팅을 맡고 있는 SSD사다. 이들은 <태왕사신기>를 아시아 프로젝트로 키워서 100억원 규모의 세트장을 제외하고도 제작비만 2백50억여원(회당 약 12억원)이 드는 드라마의 제작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외에도 배용준의 일본 매니지먼트를 대행하며 다양한 한류 비즈니스를 펼쳐 일본에서 중견 엔터테인먼트 업체로 성장한 IMX 또한 주목할 만한 곳이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배용준과 매칭펀드 방식으로 1백7억원을 IMX에 투자했다. 한류 기업으로서 꾸준히 한류 콘텐츠의 일본진출을 주관하고 있는 유니시아 역시 아시아권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어 한류를 이끌 주역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00쪽 상자 기사 참조).

한·중·일 삼국이 사활을 걸고 벌이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패권 경쟁은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중·일 엔터테인먼트의 패자가 되는 것은 아시아의 패자, 나아가 세계 시장의 패자가 되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이사는 “큰 시장에서 큰 스타가 나온다. 중국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어서 아시아 시장이 앞으로 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중원이 될 것이다. 이 시장을 빨리 선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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