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 운동에 관한 진실과 오해
  • 표정훈(출판 평론가) ()
  • 승인 200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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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의 책] <헬스의 거짓말>/피트니스 산업의 속설과 과학 추적

 
최근 들어 내가 아내에게 받는 압력의 강도가 커지고 있다. 적당히(?) 배가 나오고 술을 자주 마시는데다가 담배도 끊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가하는 아내의 압력이란 다름 아니라 ‘제발 운동 좀 하라’는 것이다. 동네 헬스클럽에 나가 땀을 흘리거나 아파트 주변을 매일 30분 정도 걸으라는 식으로 구체성을 지닌 압력이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초반 의사 조지 시언이 달리기를 헬스의 최적의 수단으로 제시하고 베리먼 쿠퍼가 1968년 에어로빅스라 불리는 여성을 위한 유산소 운동에 관한 책을 내면서 1970년대 들어 헬스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반 달리기를 하는 미국인은 10만 명에 불과했지만 1970년대 후반 3천만 명으로 늘어났고, 러닝화 시장 규모는 1981년 18억 달러에서 1990년 64억 달러로 늘어났다. 헬스 산업이 번창하면서 건강과 운동 관련 정보가 연일 각종 매체를 장식하지만, 검증된 의학 지식인지 건강 산업 홍보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저자는 헬스 운동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져 온 최대심박수 공식이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한다. 1971년 운동생리학자 두 사람이 ‘최대심박수=220-자기 나이’라는 공식을 만들었는데 이는 65세 이하 남성을 무작위로 표본 조사한 믿을 수 없는 이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헬스 운동 기구를 제작, 판매하는 기업들이 이 공식을 이용하면서 불변의 진리로 자리잡았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원하는 부위의 살만 골라 뺄 수 있다거나, 운동 도중 물을 마시거나 선풍기 바람을 쐬면 안 된다거나 하는 주장도 모두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누군가에 의해 창안된 특정 이론이라고 선전할수록 상업적 의도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저강도 운동, 특히 걷기 운동이 유행이다. 아침저녁으로 동네 주위를 가벼운 운동복을 입고 걷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근육은 대사가 상대적으로 쉬운 글리코겐 형태의 당분을 에너지로 사용하려 한다. 신체가 격한 운동을 하지 않을 경우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저강도 운동을 해야 지방이 연소돼 체중이 더 줄어든다고 한다. 이에 따라 지방연소 심박수라는 게 만들어져서 러닝머신 같은 운동기구에 채용됐고, 저강도 운동은 더 많은 사람을 운동으로 끌어들여 운동화 등 스포츠 산업의 이윤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유행하는 운동 요법, 대부분 근거 없어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섭취하는 칼로리보다 소모하는 칼로리가 많으면 살이 빠진다. 에너지원이 지방이냐 탄수화물이냐는 중요한 차이가 아니다. 또한 걷기나 달리기로 소비하는 칼로리에 아무 차이도 없다. 같은 운동시간에 소비 칼로리 총량에서는 달리기가 걷기보다 50%나 많고 그렇다면 달리기가 더 살을 빠지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저자가 고강도 운동이 더 좋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운동의 유행은 의학적 판단보다 문화적 유행이나 산업적 측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킬 뿐이다.  

 
어떤 운동 요법이 좋다느니 해서 대중의 관심이 쏠리면 너도나도 그 운동을 따라하는 형편인 우리 현실을 감안하면, 유행했던 각종 운동요법이 대부분 근거가 없다는 저자의 지적을 경청할 만하다. 심장파동개념을 이용한 헬스 운동을 예로 들 수 있다. 심장리듬에 맞춰 적절한 강도로 운동하는 것이 좋다는 건데, 저자가 조사한 결과 10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8주 동안 대조군도 없이 실시한 엉성한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더구나 이론을 창안했다는 하버드의대 교수는 이름만 빌려 온 경우였고 실제 책임자는 의사면허까지 박탈당한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떤 운동을 얼마나 해야 좋은 건지 답해주지 않는다. 대안적인 이론을 내세워봤자, 그 이론 역시 언젠가는 정반대의 이론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이를테면 과거 심장병 환자들의 달리기를 금했던 의학계가 이젠 달리기를 적극 권하고 있다. 그렇다면 운동의 진실과 목적은 도대체 뭘까? 저자는 운동을 하는 진짜 이유는 운동할 때나 끝냈을 때 기분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운동의 진실과 목적은 건강에 있는 게 아니라 운동의 즐거움 그 자체에 있으며, 운동을 즐길 수 있을 때 건강은 저절로 찾아온다는 뜻일 것이다. 

아내의 압력에 시달리는 세상의 모든 게으른 남편들이 핑계거리로 환영할만한 책인가 싶었더니, 그게 아니다. 역시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긴 해야 할 모양이다.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해야 즐거울까? 아무도 답해줄 수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스스로 운동을 해봐야 알 수 있을 테니, 조만간 운동화 끈을 졸라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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