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심은 맹형규, 민심은 홍 준표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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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레이스는 ‘맹·홍 양강 구도’로 시작되었으나 전세가 바뀔 시간은 충분하다. 출사표를 던진 5명의 전략·전술을 뜯어보았다.

 

11월3일 오후 3시, 세종문화회관 기념홀. 메인 홀부터 부속 홀까지 사람들로 꽉 찼다. 이회창 전 총재를 비롯해 이명박 서울시장, 박희태 국회 부의장 등 쟁쟁한 인사들의 얼굴이 보였다.

마치 의원 총회장을 옮겨놓은 듯 한나라당 국회의원 50여 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재오 의원의 <수채화 세계 도시 기행>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형식은 출판기념회였지만, 사실은 출정식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10월27일 홍준표 의원에 이어 이재오 의원까지,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런 출판기념회를 잇달아 열고 있다. 11월14일에는 박 진 의원도 출판기념회를 연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한나라당의 차기 서울시장 후보들이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열린우리당과 달리 한나라당의 서울 시장 레이스는 이미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거론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맹형규·박계동·박 진·이재오·진 영·홍준표 의원을 비롯해 오세훈 전 의원 등이다.

지난 10월31~11월1일 <시사저널>은 이들에게 공통으로 공약, 경쟁력, 단점, 당내 경쟁자, 예상하는 열린우리당 후보 등 다섯 가지 질문을  던졌다. 

취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오세훈 전 의원의 불출마 의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답변하기 곤란하다. 불출마 쪽으로 이미 마음이 기울었고,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진 영 의원측은 “나간다 안나간다 결정을 아직 못했다. 여전히 고민하고 있어 답변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현재까지 잠재적인 후보군은 5명으로 압축되어 가는 분위기이다. 후보들이 보내온 답변을 보면, 강남·북 불균등 해소가 공통적인 공약이고, 이를 위해 추진력이 있는 자신이 제격이며, 당내 경쟁자로는 맹형규 의원, 열린우리당 예상 후보로는 김한길 의원을 많이 꼽았다.

한나라당 경선은 이미 불꽃 튀는 경쟁에 들어갔다. “맹하다” “홍박쥐다” “너무 늙었다” “새파란 애다”라는 등 참모들 사이에서는 상대 후보를 겨냥한 인신 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고 나온다. 서울시장 경선에 불이 붙은 한나라당 후보들의 전략과 전술을 들여다보았다. 

맹형규 “경선 위해 의원직 던질 수도 있다”

“김씨 후보가 안 나와서 천만다행이네. 기사는 가나다 순으로 나가죠?” 인터뷰를 마친 맹형규 의원의 농담이다. 농담이지만, 당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맹형규 의원은 지난 10월30일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사퇴했다. 그리고 곧장 경선 레이스에 들어갔다. 사퇴 기자회견장에서 맹의원은 서울 재창조 프로젝트 1탄이라며 ‘대한강 르네상스’를 제시했다. ‘청계천 효과’를 염두에 둔 이 프로젝트는 15대 핵심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덮는 슈퍼데크가든이나 동부간선도로 지하 고속화도로 증설이 눈에 띄는 주요 공약이다.

 

3선인 맹형규 의원은 대변인·정책위의장을 두루 거친 ‘주류’이다. 그래서 ‘당심’을 잡는 데 다른 주자들보다 한 발짝 앞서 있다고 자신한다. 

문제는 당 밖의 민심이다. ‘국적법’ 명중으로 확실하게 뜬 홍준표 의원에 비해 여론에서 밀리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인 TNS의 고태영 연구원은 “홍준표 의원이 이슈를 만드는 이슈 메이커라면, 맹형규 의원은 이슈를 피하는 형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맹의원 쪽은 앞으로 당 안팎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방침이다.

맹형규 의원 쪽이 경계하는 변수는 홍준표·이재오 의원 등의 연합 공중전이다. 현재 당 안팎에서 맹의원은 박근혜 대표와, 홍준표·이재오 의원은 이명박 시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진영에서 자신들이 불리해질 경우 자가 발전을 통해 박근혜-이명박 대리전으로 몰고 갈까 봐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맹의원측이 당내 경선은 축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걱정 때문이다.

경선 막바지에는 여차하면 의원 직을 던지는 것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맹형규 의원은, 최근 밑바닥을 훑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청계천=이명박’ 식으로 ‘한강= 맹형규’라는 어젠더를 선점하기 위해, 11월18일 시민단체와 함께 한강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 BR>  
11월2일 박계동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은 다소 ‘뜻밖’이었다. 출마 선언 직전 의원회관에서 만난 박의원은 수도 분할 반대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박의원은 경선 내내 수도 분할 반대를 이슈화할 작정이다. 박의원은 ‘메트로 서울’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서울을 명실상부한 세계 중심 도시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의원측이 보는 중요한 경선 변수는 행정도시 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이다. 위헌이나 합헌 불일치 판결이 나면, 서울시장 경선에서 박계동·이재오 의원 등 수도권 사수파의 입지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당내 기반이 약한 박의원의 최대 후원군은 그의 전직 직장 동료들인 택시 운전기사들이다. 17대 국회에 들어오기 전 한때 택시 운전대를 잡았던 박의원은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LPG 특소세 폐지 법안을 냈다. 박의원은 ‘움직이는 선거운동원’ 택시 기사들의 구전 홍보를 통해 바람을 일으킨다는 복안이다.

‘범이명박계’ 홍준표·이재오·박계동 연대?

하지만 박의원을 두고 당내에서는 완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더 우세하다. 박의원 자신도 부인하지 않는다. 특히 이재오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에 박의원은 무게를 두었다. “재오형과는 싸울 생각이 없다.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 멤버이고, 운동권 선후배로서 후보 단일화를 반드시 이루겠다”라고 박의원은 말했다.

만일 박계동-이재오 연대에 이어 같은 발전연 소속인 홍준표 의원까지 단일화를 이룬다면, 자연스럽게 ‘범이명박계’가 교통 정리가 되면서 경선 레이스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맹형규 의원측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구도인 것이다. 박의원측은 범이명박계의 합종연횡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통 정리가 그렇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모두 ‘자기 중심으로’ 헤쳐 모여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앞서가는 홍준표 의원은 연대와 무관하게 무조건 완주할 작정이다. 만일 홍의원을 빼고 이재오-박계동 의원만이 단일화를 이룬다면, 찻잔 속의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지율이 낮은 후보들끼리의 연합은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박 진 의원 동생이세요?” 박 진 의원이 최근에 자주 듣는 말이다. 몸무게를 18kg이나 줄인 다이어트로 화제가 된 박의원은 젊어졌고, 몸놀림도 빨라졌다. 빠른 몸놀림만큼 서울시장 경선 준비도 발 빠르다.

박의원은 11월14일 <박진감 있는 돌고래 다이어트>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출정식을 가진다. 자신의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이미지 메이킹에 십분 활용할 심산이다. ‘푸른 서울, 젊은 서울’을 캐츠 프레이즈로 내걸고, 비만인 서울의 군살을 빼기에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자신이 제격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도심에 모노레일을 도입해 교통 소화 불량을 치유하고, 하천 복원을 통한 수질 개선으로 피를 맑게 하는 등 각종 서울 문제를 몸에 빗대어, 서울 10대 다이어트 플랜을 마련했다.

참신성과 젊음으로 무장한 박진 의원이지만, 당내에 확실한 지지 기반이 약하다. 공동의장으로 있는 ‘국민생각’의 맹형규 의원이 출사표를 던지면서 조직적인 지지를 기대하기도 어렵게 생겼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차기보다는 ‘차차기’를 노리고 나왔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박진 의원측은 틈새를 파고들어 당심과 민심을 사로잡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본선 승리를 위해서는 강북 공략이 관건인데, 이를 위해서는 강북 정서를 대변할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맹형규 의원과의 차별화이다. 또한 강북을 대변할 후보라도, 누가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부합하느냐를 묻겠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강북에 지역구를 둔 이재오· 홍준표 의원을 겨냥한 차별화이다. 11월14일 박 진 의원이 돌고래 다이어트 책과 함께, 미국 공화당의  집권 전략이 담긴 <집권의 성공전략 - 미국 보수주의의 파워(원제 The Right Nation)> 번역본을 함께 출판하는 것도 두 사람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지난 6월29일 이재오 의원은 ‘청한포럼’을 결성했다. 청한은 ‘청계천부터 한강까지’를 줄인 말이다. 그 뜻에서 짐작하듯 ‘서울시장 이재오’를 위한 일종의 자문 교수단이다. 이때부터 이의원은 매주 목요일 아침, 자문 교수단과 머리를 맞댔다. 이번에 출판한 <수채화 세계도시기행>도 청한포럼의 결과물이고, 공저자인 원제무 교수도 청한 포럼 멤버이다.

이재오 의원은 친환경 도시, 인간중심 도시, 세계 도시를 위한 17대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핵심은 ‘걸어서 15분 내에 시냇물이 흐르고 숲이 있는 서울을 만든다’는 청계천 벤치마킹이다.

이재오 의원은 이명박 서울시장 선대본부장을 비롯해 큰 선거를 여러 번 치른 경험이 있다. 경험칙상 ‘지지율’보다 ‘득표율’이 중요하다고 보는 그는  민심보다는 당심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국민선거인단이 경선에 참여하더라도 실제로 투표장에 오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당락을 결정할 변수는 바로 조직 표나 다름없는 밑바닥 당원들의 표심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재오 의원은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기초 의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목이다. 지난 8월22일 이의원은 정원을 줄이고 광역화를 골자로 한 개정 선거법에 맞서, 소선거구제와 정원을 예전  그대로 돌리는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다. 기초의원들의 요구를 십분 반영한 것이다.

이의원측 관계자는 “기초의원은 밑바닥 표심을 좌우한다. 자신들이 어려울 때 누가 함께 했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심 답답함도 있다. 벌써부터 후보들 사이에서는 지지율이 여의치 않으면, 이재오 의원이 당권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8월18일 박근혜 대표와 단독으로 만나 그간의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한 이재오 의원은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민심 속으로 파고들 작정이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에 불을 붙인 주인공은 홍준표 의원이다. 재·보선에서 완승한 다음날인 지난 10월27일, 홍의원은 <나 돌아가고 싶다>는 수필집 출판기념회를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었다. 많이 오면 2천여 명이 올 것으로 보고 ‘뻥튀기’ 보도 자료를 미리 배포했다.

그런데 실제 참석자는 2천여 명을 훌쩍 넘어 3천5백-4천명 선이었다. 홍준표 의원의 ‘세몰이’에 다른 후보 진영은 바짝 긴장했고 앞다투어 ‘세몰이’에 나서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강남·북을 아우르는 후보라는 점을 강점으로 꼽고 있다. 강남인 송파(15대)에서 국회의원에 당선했고, 지금은 강북인 동대문(16·17대) 지역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점을 들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적임자라고 내세운다.

불균등한 강북 발전을 위해, 홍의원은 강북 인프라 구축을 제1 공약으로 내놓았다. 동대문에 한국금융센터(100층 규모)를 짓고, 중랑천과 안양천을 수상 공원화하는 등 선 굵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홍준표 의원을 서울시장 후보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무엇보다 ‘대중적 흡인력’이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7월부터 전국 5백명을 상대로 선호하는 정치인을 조사하는데, 두 번을 빼놓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유는 ‘국적법’ 명중 때문이다.

‘국적법 명중’한 홍준표, 당심 잡기 안간힘

이를 계기로 홍준표 의원은 일단 바람을 탄 것으로 보고 당심을 공략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당심과 관련해서는 박근혜 대표와 관계 개선도 했다. 출판기념회 때는 박대표가 직접 참석했고, 격려금까지 전달했다.

하지만 홍의원 지지율을 두고는 거품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맹형규 의원측은 “강·남북 분열을 전제로 한 분열적인 선동정치는 낡은 포퓰리즘이고, 한나라당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홍준표 의원은 조만간 등반대회를 여는 등 특유의 몰아치기로 선거판을 계속 주도할 계획이다.

서울시장 후보를 결정할 게임의 룰은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다. 혁신위원회가 제출한 안에 따르면, 국민참여인단, 여론조사 등 당 밖의 민심과 대의원과 당원들의 투표 등 당 안의 당심을 절반씩 반영하게 되어 있다.

당 안팎에서는 현재 당심에서는 맹형규, 민심에서는 홍준표 의원이 앞서는 양강 구도가 형성되어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많다. 여론조사 기관인 더 피플의 류재숙 이사는 “엎치락뒤치락하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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