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들은 어디로 갔나
  • 이형석 (헤럴드경제 기자) ()
  • 승인 2005.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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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키워드] 모성:<사랑해, 말순씨>

왜 ‘나쁜 엄마’는 없을까. 올 한 해 영화들을 보면서 드는 의구심 중 하나는 이것이다. 이 현상은 혹시 올해 극장가를 장악한 감동·눈물 코드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신기하게도 올해 스크린에서 대세로 구축된 휴머니티 혹은 휴머니즘으로부터 발하는 따뜻함은 <살인의 추억>으로부터 <장화, 홍련> <4인용 식탁><바람난 가족>을 거쳐 <올드보이>로 마무리되었던 2003년의 차가운 정서와 확실히 대조를 이루는 듯하다.

 
<사랑해, 말순씨>를 보자. <인어공주>에서 과거로의 환상 여행을 통해 ‘억척 엄마’에게 ‘젊고 아름다웠던 연애의 시간’을 되돌려주었던 박흥식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사춘기 소년의 성장담을 통해 잃어버린 모성을 추억한다. 때는 1970년대 말. 아직 교복이 커 보이는 중 1짜리 소년 ‘광호’(이재응)는 버스에서 빈자리만 생기면 100m달리기 하듯 몸을 던져 의자를 차지하는 억척스런 엄마(문소리)가 싫다. 화장을 지우면 눈썹이 없어지고 마는 이상한 엄마도, 동네 아줌마와 어울려 푼수나 떠는 주책바가지 엄마도 싫다. 소년은 셋방에 사는 예쁜 누나(윤진서)가 좋다. 늘 좋은 냄새가 나고, 쥐도 못 잡는 그녀가 좋다. 소년의 첫 몽정은 꿈속에서 누나한테 안겨 이루어진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모성이 강조되는 데 반해서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면에 드러난 어머니의 시간과 함께 삭제된 흔적으로서의 아버지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소년에게는 아버지(사우디로 떠난 것으로 되어 있지만, 편지의 답장은 오지 않는다)는 부재하는 대신 학생을 개 패듯 패는 교사나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거대 권력’이 있고, 어머니는 지난한 삶의 무게를 특유의 낙천성과 생명력으로 돌파해 간다. 거대 권력, 곧 유사-아버지의 시간은 역사로서의 폭압적인 세월이며 ‘집단적이고 공적인 기억’인 데 반해, 모성이 껴안은 과거는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소년 개인의 시간이다.

나쁜 여자들은 어디로 갔나

수잔 손택에 따르면 ‘사진은 과거를 상상적으로 전유하는 방식’이며 태생적으로, 사라져가는 것들 특히 가족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사랑해, 말순씨>는 이제는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가족이 찍힌, 오래되어 빛 바랜 사진이다. 그 사진에 찍힌 아버지는 공적인 공간으로 ‘외출중’이며, 어머니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다른 가족을 품고 있다. 이 영화가 드러내는 남성적인 상실감은 이제는 여성이 사적인 공간에서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연유한다. 모성은 사적인 공간에서 정의되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배우 출신 감독 방은진의 데뷔작인 <오로라 공주>는 여성을 모성성에만 제한하려는 남성적 욕망과 더 이상 여성이 모성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새끼 잃은 어미의 분노’로 화해시킨다. 여성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사랑해, 말순씨>와 다르지 않은 남성적 욕망이 투사된 작품으로 볼 여지가 많다.

극중 엄정화는 유괴 살해에 의해 아들을 잃었다. 이 ‘분노한 어미’는 자식이 유괴 살해된 과정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여성성이 유난히 도드라진 인물이나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계모, 천박한 성욕을 과시하는 남성이 처단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또 엄정화는 복수 상대자를 유혹하는 미끼로 여성으로서의 성적 매력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영화는 그녀의 성행위를 희생된 아이의 아버지-전 남편(문성근)과만 유일하게 허락한다.

 
<오로라 공주>에서 자식은 부재하지만 여성은 여전히 ‘모성’에 묶여 있으며, 구태여 삽입된, 부재하는 아이의 부모들간 섹스는 섹스의 의미가 ‘종족 번식’에 있다는 전통적인 관념을 재확인한다. 이는 <바람난 가족>에서 아이를 똑같은 방법으로 잃고도 분노의 표정을 스크린 위에 한번도 비치지 않은(게다가 다른 어린 남자와 열정적인 섹스까지 하는) 문소리의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쁜 엄마’들이 등장했으면서도 징벌되지 않았던 2003년의 극장가 분위기와 비교해 볼 때 올해 영화의 여성적 담론은 다분히 퇴보한 느낌이다.

이처럼 최근 영화들에서 특이한 점은 여성성을 모성과 결부함으로서만 정의 내리려는 남성적 욕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아톤>에서 자폐아(조승우)를 마라토너로 키우는 엄마(김미숙)는 단 한 시퀀스에서 자신의 욕망과 아들의 성취 사이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엄마의 지난한 ‘희생’은 아들의 해맑은 웃음 하나로 모두 정당화한다.

그래도 모성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텍스트를 꼽는다면, 여주인공 자신이 유괴 살해에 가담한(<오로라 공주>의 엄정화와 정반대편에 선) 아이와 친딸을 동시에 내세워 관객들에게 ‘시각적 교란’을 야기하는 <친절한 금자씨>와, 거대한 모성 혹은 자궁으로서 이상향인 ‘동막골’에 회귀한 남성들의 이야기 <웰컴 투 동막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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