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자들의 진지한 초상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11.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네마 키워드] 마이너리티의 시선:<연애> <나의 결혼 원정기>

 
최근 영화 주간지 <씨네21>(529호 11월22일자)은 특집 기사로 한국 영화 창작의 원천이 되고 있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대한 특집 기사를 보도했다. <꽃피는 봄이 오면><말아톤><엄마><거칠마루><나의 결혼 원정기>가 모두 <인간극장>의 주인공을 영화화한 작품들이다. 이외에도 <인간극장>의 주인공을 소재로 한 <맨발의 기봉이><친구와 하모니카><충칭의 별 이장수>가 제작되고 있다.

<인간극장>표 영화가 늘고 있는 사실은 한국영화계가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소수 집단)에 대해 무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압축해 보여준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재벌 2세라는 부나방을 쫓는 신데렐라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조장하고 있을 때, 충무로는 소외된 마이너리티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다. 특히 이제 막 충무로에 입성하는 신인 감독들이 이 작업에 열심이었다. 이들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적 새로움을 보여주면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마이너리티의 삶에서 새로운 상상력 얻는 한국영화

한국형 마이너리티 영화의 미덕은 단순히 마이너리티를 이미지로만 차용하는 영악함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비루한 세계를 묘사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만 급급한 할리우드 영화의 가벼움과는 다른 진지함을 갖추고 있다. <말아톤><너는 내 운명> 등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신인 감독들의 마이너리티 재조명 영화가 <연애>와 <나의 결혼 원정기>로 열풍을 이어갈 조짐이다.

<연애>는 보도방을 중심으로 노래주점을 전전하며 남성의 성적 노리개 노릇을 하는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남편을 대신해 비즈 공예와 전화방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어진(전미선 분)은 우연한 기회에 김여사(김지숙 분)를 만나 노래 주점에서 술시중을 들게 된다. 어느덧 몸을 파는 지경에까지 이른 어진은 노래 주점에서 만난 민수(장현성 분)와 사랑의 감정을 키우지만, 결국 더욱 더 나락에 떨어지고 만다.

중년 여성의 내면을 응시한 <연애>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대척점에 서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중년 남성들의 쓸쓸한 모습을 묘사한 풍경화라면 <연애>는 중년 여성들의 어두운 마음을 드러낸 자화상이다. <연애>라는 제목은 다분히 역설적이다. 아마 감독은 매매춘의 또 다른 이름으로서 ‘연애’에서 제목을 착안한 듯싶다. 그것은 하룻밤 풋사랑을 찾아 노래 주점을 찾는 남자의 장난일 수 있는 감정인 동시에 두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고 매일 밤 몸을 팔아야 하는 여자에게 사치일 수 있는 감정이다.

 
<연애>에서 주제와 스토리만큼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영화의 미장센이다. 밴드 멤버들의 고된 일상이 우울한 화면 속에 그려진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달리 <연애>는 카메라가 처절한 일상을 훑지만 스치듯 지나는 환희의 순간을 포착하고 이를 부각한다. 이는 주로 클로즈업 장면을 통해서 드러나는데, 주인공의 심리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겠다는 듯 영화에는 클로즈업 화면이 빈발하게 쓰인다.

클로즈업 화면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인 장면은 바로 어진(전미선 분)과 민수(장현성 분)의 정사신이다. 카메라는 사랑스럽게 어진을 애무하는 민수의 분주한 움직임과 환희의 순간을 준비하는 어진의 수줍은 표정을 밀착해서 보여준다. 그러나 카메라가 줌아웃을 하자 침대 위에는 한 남자가 더 나타난다. 어진은 사랑했던 남자와 그의 선배로부터 능욕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두운 표정 속에 잠깐 스치고 지나간 미소, 행복한 표면에 감추어진 어두운 속살, 이 부분과 전체의 부정결합을 포착하는 데 클로즈업은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마이너리티 미학의 진수를 보여준 <연애>와 <나의 결혼 원정기>

<나의 결혼 원정기>는 냉정한 결혼 시장에서 ‘밀려난’ 한심한 농촌 총각 만택(정재영 분)과 가난을 피해 우즈베키스탄까지 ‘밀려온’ 억센 탈북여성 순이(수애 분)의 사랑을 그렸다.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마이너리티 국가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티들의 순애보는 어떤 멜로 영화의 사랑이야기보다 절실한 감정을 일으킨다. <나의 결혼 원정기>는 마이너리티 캐릭터와 이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에피소드의 최고점을 경험하게 해주는 영화다.

둘 다 주인공의 마이너리티적인 삶을 다룬다는 면에서는 일치하지만 영화가 겨냥하는 과녁은 다르다. 대중 영화의 문법을 따르기보다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천착하는 <연애>는 우울하고 다소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둘은 결국 존재론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연애>가 <프리티 우먼>과 다른 이 점이 바로 한국 영화와 미국 영화의 차이일 것이다.

대중 코드를 충실히 따르는 <나의 결혼 원정기>는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그러나 관객이 둘의 사랑이 맺어지도록 감독에게 구걸할 정도로 마음의 상태를 이끌고서야 인심 쓰듯 선사하는 해피엔딩이다. 관객은 마치 싸구려 패키지 관광을 온 듯한 기분을 느끼며 영화에 빠져들게 된다. 마이너리티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지만 어찌되었건 분명한 사실은 <연애>와 <나의 결혼원정기>는 놓쳐서는 안 될 영화라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