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가짜 돈이 라이스를 돕는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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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관계에서 위폐 문제가 미국에 호재로 작용하는 이유

 
‘뒷얘기’가 정세 예측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남북협상의 주역이었던 임동원 특보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면접촉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기자들 다 있는 데서 무슨 얘기를 하나”라는 것이었다. 북미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부시 2기의 주역인 라이스-힐 등이 북한과 뭔가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이면의 채널을 가동할 수밖에 없다. 정보통들의 관심 역시 그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여기서 파생된 얘기 중, 북미관계의 앞날을 점치는 데 ‘여전히’ 유의미한 얘기가 몇 가지 있다. 하나는 경수로에 대한 것. 미국이 9·19 공동성명에서 ‘적절한 시점에 경수로 제공을 논의할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본심은 경수로 대신 화력발전소를 제공하는 것이며, 이미 제안까지 해놓은 상태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 얘기와 동시에 나온 것으로, ‘평양에 미국의 연락사무소가 들어가는 시점’에 대한 얘기였다. 얘기인즉슨 이렇다. ‘북한은 내부 여건상 북미관계를 하루빨리 풀고 싶어 한다. 따라서 6자회담에 복귀하고 핵문제에 적극적으로 임할 예정이다. 미국 측에도  올해 연말까지 연락사무소를 교환하는 수준까지 발전시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국은 금년 말은 너무 이르고 내년 3월이 적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로 라이스 장관의 뜻이 그렇다는 것이다.’

정보 소식통들이 이 얘기를 접한 것은 9·19 공동성명이 나오기 한두 달 전이었다. 그러고 나서 공동성명이 타결됐고, 북미관계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난무했다. 그러나 라이스가 밝혔다는 ‘3월설’로 인해 늘 찜찜한 상태였다.

9월16일 미 재무부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에 대한 금융제재를 발표했다. 이때만 해도 북한 위폐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현재 이 문제는 6자회담의 발목을 잡는 핵심 현안으로 둔갑해 있다. 미국의 태도는 이미 확고하다. 정보 소식통들에 의하면 미 금융당국은 그동안 마카오와 베이징에 특별팀까지 파견해 증거 확보에 열을 올렸고, 조만간 차례차례 증거를 꺼내놓으며 북을 압박할 것이다.

라이스 장관이 바로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흐름상 그의 말대로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3월은 가능한가? 그의 말대로라면, 위폐로 인한 북미 간 대립국면은 어느 시점에선가 조정국면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제한 난타전이 아니라 제한전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북이 어느 정도 타협을 해올지가 관건이지만,  미국도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 북한의 선 경수로 제공 요구를 맞받아치기가 궁색했는데, 이미 공수가 뒤바뀌었고, 남북관계나 북일관계에 대해서도 큰소리치며 속도 조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열세 국면을 한꺼번에 만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언제 어떤 논리와 명분으로 방향 전환을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런데 최근 워싱턴 일각에서 이미 그 전환이 시작됐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그동안 연락사무소 논의는 보통 온건파들의 주장으로 치부됐다. 요즘은 강경파들도 그 필요성에 동의하는 추세다”라고 한다. 즉 위폐나 마약과 같은 국제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서라도 평양에 연락사무소가 들어가야 한다는 온건파의 주장에 네오콘 등강경파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 북미관계 진전의 상징이었던 연락사무소가 이제는 ‘대북 압박을 위한 현장 포스트’라는 복합적 의미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 역시 이 점을 읽고는 있다. 다만 북한은 연락사무소가 들어와 있으면 미국이 군사공격을 못할 것이라는 안보상의 이유 때문에 긍정적이라고 한다. 이미 북미관계는 3차원의 입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평면적 예단은 금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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