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미련 버리고 새 ‘경험 지도’ 만들라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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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대북 정책 8대 과제’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제2차 북핵 위기’라는 환경 속에서 출현했다. 남북관계를 중심에 두고 대외관계의 활로를 열어나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핵문제라는 벽에 부딪혔던 것이다. 적어도 제1기 부시 정부까지는 이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대북 접근정책을 강화하고, 제2기 부시 정부가 이에 맞서 대북 접근 전략으로 바꾼 현 시점에서는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다.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 비중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그것도 경협보다는 정치·군사 회담 위주로 바꿔가는 동안, 중국의 대북 선점 전략이 노골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미 개성 이북의 지하자원 개발 사업권이 중국의 손에 들어갔고, 심지어 남포 앞바다 유전 개발권 역시 중국에 넘어갔다. 이런 현실에 눈을 감은 채 언제까지 한국이 6자회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등의 ‘허영에 들뜬 신기루’에 집착할 것인가.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의 우선 순위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세다. 현장 전문가들의 얘기를 취합해 대북 정책 8대 과제를 정리해보았다. 

1. 6자회담 ‘올인정책’에서 빨리 벗어나라: 6자회담은 이미 북한·미국·중국이라는 세 주역이 벌이는 막전막후의 게임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애초부터 우리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북한·중국의 밀월 구도와 이에 맞서는 미국의 밀고 당기기가 거듭되는 가운데, 이면에서는 북한과 쌍무관계를 심화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중국이 평양에 깊이 발을 들여놨고, 일본은 고이즈미총리가 3차 방북을 준비 중이다. 미국 역시 위폐 문제를 연락사무소 진출의 계기로 활용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여전히 ‘핵문제 해결 전에는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느니 하면서, 6자회담만 쳐다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6자회담은 외교부에 맡기고, 전체적인 외교안보 정책의 중점을 남북관계의 진전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2. 대북 중대 제안을 철회하고, 대신 경협자금으로 활용하라: 북한에 대해 2백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대북 중대 제안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경색 국면에서 4차 6자회담의 물꼬를 여는 데 기여한 면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 고집할 이유는 없다. 북한이 이미 핵 포기의 대가라면 받지 않겠다고 한 마당에, 초기 설치 비용 2조원(약 20억 달러)에 매년 송전 비용 1조원(10억 달러)이라는 막대한 국민 혈세가 드는 이 사업을 왜 붙들고 있는가. 참고로 중국이 북한의 자원과 인프라를 선점하는 데 쓴 비용은 지난해 10월 후진타오 주석이 방북할 때 약속한 30억 달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중국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하고도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는커녕,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할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런 돈이 있다면 대북 경협을 활성화하는 자금으로 돌리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3.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획기적 해법을 제시하라: 이산가족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계선에 와 있다. 남북 분단이 가시화하기 전인 1947년에 20세였던 사람이 지금 78세이다. 대부분의 이산 1세대가 80세 이상의 고령인 것이다. 그들의 자연 수명은 이제 3~5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남은 기간인 2년 안에 뭔가 획기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 정부는 영원히 ‘본질적 민족문제’인 이산가족 문제에서 실패한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동안 정치적 수요에 따라 100명 단위로 만나게 하던 정책에서 탈피해 근본적인 해법을 강구할 시기다.

4. 금강산 관광 이후를 대비하라: 금강산 관광을 햇볕정책의 옥동자로 불렀던 시기가 있었다. 요즘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개성 관광·백두산 관광이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관광 사업이 의미가 있는 것은, 북한이 여전히 미지의 땅으로 남아 있을 때뿐이다. 이미 중국인들이 북한 전역에 넘쳐나고 북·일 수교에 이어 미국의 대북 진출이 맞물릴 경우, 관광 중심의 남북 교류는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관광 사업을 넘어서는 본격적인 교류 협력 방안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5. 개성공단의 한계를 넘어서라: 우리 중소기업 입장에서 보면 개성공단은 이상적이다. 서울에서 가깝고 저렴한 북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도 그럴 것인지 역지사지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 기업이 평양 남포 나진 선봉 등 북한 전역에 무차별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성의 중요성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북측은 자신들이 꼭 필요한 남한의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평양 진출을 권유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개성 이외 지역에 대한 진출 전략을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6. 무조건적인 지원사업보다는 기업 연계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라: 매년 봄이면 대북 비료 지원과 식량 지원이 연례 행사로 되풀이된다. 북한의 식량난에 따른 인도적 지원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과연 남북관계 진전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되는지 회의적인 시각들도 존재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지만 단지 주고 끝나는 일회성 사업에 그치고 있다. 더군다나 지난해 경우 봄철 파종기가 지난 다음 비료를 지원함으로써 주고도 욕먹은 사례도 있었다. 통일부의 경직된 사업 방식에서 빚어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단일 품목에 대한 단순 지원보다는 북이 꼭 필요로 하는 경공업 제품을 지원함으로써 남한 중소기업의 생산 활동에 보탬을 주는 방식 등, 일방적 지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식량 지원의 경우 앞으로 중국에서 많은 양이 들어갈 가능성에 대해서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7. 한건주의를 버리자: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경협의 문제점으로 대형 프로젝트 중심의 한건주의가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당시 현대가 금강산 사업을 앞세워 이 분야에 뛰어듦으로써, 그 이전부터 활동했던 많은 중소기업이 죽어 나가기도 했다. 그 결과 남북관계는 현대라는 외줄 선로 위에 위태롭게 매달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더 이상 한건주의에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하고 있듯이, 많은 기업들이 북에 진출해 활발하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정부는 뒤에서 여건을 마련해주고 적극 후원하는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8. 우리만이 할 수 있는 협력 프로젝트를 만들자: 최근 중국은 대안친선유리공장을 북·중 경협의 상징으로 부각시켜 왔다. 이 공장은 3천만 달러가 채 안되는 비교적 적은 규모의 투자 사업이지만, 인프라와 자원 개발 그리고 건설이라는 중국의 대북 진출 전략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전략으로 북에 진출할 것인가. 우리가 능히 감당할 수 있고 남과 북이 상생할 수 있는 사업 분야를 빨리 발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과거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공장 경영의 노하우를 전함으로써 큰 도움을 주었던 선례를 적용한다든지, 동해안이나 서해안의 어장 공동 개발 사업, 종자 개량을 통한 농업 협력 등 다양한 협력 사업을 토대로 ‘경협 지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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