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학교’ 좋기는 한데…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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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대안 될 가능성 엿보여…학교 과외화·학원 반발 등이 난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이 반짝였다. 다른 때 같으면 집에서 하릴없이 뒹굴었겠지만, 학교라서 달랐던 것일까. 2월1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종로구 효제초등학교 컴퓨터교실에서  컴퓨터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던 6학년 정윤재군의 손놀림이 바빴다. 윤재는 “평소 다니던 곳이기 때문에 편하다. 아는 친구들도 많아서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방학 때는 평소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자 “집에서 뒹굴면서 지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윤재 옆에서 마우스를 만지작거리던 최규민군은 방학 때 학교에 나오기 위해 다니던 보습학원을 끊었다. 규민이는 “학교에서는 싼 값에 컴퓨터를 배울 수 있어 좋다”라고 반응했다. 하지만 방학이 끝나면 아무래도 다시 학원을 다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효제초등학교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할 계획인 교육부가 우선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서울시교육청 지정 방과 후 교육 활동 우선 시행학교’이다. 이 학교 홍순길 교장은 “개학을 한 뒤에도 방과 후 학교가 운용되는 오후 4시30분까지는 학생들이 학원에 안 가도록 학교에서 책임질 생각이다. 질 높은 강사를 섭외하고 프로그램을 다양화해 방과 후 학교의 전형을 창출하겠다”라며 의지를 보였다.

‘방과 후 학교’는 지금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특기·적성 교육, 수준별 보충학습 등을 통폐합한 개념이다. 저소득층·맞벌이 부부들의 사교육 수요를 해소하고 학교가 자율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사회의 중심으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다. 교육부가 올해부터 적극 추진 중인 이 정책은 참여정부의 교육 복지 정책과 맥락이 닿아 있다. 지난 1월26일 ‘방과 후 학교 정책 토론회’를 주재한 노무현 대통령이 “방과 후 학교 정책을 꼭 성공시켜야 한다.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일차 목표로 하고 평생 학습까지 영역이 확대되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2백11억원을 투입한 당국은 올해 3배 이상 늘어난 7백45억원을 이 사업에 쏟아 붓는다. 교육부는 ‘빈곤의 대물림을 방지하고,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며, 교육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라고 목적을 밝혔다. 도시 저소득 지역, 농어촌 등에서 학생 18만5천여 명이 올해 이 혜택을 받게 된다.

 
2004년 12월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의 36.3%가 방과 후에 보호자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나 홀로 방치’는 결식·학습 부진·범죄 노출 따위로 이어져 급기야 ‘빈곤의 대물림’ 현상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양정호 교수(성균관대·교육학)는 사교육비 빈부 차가 8.6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참여정부가 이를 타개할 대안으로 ‘방과 후 학교’를 내놓은 것이다.

효제초등학교 양 민 교감은 “저소득층·맞벌이 부부들에게 ‘방과 후 학교’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 학교의 경우 학부모의 90%가 맞벌이를 하고 있어 반응이 뜨겁다는 것이다. 오카리나·플롯·논술·생활영어 등을 가르치는 ‘특기 적성 교육’, 컴퓨터·영어·댄스스포츠 등을 가르치는 ‘리더스 캠프’를 열었는데 모두 5백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특기 적성 교육 참가자는 과목당 5만원, 리더스 캠프 참가자는 하루 1천8백원의 식대만 부담했다. 양교감은 “시작하면서 인근 5개 초등학교에 8천장의 홍보지를 뿌렸다. 처음이라서 그렇지 앞으로 널리 알려진다면 훨씬 많은 학생들이 참가할 것이다. 학부모들이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고, 가격이 학원에 비해 싼 데다가 학교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인천 논곡중학교는 지난 1년간 교육부가 ‘정책 연구학교’로 지정해 ‘방과 후 학교’를 운영했다. 특징적인 것은 학부모회가 방과 후 학교를 운영했다는 점이다. 송영기 교감은 “학부모회가 주체가 되면서 선생님들의 업무량이 줄었다. 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도 높아졌고 학생들의 성적도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라고 평가했다.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이 학교 학부모들의 70%는 맞벌이 부부이다. 이 학교 조사에 따르면, 이 가운데 80%는 가정에서 아이를 교육시킬 수 없는 처지였다. 이들 가정의 아이들 대부분은 학원에도 못 가고 방치되고 있는데, 방과 후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방과 후 학교’는 이들에게 열린 새로운 공간이었다.

지난해 11월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조사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방과 후 학교’ 실시 이후 사교육비 지출액이 그 전과 대비해서 전체적으로 월 2천9백만원, 연 3억5천여만원이나 절약되었다. 학생들의 학원 수강자 숫자는 절반 가까운 48.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사교육비 감소 효과가 크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방과 후 학교 실시 후 학원 수강자 48% 줄어

‘방과 후 학교’와 관련해 제기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입시에 온 신경이 쏠려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방과 후 학교’가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장에서도 이 문제는 절실했다. 도외시할 수 없다는 것이 대세였다. 교육부 얘기대로 학습지나 문제풀이식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학교 과외’가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공교육이 사교육에 자리를 내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

 
효제초등학교 홍순길 교장은 “고민이다. 그러나 학부모나 학생들의 그런 요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이번 방학 프로그램 가운데서도 논술이 큰 인기를 끌었다. 개학 이후에는 등수는 아니지만 평균과 비교해 학생들의 점수를 매겨 학부모들에게 공개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방학 동안 ‘수학사랑’ ‘논술’ ‘영어’ 강좌를 진행했다.

논곡중학교는 인하대학교 사범대학과 협정을 맺어 아예 과외를 학교로 끌어들였다. 학생들에게 자율적으로 ‘학습 동아리’를 만들게 해서 대학생들이 국어·영어·수학을 가르치게 한 것이다. 학생들은 3만원을 내고 한 달에 12시간씩 학습 동아리 활동을 했다. 이 학교 안용균 선생님은 “학습 동아리당 학생을 8명 정도로 구성했는데, 2만원짜리 상품권을 주며 자율적으로 동아리를 짜도록 독려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돈을 벌면서 보람도 느끼고 학생들은 싼 값에 과외를 받아 누이 좋고 매부 좋았던 셈이다.

이처럼 ‘방과 후 학교’ 교사들은 대학생에서 현직 교사, 학부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운영 주체도 학교, 학부모회, YMCA 같은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특성이 있다. 교육 장소는 대개 학교지만, 농촌 지역의 경우 마을 회관에서 가르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강원도 정선에 있는 정선고등학교의 경우 중국어캠프에 참가한 1백80여 명 가운데 학생은 30명에 불과하다. 이 학교는 학교가 학생들만이 아닌 지역 주민까지 아우른 사회 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아 가는 초기 단계를 보여준다. 이미 웅진, 대교 등 일부 회사들은 학교가 장기적으로 지역 사회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학교 마케팅’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방과 후 학교’를 본격화하면, 그럴수록 역풍도 거세질 전망이다. ‘방과 후 학교’의 수익자 부담 원칙을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학원들의 반발로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다. 전국보습학원연합회 조영환 회장은 “수백 만명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학원은 물론 과외교습소 교습자까지 궐기하면 파장이 클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단 김영삼 교사는 “정부가 학생들에게 직접 쿠폰을 주어 비영리 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학교를 선택해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바우처 제도(Voucher·자유 수강권)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 제도는 학교 위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따져볼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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