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크게 내달리는 ‘GM대우’
  • 이철현 기자 · 안경원 인턴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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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정리해고자 전원 복직 결정…해고 기간 경력으로 인정
 
강두순씨(39)는 지난 1월 초 등기 우편을 받았다. 발신자 난에 ‘GM대우자동차’라고 적힌 하얀 봉투 안에는 복직 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복직 통고서를 받아든 강씨는 대우자동차(이하 대우차)로부터 정리해고 통지서가 담긴 노란 봉투를 받았던 2001년 2월을 떠올렸다. 유난히 춥던 그해 겨울,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기술연구소의 신차개발실에서 근무하던 강씨는 해고 통지서를 받자마자 다른 자동차 업체로 전직하는 것을 모색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아내와 함께 어린 두 자녀를 보고 있자니 그냥 놀 수도 없었다. 퇴직금으로 논을 빌려 겨울 한철 스케이트장을 운영했고 청소 대행 회사를 차렸으며 음식 장사까지 해보았지만 자동차 개발에만 몰두하던 엔지니어에게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강씨는 지금 GM대우차 부평공장 프레스부 생산관리 완성2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해고 전에 일했던 신차개발실이 아니어서 두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생산관리 부서원들과 한 달 정도 함께 어울리다 보니 적응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강씨는 “말이 5년이지 10년쯤 지난 듯하다. 그동안 가정 불화도 조금 겪었지만 복직을 계기로 가족이 생기를 되찾아 기쁘기 그지없다”라고 말했다.

강씨처럼 2001년 대우차로부터 정리해고를 당한 생산직 노동자 전원이 올해 4월 안에 복직한다. GM대우차가 지난해 10월 인천대우차를 인수하면서 전원 복직을 결정한 것이다. 당시 생산직 노동자 1천7백50여 명은 회사 경영이 정상화하면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을 믿고 직장을 떠나야 했다. 지금까지 복직한 해고 노동자는 1천1백 명가량. 나머지 6백여 명 가운데 희망자에 한해 재고용한다. 닉 라일리 GM대우차 사장은 “올해 상반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부평공장에서 생산하게 되면 대규모 채용이 이루어질 것이다. 과거 정리 해고된 직원을 우선 재고용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복직 대상자 찾으려고 신문 공고까지 내

GM대우차는 과거 대우차 경영진이 정리 해고 노동자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서 생산설비 가동률이 높아지자 순차적으로 재고용자 수를 늘리고 있다. 복직 대상자가 주소를 이전해 연락이 되지 않으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연락처를 알아냈고 복직을 알리는 신문 공고까지 냈다. 더욱이 해고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했다. 강두순씨는 5년 동안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한 해 2호봉씩 10호봉을 인상해 연봉을 책정했다. 이것은 노동조합이 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회사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근도 GM대우차 노무관리 담당 상무는 “비용이라는 면에서만 보면 신입 사원을 뽑는 것이 훨씬 낫다. 하지만 옛 식구들과 함께 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닉 라일리 사장을 비롯해 최고 경영진이 결단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정리해고자 복직에는 재교육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신입사원과 마찬가지이지만 연봉 수준은 신입사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직자들이 높다. 또 대학생을 자녀로 둔 노동자의 경우 대학 등록금 70%를 보조해야 하는 등 신입사원에게는 발생하지 않는 복지 비용도 든다. 

강씨처럼 늦게 복직한 이들과 달리 초기에 복직한 사람들은 마음 고생이 심했다. 노인섭씨(51)는 해고된 지 1년10월 만인 2002년 12월 복직 통고서를 받았다. 노씨와 함께 1차 복직 통고를 받은 이는 3백명이었다. 복직한 첫 달은 신입사원에 해당하는 월급을 받아야 했다. 둘째 달부터 원상 회복되었지만 당시 노씨 마음을 편치 않게 했던 것은 복직자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이었다. 노씨는 “정리해고자가 회사가 어려워지는 데 기여한 것처럼 비추어지면서 남아 있던 동료와 껄끄러운 관계가 3~4개월 유지되기도 했다. 6개월쯤 지나니 동료와 어울릴 수 있었고 지금은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에는 인색

GM대우차는 주야 24시간 교대 근무에다 철야와 특근까지 하다 보니 과거 어느 때보다 근무 분위기가 좋아졌다. GM대우차는 지난해 8월부터 기아자동차(이하 기아차)를 제치고 국내 자동차 업체(생산 기준) 2위에 올라섰다. 지난해 생산 대수가 1백15만8천 대로 2004년보다 28.6% 늘었다. 내수 판매는 형편없지만 미국과 중국 수출 물량이 크게 늘었다. 칼로스와 젠트라가 시보레 아베오로, 라세티가 옵트라, 매그너스와 토스카가 에피카로 미국과 중국 시장에 수출되면서 지난해 8월부터 기아차를 3위로 밀어낸 것이다(월별 수출 물량 기준).

생산 시설 가동률이 높아지자 GM대우차는 연구개발·디자인·구매·생산·지원부서 등 전 분야에 걸쳐 지금까지 3천2백여 명을 채용했다. 올해 상반기에 소화해야 할 SUV 생산에 들어가면 추가 채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남은 정리해고자를 전원 복직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에는 경력직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발생했다는 면도 없지 않다.

그런데 GM대우차 부평공장에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생산 라인으로 돌아오는 복직자들을 웃는 얼굴로 맞이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있다. 노동 강도는 비슷하지만 형편없이 낮은 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들이다. 이들은 회사가 옛 직원을 복직시키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일에는 인색한 회사에 서운하다.

 
노인섭씨가 일하는 부평공장 생산관리1부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20%나 된다. 생산관리1부의 전체 직원이 90명이므로 18명가량이 비정규직 사원들이다. 노씨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업무도 뚜렷이 구분된다. 노씨가 부품을 관리하거나 공구를 수리하는 동안 비정규직 사원들은 부품을 나른다. 조근도 상무는 “도급직(비정규직) 사원 가운데 일부는 근무 성적에 따라 정규직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바뀌는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은 카스트 제도인가’라는 불만을 제기한다. 한번 정규직은 정리해고자라고 하더라도 복직해서 정규직이 되지만, 비정규직 출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비정규직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GM대우차가 정리해고자 복직이라는 환영할 만한 선례를 남겼지만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라는 면에서는 ‘2%’ 부족하다는 평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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