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중대 제안’으로 6자회담 기 살려라
  • 추미애 (전 국회의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6.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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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싸고 북한 설득 쉬운 화력발전소 건설 제안할 만

 
난해 한국 정부가 이른바 ‘중대 제안’을 들고 나오면서 이루어진 9·19 공동 합의에 우리 국민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크게 걸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6자회담 테이블 위의 메뉴가 잘 정돈되는 듯했는데, 그 후 인권·위폐 문제 등 다른 메뉴들이 끼어들면서 북핵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서 또 다시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 인권과 위폐 문제는 대북한 압박 수단으로 미국이 제기한 문제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는 다른 측면도 있다. 북한이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하는 북한의 인권 문제는 북한 자체, 북한 사회 내부의 문제이다. 외부에서 잘못 개입하면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게 될 뿐이다.  북한 인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과거 역사에서 경험했듯이 평화 없이는 인권도 지키기 어렵다. 안보 논리가 인권 억압의 구실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위폐 문제는 미국의 화폐 주권을 침해하는 국제 범죄와 관련된 사법적 문제이고 피해국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북한이 자신의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고 거부할 수 있는 인권 문제와 다르다. 그런데 사법적 문제를 다루는 데는 증거법상·절차상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며 상대국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절차적 접근 없이 경제 제재에 나선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다.

위폐 문제와 6자회담 분리해 다뤄야

이는 미국이 6자회담과 위폐 문제를 분리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위폐 문제를 6자회담 압박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한다. 북한도 최근 북·미 접촉에서 6자회담과는 별도로 위폐 문제를 다루기 위한 비상설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진일보한 제의를 하고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이 결제 계좌 동결 같은 경제 제재를 풀지 않는 한 6자회담을 거부한다며 위폐 문제를 6자회담과 연계하는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위폐 문제는 정치·군사 회담 성격을 띤 6자회담과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른 사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6자회담과 위폐 문제, 이 두 개의 테이블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즉 6자회담과 별도로 위폐 문제를 다루는 테이블을 마련해 분리하되 병행해 진행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은 위폐 문제에 대한 명확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경제 제재를 유예하고 감시가 가능한 미국 내 은행과의 거래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위폐 문제 조사에 대해 미국측에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하고 6자회담에 조속히 복귀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북·미 양자가 무원칙하게 메뉴를 변경하고 추가하는 변덕을 부리고 있는 사이에 한국 정부의 ‘중대 제안’도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참가국들도 6자회담의 모멘텀을 이어갈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로서는 위험한 공백기라 할 수 있다.

이런 교착 상태의 지속은 외부 세계로 나가지 못하는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 의존도를  가중시켜 남북한 화해 협력을 위한 우리의 인내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도권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더욱이 북핵 문제가 장기간 미제로 남는다면 북핵의 위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질 것이며, 한반도는 동북아의 화약고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북핵 문제는 미국과 중국에는 하나의 외교 사안에 불과하지만 우리로서는 평화 정착과 민족 생존의 문제이다. 

우리는 북핵 문제 해결의 촉진자로서, 그리고 동북아 안정의 균형자로서 북·미 당사자에게 9·19 공동성명의 합의 사항에 대한 실천을 촉구해야 한다. 북·미 양자가 이러한 회담의 목표와 성격을 편의적으로 변질시키려는 것을 단호하게 지적함과 동시에, 우리의 외교적 지렛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9·19 공동성명의 모호성부터 풀어내야

이를 위해서는 발표되자마자 많은 갈등을 초래한 9·19 공동성명이 가지고 있는 모호성을 먼저 풀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9·19 공동성명의 모호성은 북·미가 서로 상대방의 이행 의무가 먼저라고 주장하는 두 가지 쟁점 사항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다. 즉 핵 프로그램 폐기와 경수로 추가 건설에 따른 평화적 핵 이용권 문제, 선 핵 폐기와 선 안전보장 간의 대립되는 주장 등에 관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풀어야 할 중요한 난제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두 가지 핵심 쟁점에 우리 정부의 ‘중대 제안’이 바로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중대 제안’은 중단된 회담을 재가동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북한이 아직까지 응답하고 있지 않고 미국도 그 실효성에 기대를 걸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대 제안’에 따른 직접 송전 방식과 경수로 추가 건설은 우리 국민에게는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또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확보해놓은 경수로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북한과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 핵의 평화적 이용권을 용인해야 하는 미국에게는 막대한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선택이다. 그렇다고 신뢰를 기본으로 강조한 우리가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중대 제안’을 폐기하자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정부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 ‘중대 제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국내에서 ‘중대 제안’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북 송전과 경수로 건설이라는 이중 지원의 문제가 지적될 무렵 필자는 다른 기회에 화력발전소 건설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화력발전소 건설은 북한의 인력과 석탄 자원을 이용할 경우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우리 국민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중·소형 발전 시설이 적합한 북한의 전력 체계에도 맞으며, 북한 내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대북 설득력이 있다. 미국으로서도 핵의 완전한 폐기와 핵의 평화적 이용권에 관한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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