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쳐진 자’들 보듬는 예술가들의 아우성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6.03.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술가·문인 들, 미군 기지화하는 대추리에서 문화 행사

 
‘문무인상’이 들어선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황새울 벌판(왼쪽 큰 사진). 하늘은 파랗고 높았다. 대추리는 미군 기지가 확장되면서 삶의 터전이 없어질 위기에 놓인 땅. 설치예술가 최평곤씨는 왕의 무덤을 지키는 문인과 무인이 대추리 들판을 지켜달라는 바람으로 ‘문무인상’을 세웠다. 

계획대로라면 대추리와 인근 도두리는 올해 강제 수용된다. 기존 평택 미군 기지 4백57만 평에 대추리·도두리 일대 땅 3백49만 평을 덧붙이기 때문이다. 대추리 1백40여 가구는 자기 땅에서 쫒겨날 판이다. 이미 올해 초부터 희망을 잃은 30여 가구가 마을을 떠났다.

이런 소식을 듣고 민족미술인협회, 민족예술인총연합 등에 소속한 문화예술인들이 대추리로 모여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동네가 황폐해져갈 무렵이었다. 이들은 대추초등학교 유리창에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 빈집 벽에 그림을 그렸다. 설치미술가 최병수씨는 영농 창고에 ‘날아가는 경운기’ 솟대를 세웠다. 정태춘씨 등 가수들은 주말마다 <비콘>(비닐하우스 콘서트)을 열었고, 시인 이기형·신현림 씨 등 문학인들은 시를 낭송하고, 벽시를 썼다. 사진가 노순택씨는 아예 대추리에 황새울 사진관을 열고 마을 주민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대추리(大秋里)는 ‘큰 가을 마을’이다. 해마다 농사가 잘 되고, 풍년이 든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주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이 합심해 만든 ‘마을 예술’에는 땅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마을 사람들이 내건 현수막에는 ‘올해도 농사 짓자’라고 적혀 있었다. 바람이 매서웠고, 깃발은 펄럭였다. 내쳐진 자들의 아우성처럼.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