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과 환희 교차하는 연애의 이중성
  • 이형석 (헤럴드 경제 기자) ()
  • 승인 2006.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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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 <달콤, 살벌한 연인> 감독:손재곤 주연:박용우·최강희

 

그저 그런 사랑 타령말고 뭔가 짜릿한 연애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살인자’와의 ‘달콤’한 연애는 어떨까. 근사한 레스토랑에 마주앉아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혹시 그 다음 접시 위에 올려지는 것은 내 뱃살이 되지 않을까 상상하는 B급 호러 데이트. 매일 목숨을 내걸고 하는 연애. 그것이야말로 안전띠 풀린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짜릿하지 않을까.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은 환희와 악몽이 교차하는 연애의 이중성을 극단적인 설정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작은 이렇다. ‘어떻게 혈액형이 사람 성격하고 관련 있다는 헛소리를 온 나라 여자들이 믿을 수 있는 겁니까? 내가 그런 거 다 맞춰 주면서 유치하게 놀아야 됩니까. 차라리 혼자 지내는 게 낫지?’라고 침 튀기며 떠드는 지지리도 못난 남자(박용우 분). 서른 다섯살이 되도록 연애 한번 못해본 쑥맥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고지식하기 짝이 없고 유머 감각 ‘제로’인 그가 같은 오피스텔에 이사온 여자(최강희 분)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녀는 밤낮 혈액형 타령과 연예인 스캔들에나 골몰하고 있는 속물들과는 다르다. 이삿짐 틈새에 유명 화가 화첩과 미술 전문 서적을 얌전히 끼워놓는 지성과 몬드리안의 ‘콤포지션’을 벽에 걸어놓는 ‘센스’를 가진 귀엽고 친절한 그녀다.

친구들의 처방과 조언 끝에 어렵사리 첫 데이트와 키스에 성공하고 두 남녀의 연애가 알콩달콩 무르익어갈 무렵, 낯선 남자가 그녀를 방문하고 그녀를 둘러싼 엄청난 비밀이 하나 둘씩 밝혀진다. 그녀는 사실 도스토예프스키와 카레이스키를 헛갈릴만큼 무식한 것은 물론이고, 눈 한번 깜빡 안하고 잔인한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이었던 것이다.

이미 고삐를 놓아버려 엄청난 가속도로 치닫는 사랑의 힘과 죽은 사람 살릴 수 없듯 회복 불가능한 현실 사이에서 이들의 연애는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랑과 살인이라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소재로 여러 장르를 이종교배했지만 <달콤, 살벌한 연인>의 미덕은 영화 속 모든 딜레마들이 연애 과정에서 맞딱뜨리게 되는 보편적인 상황이라는 데 있다.

박용우·최강희의 매력 보는 재미 ‘쏠쏠’

대개 연애는 서로에 대한 무한한 기대와 환상, 신뢰로 출발해 의심과 탐색기를 거쳐 실망과 포기 단계에 이르렀다가 ‘그래도 너 뿐’인 화해의 국면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밟는다. <달콤, 살벌한 연인>이 구사하는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의 능란한 변주는 연애 자체가 때로 행복한 꿈이고 때로 악몽이며 때로 한편의 추리극이라는 데서 현실성과 설득력을 얻는다. 결국 이 영화에 따르자면 연애란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욕구와 감출 것은 최대한 감추고 싶은 내숭 사이의 힘겨루기이며 결국 ‘비밀’을 둘러싼 한편의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다.

 

그렇다면 결혼은 미스터리의 행복한 대미일까, 한층 더 잔인한 스릴러의 새로운 시작일까. 관객들은 아마도 이 영화의 후일담으로 <장미의 전쟁>이나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같은 영화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여러 장르를 맛깔스럽게 요리한 감독의 연출력과 재치 넘치는 대사뿐 아니라 두 배우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은 영화다. 각각 12년차와 11년차인 배우 박용우와 최강희는 이 작품으로 브라운관에서 충무로에 연착륙했음을 입증했다. 35년 평생 여자를 모르고 지내다 온갖 호들갑을 다 떠는 고지식한 남자 역의 박용우는 <혈의 누>에서의 차가운 정극 연기뿐 아니라 코미디 영화에서도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단팥빵>으로 열혈팬을 얻은 최강희는 시종 무표정하지만 새침한 제스처로 사랑스러운 악한을 연기해 여느 20대 여우들과는 다른 그녀만의 ‘특별한 매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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