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그림은 멀리서 보라”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2.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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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經塾 세운 ‘마쓰시타’의 3원칙…정경분리․제조업 중시․기술제일

 鄭周永 대표의 국민당이 총선에서 성공을 거두는 등 재벌의 정치 참여가 국민적 관심의 초점이 된 가운데 대우그룹에서 정치지도자 양성기관을 설립하겠다는 구상을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이를 계기로 일본 마쓰시타 정격숙에 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혼다 자동차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를 소재로 한 책이 일본 독서계를 휩쓸고 있다. 소니 명예회장 이부카 마사루가 그를 회고한 《내 친구 혼다 소이치로》는 이미 30만부를 넘어섰고 혼다의 일생을 그린 다른 두 종류도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했다.

 작년 8월 타계한 혼다를 소재로 한 책이 동시에 3권이나 불티나게 팔리는이유는 두가지이다. 기술자 출신인 혼다는 생전 “종이쪽지(증권)나 토지를 사고팔아 돈 버는 회사는 기업이라 할 수 없다”며 ‘제조업 제일주의’를 표방했던 기업가로서, 그의 제조업중시 철학이 최근 재평가되었다는 것이 일본 출판업계의 분석이다.

 ‘혼다붐’의 또다른 원인은 혼다가 정치와는 무관한 기업가였다는 점이다. 혼다는 생전 정치가뿐만 아니라 관료와의 접촉도 극력 회피했다. 혼다자동차가 이들의 압력으로 한때 회사존폐의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60년대초 일본 통산성은 4륜자동차 생산에 뛰어든 혼다자동차에 도요타나 닛산과 합병하라는 압력을 거세게 넣었다. 그러나 ‘천재 기술자’ 혼다는 독창적 기술개발로 이 압력을 물리치고 혼다를 세계적인 회사로 키워냈다. 그 뒤 혼다는 아예 사훈에 “관청에 기대지 말고 정치와 관계맺지 말자”고 못박았다.

정치참여 않고 인재양성하며 개혁 시도
 일본의 전후 경영자 중에서 혼다와 쌍벽을 이루는 사람이 마쓰시타전기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이다. 이들은 성장과정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모두 기술제일주의를 표방하고 작은 가내 공장을 세계적 기업으로 만들어 낸 기업가이다.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한 혼다에 비해 마쓰시타는 국민학교 4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였다. 이들은 일찍이 집을 떠나 객지에서 직공과 점원으로 고생한 끝에 각각 22살에 독립한 것도 비슷하다.

 혼다보다 2년 먼저 세상을 떠난 마쓰시타도 생전에 정치가나 관료와는 무관한 기업가였다. 그는 전쟁 전 오사카시 구의회 의원을 잠시 지냈다. 패전 후 자민당으로부터 참의원 전국구 입후보를 끈질기게 권유받았으나 “경제인이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신념에서 이를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60년대 무렵 일본의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서 ‘산업당’을 만들자는 제의가 있었으나 마쓰시타는 정치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나는 사업가가 천직이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쓰시타가 정치가를 멀리한 것은 혼다처럼 뼈아픈 체험을 겪었기 때문이다. 전후급성장 기업인 혼다자동차에 비해 마쓰시타전기는 이미 전전부터 재벌급 지위를 누렸던 기업이다. 군용비행기와 군함을 건조하는 ‘전쟁 수행 기업’으로 변신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패전직후 마쓰시타전기는 미점령군사령부로부터 기업해체 명령을 받았다. 아울러 마쓰시타도 공직추방령에 의해 사장자리에서 쫓겨났다. 이같은 시련을 겪었던 마쓰시타는 이후 “정치가와 그림은 될 수 있는대로 멀리서 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반면 마쓰시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일본의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소리를 드높였다. 사장자리에서 쫓겨난 그는 자기 사무실 한 모퉁이에 PHP연구소를 설립해 기관지에 ‘일본의 정치적 빈곤’을 비판하는 글을 연달아 발표해 정치개혁을 촉구했다. 그는 “국가경영은 기업경영과 마찬가지로 ‘번영’이 최대목표이다. 이러한 번영을 가로막는 것은 일본의 정치․행정의 빈곤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68년 창업 50주년 기념식전에서 정치적 빈곤을 타파하기 위해서 ‘쇼와유신’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해 ‘쇼와의 우국지사’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했다.

 마쓰시타의 이러한 번영철학과 정치적 빈곤에 대한 우려는 결국 78년의 <마쓰시타 정경숙>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마쓰시타는 그 경위를 이렇게 밝혔다.

 “패전 직후의 혼란기에 도덕심 향상을 목적으로 PHP운동을 시작한 이래 정경숙과 같은 인재양성기관 설립이 최근 30년간의 염원이었따. 물질적 번영 속에 사회 혼란이 가속 되고 있는 것은 정치적 빈곤에 그 원인이 있다. 따라서 국가 백년대계를 짊어질 인재양성이 시급한 과제라는 점을 절감했다.”

대화․협조 중시해 일본식 경영 정착시켜
 자신이 직접 정계에 진출하거나 정당을 만들지 않고 오직 후진을 양성함으로써 정치개혁을 실현해 보겠다는 ‘마쓰시타식 정치참여’도 어느덧 12년이라는 실험기간이 지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마쓰시타 □’의 도장인 마쓰시타 정경숙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으며 그가 배출한 문하생들은 현재 일본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마쓰시타 정경숙은 도쿄역에서 전철로 한시간 거리인 찌가사키라는 해변도시에 자리잡고 있다.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학교라기보다는 작은 연구소와 같은 느낌을 준다. 안내를 맡은 가이 노부요시씨는 총부지는 6천1백평이고 연수실 기숙사 등 관련시설이 1천9백평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정문을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여명의 탑’. 생전 마쓰시타는 세계의 번영은 돌고 돌아 결국 21세기는 아시아가 번영할 차례이나 그 중심은 일본이 될 것이라는 게 지론이었다. 그의 지론은 숙생(연수생)에게 주지시키려고 세운 것이 바로 이 탑이다. 숙생들은 전자합성음으로 울려퍼지는 종소리, 즉 그의 번영철학을 매일 세차례씩 듣는다.

 본관에 걸린 마쓰시타의 대형초상화도 방문자들의 발길이 멎는 곳이다. 마쓰시타전기의 노동조합이 마쓰시타에게 직접 기증했다는 일화가 있기 때문이다. 마쓰시타는 대화와 협조를 중시하는 일본적 노사관계를 정착시킨 경영자로도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패전 직후 미점령군사령부의 권장으로 마쓰시타전기에도 노조가 결성됐다. 그러자 마쓰시타는 노조가 초청도 않았는데 결성장소에 불쑥 나타나 격려의 인사말까지 자청해 했다.

 노조도 이러한 마쓰시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쓰시타가 공직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노조가 매일같이 미점령군사령부를 찾아가 건의한 덕택이었다. 그후 마쓰시타는 안정된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탁원한 경완수완을 발휘하여 마쓰시타전기를 세계최대 가전업체로 성장시켰고, 그래서 그에게는 ‘경영의 가미사마(神□)’라는 칭호가 붙어졌다.

 마쓰시타 정격숙이 정식으로 문을 연 것은 80년 4월. 마쓰시타의 기부금 70억엔 중 20억엔이 건설 비용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50억엔은 재단기금으로 적립됐다. 나중에 마쓰시타전기가 50억엔을 더 기부하여 현재는 1백억엔의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대판 서당을 세우겠다는 마쓰시타의 정경숙 구상에 당시 일본 국내의 반응은 뜨거웠다. 1기생 30명 모집에 9백여명이 몰려 3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는가 하면, 18세 이상 25세 미만의 연령제한에 불구하고 78세 노인까지 응모했다고 한다. 일본언론도 ‘경영의 가미사마’가 ‘서당의 훈장’으로 변신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어떤 신문은 이 학교를 현대판 ‘쇼카손주쿠(□下□□)’라고 평하고, 일본의 21세기를 짊어질 ‘엘리트 양성학교’로 발전할 것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쇼카손주쿠’라는 것은 19세기 일본의 개화기 때 요시다 쇼인(吉田 □□)이라는 국수주의자가 세운 서당으로 이토 히로부미 등 일본근대화 주역들을 길러낸 곳이다.

 1기생으로 선발된 숙생은 모두 23명. 논문상식 영어시험 등 1, 2차시험을 거쳐 마쓰시타의 최종면접시험을 통과했다. 마쓰시타는 입학후 이들을 불러모아 이렇게 선언했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처음에는 교실을 없애려고 했다. 여러분들의 참교실은 이곳이 아니고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의 방침대로 마쓰시타 정경숙은 ‘□□□□’이 연수의 기본방침이다. 5년간의 재숙기간 동안 자신의 진로는 자신이 설정해 노력하라는 얘기이다.

 교무주임 죠코 아키라씨는 “개학 후 5년간의 일관교육방침에는 변함이 없으나 그동안 교과과정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밝혔다. 현재의 교과과정은 기초과정 1년에 본과과정 4년으로 나뉘어 있다. 그가 안내해 준 기초과정 숙생들의 수업광경은 대학원의 그것과 똑같았다. 이들에게는 1년간 정치․경제․국제 관계 등의 특별강좌가 실시되며 영어도 필수과목이다. 마쓰시타의 문하생으로 입문하기 위해 그들은 입학 전후 마쓰시타의 이념, 21세기 지도자의 조건 등도 반복해서 학습해야 한다.

 그밖에도 이들에게는 지옥훈련과 같은 것도 실시된다. 매년 11월 초순에는 1백km 행군훈련을 거쳐야 하며, 마쓰시타의 유일한 취미였다는 □道실습이 주 1회씩 실시되는 등 정신수양훈련도 빼놓을 수 없는 과목이다.

 기숙사생활이 원칙인 이들이 받는 월연수자금은 17만엔. 이 돈으로 식비 기숙사비 등을 별도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여유있는 생활은 아니다. 게다가 □□□□이 원칙인 본과에 진급하기 위한 엄격한 심사가 기다리고 있어 1년간의 기초과정을 즐길 여유도 없다. 대개 입학 후 11개월이 지나면 본과 진급을 위한 심사회가 열린다. 향후 1년간의 연구활동계획서를 제출해 합격판정을 받아야만 펠로우라고 부르는 본과숙생으로 선정되어 연수자금을 두배로 늘려받을 수 있다. 불합격자는 두 번 더 도전할 수 있으나 끝내 합격판정을 못받는 경우에는 그로써 본과가 수료되므로 퇴교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아직 1기생 1명
 매년 이러한 엄격한 심사회를 거쳐 지금본과 3년생으로 있는 혼다 히라노(27)씨는 장래 꿈이 정치가이다. □□□□원칙에 따라 지금 자신이 선정한 ‘일미간 감정마찰의 극복’이라는 연구테마에 열중하고 있다. 호카이도 출신인 그는 작년 고향의 국회의원 사무소에서 6개월간 무보수사무원으로 자원근무하여 정치수업을 쌓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큰 불안감에 휩싸인다고 했다. 졸업 후 취직자리를 학교에서 마련해 주는 것도 아니고 정치가로 나선다 해도 선거자금을 지원해 주는 것도 아니어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앞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경숙을 거쳐간 모두가 지녔던 공통점이다. 설립 당시 ‘엘리트 양성학교’ ‘마쓰시타그룹 간부양성학교’라는 소문이 나돌았던 것처럼 입학생들은 막연히 마쓰시타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 입학했던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마쓰시타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 자신의 길은 자신이 개척하라는 뜻이었다. 마쓰시타는 불안해 하는 학생들을 이렇게 꾸짖었다. “너희들은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 여기서 5년간 열심히 공부하면 세상이 너희들을 못본 체 할 리가 없다.”

  마쓰시타 정경숙은 12년간 1백28명(그중 여성 12명)을 배출했다. 현역 정치가나 정치가지망생이 44명, 실업계(취직 포함)로 진출한 사람이 43명으로 정․재계 진출자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마쓰시타의 문하생 중 첫 정계진출자는 1기생 고바야시 신야씨로 83년 4월에 히메켄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일본의 정치개혁을 외치며 입후보, 당당히 2위 당선을 기록했다. 마쓰시타 자신은 이때 일절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으나 당선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현재 자민당 소속 2선의원인 아이자와 이치로씨도 마쓰시타 정경숙 1기생 출신이다. 하지만 그는 조부․부친이 국회의원을 지낸 이른바 ‘세습의원’. 엄밀히 따지면 ‘마쓰시타□’ 정치가는 아니다. 그밖에도 현재 21명이 지방의회 진출에 성공해, 마쓰시타 문하생의 정계진출이 날로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이다. 마쓰시타는 생전 이들 앞에서 “2할은 선거구 관리에 신경을 쓰고 나머지 8할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쓰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일본의 선거는 잘 알려진 대로 이른바 ‘3점 세트’가 좌우한다. 즉 지반, 선거자금, 지명도가 없는 신인이 지방의회라면 몰라도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좋은 예가 마쓰시타 문하생 중 국회의원 당선자가 아직 한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그가 부틴으로부터 선거구를 물려받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마쓰시타가 타계한 것도 이들 문하생의 입지를 좁히고 있는 한 이유이다. 마쓰시타가 살아있었을 때의 마쓰시타 정경숙은 그의 명성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3년 전 그가 타계하자 이제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조차 드물다. 이에 대해 마쓰시타 정경숙의 도쿄 사무소장 나가하마 히로유키씨는 이렇게 반박했다. “우리의 목표는 지금이 아니다. 마쓰시타의 유지를 받들어 차세대 정치를 이끌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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