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성케멕스 여천공장 사고/또 폭발한 ‘활화산’
  • 여수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0.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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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불감증 의한 ‘인재’ 가능성 커‥‥종합적 감독 시스템 부재도 원인

1989년 LG화학 폭발 사건 이후 여천국가산업단지(여천산단)내 최대의 사고로 기록될 호성케멕스(주) 여천공장 폭발 사고는 25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냈지만 아직까지 사고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2백여평 규모인 3층 공장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고 현장을 증언할 노동자들이 모두 숨진데다 사고 당시 엄청난 폭발과 집중호우가 겹쳐 원인을 규명할 증거물들이 상당 부분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사망자 6명 가운데 2명은 8월28일 현재까지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호성케멕스(대표 최진석)여천공장에서는 8월18일에도 가스 누출로 인한 화재 사고가 일어났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들은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회사측이 불량 원료를 썼기 때문에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며 회사측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소업체인 호성케멕스를 비롯해 석유화학공장과 가스공장이 밀집한 여천산단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크고 작은 화재와 폭발 사고가 모두 99건이나 발생했다. 석유화합물 제조회사인 호성케멕스 폭발 사고 역시 여천산단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이 빚은 참사일 가능성이 높다.

사고 날 때마다 감추기 급급
1967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여천산단은 73개 업체 1만2천여 근로자가 일하는 국내 최대의 석유화학 단지이다. LG,한화,대림,남해화학 등 내노라 하는 대기업의 석유화학 공장들이 몰려 있다. 연간 매출 14조원 국가산업단지인 만큼 매년 2조원 이상이 국세로 징수되지만 공단이 입주해 있는 여수시 재정(지방세)으로 돌아가는 몫은 국세의 0.1% 수준인 2백여억원 정도이다. 여수시 주민은 이돈을 받으면서 여천산단의 잦은 사고 소식에 깜짝깜짝 놀라고 입주 업체가 공장에 유독가스와 폐수를 마구 버려 몸살을 앓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입주 업체와 환경단체가 서로 고소 고발할 정도로 갈등을 빚고 있다.

공장 ‘평균 연령’이 25년이나 될 정도로 낡은 여천산단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크고 작은 사고가 10건이나 잇따랐다. 최근까지도 사고가 나면 입주 업체가 지역 사회에 ‘세게’로비를 하고 실직을 우려하는 노동자들이 ‘입조심’을 해 유야무야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대형 폭발 사고를 일으킨 호성케멕스 역시 1996년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위기 상황 발생시 안전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에 대해 여수환경운동연합 박계성 사무국장은 “안전과 환경에 대해 점검하고 관리하기보다는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생산만 독려하는 풍토가 사고를 부르고 있다”라며 여천산단 입주 업체들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했다.

국가가 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산업단지이면서도 안전,환경 등을 점검하고 감독할 종합시스템이 없다는 점도 고질적인 문제이다. 환경 관리는 환경부 산하 영산강환경관리청 여수출장소가 맡고 있지만 인근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폐수 규제는 해양 수산부 소관이다. 이번 호성케멕스 사고처럼 산업 재해와 관련되면 그때는 노동부가 관여한다. 대형 사고와 환경 오염을 예방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불투명하다. 이에 대해 여수 시의회 해양 환경 특별위원회 소속 전부기 의원은 “주민을 대표하는 시의회도 환경 오염이나 사고에 대해 실태를 파악하기 힘든 형편이다. 이제는 공단이 위치한 자치단체가 책임지고 주민과 함께 감시 감독할 수 있도록 정부가 권한을 이양하든지 아니면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조사반으로 8월25일 사고 현장을 직접 둘러본 황상규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역시 “여천산단뿐만 아니라 울산,온산,안산 등 주요 공장지대마다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는 지역 사회 연대 기구를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24시간을 쉬지않고 가동해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여천산단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는 한국 중화학공업의 상징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주민에게는 언제 터닐지 알 수 없는 ‘활화산’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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